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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는 길고양이였습니다. 동네 철물점에서 매일 밥을 먹고 놀던 강호가 어느 하루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강호는 뒷다리가 심각하게 부러져 앞발로 기어 철물점 주인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분의 도움 요청으로 우리는 만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은 강호는 두 발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가족이 되었지요. 장애를 얻었지만 늘 씩씩하고 명랑한, 무엇보다 호기심 많은 강호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 기자 말

사람 아닌 동물에게 존경심을 가질 수 있을까? 당연하다. 존경이란 특정 종이라서가 아닌 그럴 만한 행위를 하는 존재를 우러러보게 되는 것이므로.

고로 나는 나와 반년째 여행 중인 고양이 강호를 사랑함과 동시에 존경한다. 이런저런 순간 속에서 쌓인 그 감정은 전남 장흥에서 억불산을 오르며 확고해졌다.
 
전남 장흥 억불산. 좌측에 불뚝 솟은 며느리 바위가 인상적이다.
 전남 장흥 억불산. 좌측에 불뚝 솟은 며느리 바위가 인상적이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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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첫 동반 산행 준비

여행 중 목적지를 정할 때는 강호가 함께 갈 수 있을지, 가서 강호도 즐길 만한 요소가 있을지를 고려한다. 총 소요시간과 해당 장소의 환경이 중요하다.

억불산은 높이 518미터로 비교적 낮고, 한 달간 빌려 살고 있는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하지만 꽤 오랜만의 등산에다 고양이와의 동반 산행은 처음이었다.

그러니 가기 전 훈련은 필수. 우리는 인근 탐진강변과 완만한 뒷산 둘레길을 자주 산책했고 집 안에서는 강호가 2층 방과 부엌 계단을 스스로 오르내리게 했다.    

그리고 약 두 주 후 출발. 총 소요시간은 예상보다 배가 걸렸지만 강호와 함께라 즐거움도 배가 됐고 무엇보다 강호가 명백한 '비인간인격체'임을 인정하고 존경하게 됐다. 
 
2층 방으로 오르는 계단을 스스로 오르내리는 강호
 2층 방으로 오르는 계단을 스스로 오르내리는 강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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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계단을 스스로 내려오는 강호
 옥상 계단을 스스로 내려오는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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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산행 전 읍성길 둘레길에서 걷는 연습 중인 강호
 본격 산행 전 읍성길 둘레길에서 걷는 연습 중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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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강변 산책 중에 휴식 중인 강호
 탐진강변 산책 중에 휴식 중인 강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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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두 발로 억불산 정상에 서다

마실 물과 삶은 달걀을 챙기고 강호가 탄 이동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금세 도착할 것 같았던 산 입구까지만 걸어서 한 시간이 걸렸다.

등산로 초입 정자에서 강호를 가방에서 꺼내주고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강호가 땅으로 껑충 뛰어내리더니 제 가슴 높이쯤 되는 나무 계단을 먼저 오르기 시작했다. 
 
전남 장흥 억불산 등산로 초입
 전남 장흥 억불산 등산로 초입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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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산행을 시작한 강호. 제 스스로 첫 발을 내딛었다.
 생애 첫 산행을 시작한 강호. 제 스스로 첫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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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산행을 시작한 강호. 제 스스로 첫 발을 내딛었다.
 생애 첫 산행을 시작한 강호. 제 스스로 첫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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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산행을 시작한 강호. 제 스스로 첫 발을 내딛었다.
 생애 첫 산행을 시작한 강호. 제 스스로 첫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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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산행을 시작한 강호. 제 스스로 첫 발을 내딛었다.
 생애 첫 산행을 시작한 강호. 제 스스로 첫 발을 내딛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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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고 기특했다. 철봉에 매달리듯 두 앞발로 나무 계단 혹은 다른 지지할 만한 자연물을 힘껏 잡고 온몸을 들어 올리는 강호의 모습이.

'얼마 못 가겠지, 못 가면 다시 이동가방에 태워야지' 했는데 강호는 오래도록 제 스스로 걸었다. 나도 숨이 차오르는 길을 열심히 꿋꿋하게.
 
두 발로 꿋꿋하게 산을 오르는 강호
 두 발로 꿋꿋하게 산을 오르는 강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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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꿋꿋하게 산을 오르는 강호
 두 발로 꿋꿋하게 산을 오르는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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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꿋꿋하게 산을 오르는 강호
 두 발로 꿋꿋하게 산을 오르는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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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꿋꿋하게 산을 오르는 강호
 두 발로 꿋꿋하게 산을 오르는 강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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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는 최선을 다하면서도 무리는 하지 않았다. 가다가 지치면 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 쉬고 기운이 좀 차오르면 주변 풍경도 보고 저 좋아하는 풀도 뜯어 먹으며 정말이지 산행을 즐기는 것 같았다.

산을 오르는 속도는 혼자일 때보다 느렸지만 결코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강호의 눈빛과 몸짓 하나하나가 자연 풍광만큼이나 아름답고 멋졌다. 그리고 점점 녀석이 존경스러워졌다. 진심으로.
 
지치면 쉬어갈 줄 아는 강호. 쉬면서 숲의 이런저런 자연물에 관심을 보였다.
 지치면 쉬어갈 줄 아는 강호. 쉬면서 숲의 이런저런 자연물에 관심을 보였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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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이야'
 "그래, 이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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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면 쉬어갈 줄 아는 강호. 쉬면서는 숲 속의 공기를 음미하기도, 주변 자연물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지치면 쉬어갈 줄 아는 강호. 쉬면서는 숲 속의 공기를 음미하기도, 주변 자연물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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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까지 총 거리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1.36킬로미터를 제 스스로 걸은 뒤 강호는 이동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정상까지 총 거리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1.36킬로미터를 제 스스로 걸은 뒤 강호는 이동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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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가 저 스스로 걷기를 멈춘 것은 우리가 택한 등산로에서 억불산 정상까지 총 거리 3.02킬로미터 중 그 절반에 가까운 1.36킬로미터 지점이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듯 담담히 그리고 당당히 가방 속으로 들어가는 그 모습이라니.

그 전까지는 반복적으로 휴식을 취하면서도 내가 안아서 걸을라치면 두 앞발로 내 가슴을 힘차게 밀면서 땅에 내려달란 의사를 표했고 가방 안에 넣으면 다시 꺼내줄 때까지 울어댔다. 강호가 명백히 제 의지를 따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길은 언니한테 맡겨!'
 "이제 남은 길은 언니한테 맡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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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와 함께 억불산 정상을 향해
 강호와 함께 억불산 정상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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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불산 정상의 기막히게 아름다운 풍경. 강호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억불산 정상의 기막히게 아름다운 풍경. 강호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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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두 발로 억불산 정상에 우뚝 서다!
 강호, 두 발로 억불산 정상에 우뚝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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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보채지 않는 강호를 등에 업고 남은 길을 걸었다. 그런데 너무 조용해서 멈춰서 보니 강호가 이동가방 안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런 적이 없는데 얼마나 온 힘을 쏟아냈으면.

'이제 남은 길은 언니한테 맡겨!'

그렇게 우리는 약 4시간 만에 억불산 정상에 섰다. 잠에서 깬 강호에게 몸줄을 단단히 연결해 정상의 풍광을, 바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강호는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엔 별 감흥이 없는 듯했다. 

앞서 나는 이번 산행을 통해 강호를 확실한 '비인간 인격체'로서 인정하고 존경하게 됐다고 했다. 그 이유는 강호가 스스로 걷기를 택했고, 또한 스스로 고민해 찾은 방법으로 두 다리만으로 산을 올랐으며(나로선 도무지 엄두가 안 나는), 동시에 모든 순간 멋과 여유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와 다름 없이 행복과 고통을 느끼며 의지라는 것을 가진 고양이 강호의 선택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함께해주세요
여행을 통해 강호가 얼마나 맘껏 걷고 뛰길 원하는지를 봅니다. 저는 이런 강호에게 휠체어를 만들어주기 위해, 또한 우리가 여행하며 만나는 동물이웃들이 더 나은 오늘을 살 수 있게끔 밥이나 약, 혹은 '1미터 지옥'을 대신할 보다 배려 있는 몸줄을 마련해주기 위해, 그리고 이 여행 끝에 사람과 동물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여행자 공간(게스트하우스) 마련을 위해 스토리펀딩을 진행 중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와 응원을 기다립니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스토리펀딩 보기 
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20182

(동영상) 강호, 달리다!
https://youtu.be/ifjpN5XThSQ


[이전 기사]  '고양이 강호 씨, 여행은 할 만하신가요?'

태그:#길고양이, #고양이와 여행, #장흥 한달살기, #억불산, #장애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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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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