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개인적으로는 '먹방'이 끝물이라고 생각했다. TV만 틀면 오만 곳에서 먹는 것만 방송하는 것에 지칠 대로 지쳤고 방송사들도 결국 지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떤 음악 프로듀서는 엄청난 크기의 스테이크를 먹는 걸로 화제가 됐고, 또 어떤 여자 개그맨은 먹는 걸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았고, 어떤 여자 아이돌 가수 멤버 역시 곱창 먹는 게 화제가 되면서 온라인 세상을 뜨겁게 달궜다. 먹방의 인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아예 '이 식당을 가라'며 등 떠미는 프로그램까지 생겼다.

그런 TV 프로그램들에 대한 신문 기사들을 보며 궁금해졌다. 우리들에게 한 끼는 어떤 의미일까?
 
식당사장 장만호
 식당사장 장만호
ⓒ 김원규

관련사진보기

  

<식장 사장 장만호>에서 아내 선경은 이런 얘기를 한다.
 
"식구들과 김 오르는 밥상에 둘러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밥을 먹어 보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야."

남편인 장만호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는 동안 그를 간호하랴, 딸 현진을 돌보랴, 또 술주정과 줄담배라는 독특한 성품(?)을 가진 괴팍한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 하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아내 선경이었다.

그런데도 심지어 장만호가 입원해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의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면서까지 돈을 벌었다. 그런 선경이 장만호에게 원했던 한 끼는 '식구들'과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밥을 먹는 것이었다.

이후 부부가 함께 작은 가게를 운영하게 되는데... 부부는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정성 가득한 한 끼를 대접하겠다는 마음으로 항상 최선을 다한다. 손님은 점점 늘어나고 그만큼 두 사람은 쉴 틈 없이 바빠진다. 그때도 선경은 이런 얘기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오붓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장사를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가족이 함께 김 오르는 밥 상에 둘러 앉아 아무 걱정 없이 따뜻한 밥 한끼를 할 수 없다고. 다른 사람들이 먹는 밥과 고기를 그토록 팔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그럴 수 없다고."

혼밥의 시대에 먹방이 인기를 얻은 건 본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선경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한 끼가 주는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거나 고민해 볼 여력조차 없는 것이다. 

방송은 '얼마나 복스럽게 먹느냐'가 주가 되고 '남들은 모르는 식당을 찾아내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모두가 천편일률적이다. '무엇'을 '어디서' 먹느냐에 함몰 되어 먹는 것 자체에만 집중할 뿐이다. 

결국 선경과 따뜻한 밥 한끼를 하지 못한 채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장만호가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며 차린 조그만 식당의 단 네 가지뿐인 메뉴다.

따스한 밥 한 그릇.
따스한 국수 한 그릇.
따스한 국밥 한 그릇.
따스한 비빔밥 한 그릇.


장만호는 다짐한다. 자신을 아는 이들이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식당,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주 오래된 식당의 주인이 될 거라고. 따뜻한 밥 한 끼의 의미를 찾아 장만호는 그토록 먼 길을 돌아온 것이다. 

화려하진 않아도, 그저 소박한 밑반찬 몇 개와 된장국만 있더라도 엄마가 만들어 준 집 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 될 수 있는 건 가족을 사랑하는 정성을 가득 담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밥을 식구들과 함께 먹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함' 때문일 것이다. 마치 장만호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운영하는 식당의 메뉴 이름처럼.

우리에게 한 끼란 그런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오늘 내가 먹는 한 끼가 바로 내가 되는 것이고, 그 한 끼를 먹는 시간이 곧 내가 지나온 시간이 되는 거니까.

덧붙이는 글 | 저서로는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가 하는 말>, <인도차이나 캐리어 여행기>가 있습니다.


식당사장 장만호

김옥숙 지음, 새움(2015)


태그:#식당사장 장만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살아가면서 접하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 그것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