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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로 출시된 신작 게임 <어센던트 원>이 화제다. <마비노기>의 제작사인 데브캣이 제작한 이 MOBA(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 게임 장르 중 하나) 게임은 이른바 '게임 리뷰어' 들 사이에서 '페미나치' 게임으로 불리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데브캣의 고위 임원 중 하나가 트위터에 '페미나치' 라고 자기를 소개했다는 것 때문이다.

 
<어센던트 원> 개발자를 공격하는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 <어센던트 원> 개발자를 공격하는 유투브 동영상 <어센던트 원> 개발자를 공격하는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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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센던트 원> 개발자를 공격하는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 <어센던트 원> 개발자를 공격하는 유투브 동영상 <어센던트 원> 개발자를 공격하는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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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센던트 원> 개발자를 공격하는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 <어센던트 원> 개발자를 공격하는 유투브 동영상 <어센던트 원> 개발자를 공격하는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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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나치' 라고요?

갈 길은 멀고 할 이야기는 많지만, 먼저 '페미나치(femi-nazi)' 라는 말부터 걸고 넘어가자. 먼저 페미나치는 페미니즘과 나치(NAZI)를 결합한 말인데, 즉 페미니즘은 나치만큼 나쁘다는 여성혐오자들의 레토릭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나치' 라고 지칭되는, 혹은 지목되는 대상은 그 사람이 정말 나치주의자나 파시스트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페미니스트라고 봐야 할 것이다.

동시에 자신을 페미나치라고 지칭하는 사람은 (비록 나치라는 말이 그 자체로 껄끄럽긴 하지만) 그 사람이 스스로 나치주의자임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혐오자들이 사용하는 "페미니즘은 나치와 똑같아!" 라는 억지스러운 말을 비꼬고 조롱하기 위해 사용한다고 봐야 한다.

혐오주의자들이 애써 '페미'와 '나치'를 하나의 단어로 묶어 주었으니 구태여 떼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와 나치가 똑같다니, 한때 트위터를 달구었던 말마따나 이 무슨 '열림교회 닫힘' 같은 소리란 말인가.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한 게임 리뷰어는 <어센던트 원>의 리뷰에서 '페미나치'는 "경솔하다 못해 이기적인 발언" 이고, 비록 여성 게이머가 늘긴 했지만 게임은 결국 "남자한테 파는 물건" 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남자한테 파는 물건". 이것이 한국의 많은 '게이머' 들과 '게임 리뷰어' 들이 게임을 생각하는 기본 토대일 것이다. 게임은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게임을 하는 여성들은 '특이한 존재' 이고, 게임과 페미니즘이나 PC(정치적 올바름), 다양성 등은 그다지 어울리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비꼬는 유투브 영상 갈무리
▲ 정치적 올바름을 비꼬는 유투브 영상 정치적 올바름을 비꼬는 유투브 영상 갈무리
ⓒ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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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을 비꼬는 유투브 영상 갈무리
▲ 정치적 올바름을 비꼬는 유투브 영상 정치적 올바름을 비꼬는 유투브 영상 갈무리
ⓒ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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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안팎 모두에서, 주체적으로 존재하기 힘든 여성들

그렇기 때문에 여성 게이머들은 채팅 등에서 성희롱이나 폭력적 발언을 듣기 마련이고, 실력이 떨어지는 게이머들은 그 사람이 어떤 성인지에 상관 없이 "너 여자냐?" 같은 '욕'을 듣기 마련이다. (물론 여성들이 게임을 남성보다 못 한다는 통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블리자드의 슈팅게임 <오버워치>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디바(D.Va)'에서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페미니스트 게이머 그룹인 '전국디바협회'(전디협)가 출범했을 때만 보더라도, 여성 –특히 페미니스트- 게이머는 게임 상에서 별로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은 게임 밖은 물론 게임 안에서도 주체적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한국에선 특히 더욱 그렇다. 게임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직업이 무엇인지, 어떤 배경을 가지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비상식적으로 왜곡된 외형-작은 머리와 얇은 허리, 큰 가슴과 엉덩이, 얇고 긴 다리, 노출이 많은 의상 등-으로만 상상되고 대상화되곤 한다. 즉, 남성들에게 소비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상상력의 부재' 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대개 비난받곤 한다. '핍진성'이 부족하다는, 즉 그럴듯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예를 들어, <오버워치>의 캐릭터 '트레이서'가 성소수자라는 암시를 남긴 공식 코믹스는 "어떻게 트레이서가 레즈비언일 수 있느냐" 며 비난을 받았고, EA 게임즈의 <배틀필드 V>에 등장하는 메인 캐릭터 중 하나인 '머니페니'는 의수를 낀 장애인 여성이 어떻게 최전방에서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쏠 수 있느냐며 조롱당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유튜브의 한 '게임 리뷰어'는 <배틀필드 V>의 예를 들며 EA를 "정치적으로 X나게 올바른 게임 회사" 라며 조롱했고, EA의 크리에이티브 오피서 패트릭 쇠덜런드(Patrick Söderlund)가 헌 "게임에 여성이 나오는 것이 싫다면 교육받지 못한 것(uneducated)" 이라는 말에 "꼬우면 사지마세요^^" 라는 뜻이란 코멘트를 남겼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게임에 레즈비언 축구 리그나 게이 로봇이 나오는 것 아니냐며 빈정대기도 했다.

 
"페미니즘의 마지막 발악" 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 "페미니즘의 마지막 발악" 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 "페미니즘의 마지막 발악" 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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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물론, 이러한 남성 '게이머'나 '게임 리뷰어' 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나같이 자신은 여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며, 여자가 나오는 것 자체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게이머'들이나 '리뷰어' 들이 보여 온 여성에 대한 인식이나 행태를 보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주변의 여성 게이머에게 물어본 결과, '남성 게이머' 들은 특히 보이스 채팅에서 목소리를 듣자마자 "어, 여자네?" 라고 한다거나, 게임 상에서 지켜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 보이스 채팅 과정에서 숨소리나 바람소리를 가지고 성적인 말을 던진다고, 그래서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차라리 보이스 채팅 기능을 꺼놓거나 친구들이랑만 게임을 하게 된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그만 알아보도록 하자" 라는 인터넷 유행어가 절로 생각날 지경이다. 여성을 게임에 발붙이기 어렵게 만들고, 밀어내는 것은 결국 "페미나치" 라는 웃기지도 않는 말 따위가 아니라, 앞서 예를 든 것처럼 '남성 게이머'와 '남성 리뷰어' 들일 것이다.

<배틀필드 V>의 장애인 여성 '머니페니'를 핍진성이 부족하다고, <오버워치>의 '트레이서'를 성소수자라고 손가락질하고 '메르시'를 여자들이나 한다며 '보르시' 라고 부르는 것도,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사라 케리건을 'XX'라 욕한 것도, <미러스 엣지>의 주인공이 (눈이 찢어진) 동양계 여성이라고 못생겼다고 비웃은 것도 -다는 아니더라도- 거의 대부분이 '남성 게이머'와 '남성 리뷰어' 들이다. 아니라고? 아니, 아닌 게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더 '나치'에 가깝고, 누가 더 파시스트적일까? 구태여 꼽으라면 자기들이 만들고 쓰는 '페미나치' 라는 말에 오히려 열을 올리고, 여성들을 희롱하고 대상화하며, 여성 캐릭터를 핍진성이 부족하다며 욕하는 이들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성과 다른 소수자들이 더욱 더 게임의 정면을 향해 나아가야 할 이유다.

태그:#어센던트원, #페미나치, #페미니즘, #게임, #데브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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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기억하는 정치학도, 사진가. 아나키즘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자리(Frontier) 라는 다큐멘터리/르포르타주 사진가 팀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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