KBS의 가을 개편은 공영방송으로서 지금까지 소홀했던 교양의 강화에 방점을 두었다. 하지만, 새로이 선보이는 '교양'은 지금까지 KBS가 추구해왔던 교양과는 질적 차별성을 둔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인문학적 지식의 성찬을 선보였던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의 성황에 힘입어, KBS의 교양 역시 지금까지와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시청자와 만나고자 한다.
 
 KBS 2TV <쌤의 전쟁>의 한 장면.

KBS 2TV <쌤의 전쟁>의 한 장면. ⓒ KBS


교양과 예능의 컬래버레이션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KBS 2TV <대화의 희열>이다. 게스트를 초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이 프로그램은 개그우먼 김숙, 가수 지코 등 다른 방송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연예인을 게스트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미 <알쓸신잡>에서 유연하게 각 분야 전문가의 인문학적 지식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데 일가견을 보인 유희열을 비롯해, 강원국, 김중혁, 다니엘 린네만 등 차별화된 패널들을 구성하면서 타 예능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게스트들의 속깊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 밤 11시 30분에 찾아오는 KBS 1TV <오늘밤 김제동>은 푸근한 MC 김제동과 시사 이슈의 만남으로, 딱딱했던 뉴스를 알기쉽고 편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신선한 모색이다. 

이미 역사적 지식에 예능적 재미를 입힌 <역사저널 그날>과 함께 새로인 선보인 <대화의 희열> <오늘밤 김제동>은 새로운 시대 KBS의 변화를 향한 모색의 첫 걸음으로 보인다. 이들 프로그램의 특징은 '예능인 듯, 교양인 듯' 한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 '인문학적' 혹은 '시사적' 내용에 대한 대중적 접합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그런 노력의 일환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이 선을 보였다. 바로 스타 강사들을 KBS 스튜디오로 끌어들인 <쌤의 전쟁>이다. 추석 특집으로 찾아온 이 프로그램,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정규화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고민해 볼 여지가 남는다. 

최진기, 설민석, 최태성 등 스타 강사들이 '에듀테이너'로서 얻는 인기는 이제 새로울 것이 없다. <쌤의 전쟁>은 이런 '에듀테이너'들의 활약에 힘입어 그것을 예능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강의 누적 조회수 1300만 뷰의 한국사 이보람 강사, 수능 예언자라는 별명의 화학 박상현 강사, 완판쌤 물리 배기범 강사, 말빨 사탐의 임정환 강사 등 '수능'계의 자타공인 스타 강사들을 예능의 '치트키'로 초대한다.   

어려운 과목, 하지만 흥미로웠던 내용 

1, 2부로 꾸며진 방송은 '전쟁'이라는 제목에 걸맞에 각 분야의 강사들이 고등학생 관객과 이지혜, 문세윤, 오현민, 류수정, 나영 등의 연예인들을 상대로 하여 자신들의 분야를 하나의 주제로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강의 '배틀'하여 최고의 강사를 뽑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 테이프를 끊은 건 화학의 박상현 강사, 지구의 멸망이라는 거창한 화두를 꺼낸 강사는 그 '멸망'의 원인을 '녹'이라는 가장 친숙한 소재에서 끌어내어 화학적 개념인 '산화'와 '환원'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다음에 등장한 사회와 윤리의 임정환 강사는 땀에 마이크가 미끄러 떨어질 만큼 열강을 펼치며 존 롤즈의 정의론을 북유럽의 벌금 제도라는 가장 알기 쉬운 사례를 통해 열어간다. 

세 번째 이보람 강사는 오늘날의 돈으로 환산해서도 어마어마한 금액의 현상금, 그 주인공인 김구 선생으로 부터 시작하여, 간도 참변 이후 침체기에 빠진 독립 운동사에서 조국의 '희망'을 길어낸 이봉창, 윤봉길 열사의 의거를 명쾌하게 연결지어 낸다. 

마지막 물리의 배기범 강사는 그 어려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달과 지구의 '사랑'이라는 독특한 해석을 통해 설득해 내며 '신의 목소리'를 친숙하게 전달한다. 

한국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화학, 물리, 윤리 등 그리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전문적 내용들을 '스타'답게 강사들은 쉬운 예를 들어 관객들에게 '공부'의 욕구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강사들의 매끄러운 강의와 달리, 과연 그 강의를 전달하는 예능의 방식은 적절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강사들도 강의 도중 빈번하게 '수능' 기출 문제, 혹은 출제 예상 문제라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KBS 예능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EBS 교육 방송을 보고 있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KBS 2TV <쌤의 전쟁>의 한 장면.

KBS 2TV <쌤의 전쟁>의 한 장면. ⓒ KBS


스타 강사의 활용 방식에 대한 고민을 

차라리 프로그램에서 적극 활약한 문세윤이나 이지혜처럼 애초에 수능 강사들의 일반인을 상대로 한 '교양' 강의에 방점을 두는게 KBS 예능으로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막연하게 이미 검증받은 스타 강사들의 배틀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듣기에도 무리 없는 강의였다면 그들의 '전쟁'이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새로운 예능으로 공감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이 프로그램이 새삼스럽게 학생들을 상대로 스타 강사들의 강의를 홍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추석 특집으로 기획되었다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을 테다. 그렇다면 의도를 분명하게 살릴 필요가 있었다. 수능 보는 학생들만 공부하는 '화학' '물리' '윤리'가 아니라, 알고 보니 일반인들도 알 만한 혹은 알아두면 좋은 '교양'으로 접근했다면 좀 더 프로그램의 취지가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이보람 선생의 100℃의 폭발을 향한 98℃, 99℃의 이봉창, 윤봉길 열사의 헌신에 대한 해석은 감동적이었다. 그건 수능이 아니더라도 일반인이더라도 새삼스럽지 않게 공감할 우리의 독립 운동사다. 마찬가지로 버스 정류장의 도착 정보 데이터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만나진 아이슈타인의 이론은 '물리'가 생각보다 우리 곁에 있음을 알 수 있게 만든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정의는 마이클 샌델의 강의 못지 않게 친숙했다.

이렇게 좋은 양질의 '인문학'을 그저 '쌤의 전쟁'이라는 경쟁을 통해 나열하는 방식은 그래서 아쉽다.  차라리 학생은 물론 주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상대로 한 '배틀'과 질의 응답시간이었다면 좀 더 프로그램이 원하는 예능적 재미도 살아나지 않았을까? 수능 수험생이라도 추석에 tv 봐도 된다는 식의 콘셉트나 홍보는 안이해 공감하기 힘들었다. 교양의 연성화도 좋지만, 그 방식과 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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