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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명절'이라는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이 날은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친지를 보는 시간이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한편 누군가에게 추석은 가족 내, 일상의 차별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성별, 장애, 고용형태, 성적지향 등에 따라 마주하는 다양한 추석명절의 경험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명절'이 되기 위한 고민들을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대형 마트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대목이라는 추석 전날이 문을 닫아야 하는 일요일인 것. 대형 마트들은 대신 명절 당일 개점할 계획이라고 한다. 졸지에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명절을 빼앗겼다. 빨간 날 일하니까 휴일근로수당이라도 받겠거니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빨간 날이 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빨간 날이 휴일이 아니다?
 
 2018. 3. 20. 법 개정전까지 달력의 빨간날은 근로기준법상 상 휴일이 아니었다
 2018. 3. 20. 법 개정전까지 달력의 빨간날은 근로기준법상 상 휴일이 아니었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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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매우 획기적인 내용을 두 가지 담고 있었다. 하나는 빨간 날이 휴일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새해가 되면 빨간 날이 몇 월에 몇 개나 있는지 짚어보던 내게 빨간 날이 모두의 휴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달력에 표시된 빨간 날은 누구나 쉬는 날이라고 이해하지만 노동자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빨간 날은 '법정공휴일'이다.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명절과 명절연휴,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같은 날들이 달력에는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휴일은 다르다. 법정공휴일도 한때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유급휴일이었다.

1997년 근로기준법을 다시 만들면서 규정이 사라졌다. 그래서 노동자가 쉴 수 있는 날은 주휴일과 '근로자의 날'뿐이었다. 주휴일은 1주를 일하면 1회 이상 줘야 하는 유급휴일이다. 보통 일요일이 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 이 역시 달력의 빨간 날과는 다르다. 법으로 빨간 날을 정해놓고 또다른 법으로 빨간색을 지우고 있었다.
빨간 날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휴일이 아니라도 관공서는 쉬고 웬만한 큰 회사들도 다 쉬었다. 빨간 날은 같이 쉬자는 상식이 그나마 통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아니라 우연히 주어지는 시혜가 되어버렸다.

"공휴일에 연차 쓰라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요?" 공단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라고 한다. 상담자는 난감하다. 근로기준법은 '그래도 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 한들 '남들 다 쉬는 날'에 일해야 하는 상황까지 행복하기는 힘들 것이다. 빨간 날은 불평등의 지표가 되어버렸다. 명절이면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 명절에도 집에 찾아가지 못하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이번 법 개정은 빨간 날을 빨간 날로 만들어주었다. 단, 2020년 1월 1일부터. 게다가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 3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은 2021년부터, 5인 이상 30명 미만은 2022년부터다. 5인 이하? 빨간 날은 기약이 없다.

1주는 7일이 되었지만

이번 법 개정의 또 다른 획기적 내용은 일주일이 7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동안 사용자들은, 주 40시간에 1주 12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하다는 규정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주5일 동안 52시간 일을 시키고, 휴일인 이틀 동안은 휴일근로를 시킬 수 있다! 정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사용자들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국회가 나서서 1주가 "휴일을 포함한 7일"이라고 굳이 알려줘야 했던 이유다.

근로기준법 개정 전후로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말이 오르내렸다. 법정근로시간이 40시간인 시대에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당연시됐던 야근, 특근, 잔업 등 장시간 노동의 현실을 돌아보면 52시간도 감지덕지다. 문제는 모두에게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만 그렇다. 빨간 날이 그렇듯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주52시간 도입 이후 직장인들의 여가가 풍요롭게 되었다는 기사가 종종 보인다. 일에 파묻혀 살아야 했던 시간이 조금씩 자유로워진다는 소식은 반가웠다. 하지만 씁쓸함이 늘 맴돌았다. 지금 주52시간 근무제를 누릴 정도의 회사라면 임금이나 노동조건도 어느 정도 수준은 웃돌 텐데……. 더 낮은 임금으로 더 열악한 환경에서 더 오래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늦게 휴식이 찾아온다니,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쉴 권리가 있습니다." 2017년 4월 문재인 현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리 획기적인 선언은 아니다. 이미 70년 전 세계인권선언이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누릴 권리를 명시했다. 당연히 노동시간 단축과 정기적인 유급 휴가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권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시되어왔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시대의 변화에 기대를 걸고 싶다.

6월의 근로기준법 개정은 한국사회에 '쉼표'를 새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쉼표 있는 삶"이 약속되지는 않았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지금 여기에서 이런 질문을 건네고 싶다. 똑같은 시간을 일하는데 단지 작은 규모의 사업장에 고용됐다는 이유로 덜 쉬어도 되는 걸까?

같이 쉽시다

명절 연휴에 쉬는 것이 고역인 사람들도 있다. 음식 만들기부터 뒷정리까지 떠맡아야 하는 여성들이나 일가친척에게 결혼은 언제 하느냐, 직장은 언제 구하냐 등 시달림을 당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연휴가 편치는 않다. 차별로 가득한 연휴가 다가오면 차라리 집에 가지 않을 핑계가 생기길 바라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쉴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당장의 차별을 모면할 기회는 될지 몰라도 못 쉬는 상황은 또 다른 차별일 뿐이다.

빨간 날을 누리는 어떤 사람은 차라리 집에 '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집에도 못 가고 쉬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빨간 날을 부러워한다. 이대로 괜찮은가? 같이 쉬면서 명절마다 마주해야 하는 차별 상황에 대처할 힘을 키우는 것은 어떨까? 여성이라서, 고졸이라서, 나이가 많아서 더 오래 일하고 더 적게 쉬어야 하는 상황을 함께 바꿔보면 어떨까?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게 사회의 임무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요긴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미류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이자 차제연 공동집행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equalityact.kr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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