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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명절'이라는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이 날은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친지를 보는 시간이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한편 누군가에게 추석은 가족 내, 일상의 차별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성별, 장애, 고용형태, 성적지향 등에 따라 마주하는 다양한 추석명절의 경험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명절'이 되기 위한 고민들을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한국사회에서 '현대인들에게 명절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본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고, 그간 고마운 이들에게 전하지 못했던 감사함을 표현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오랜만에 가지는 긴 휴식의 시간이기도 하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으로 채우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명절은 여성들의 노동력과 친밀감을 활용·착취하여 혈연관계를 확인하는 장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피하고만 싶은, 말 못 할 고통의 퍼레이드가 반복되는 연례행사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들에게만 전가되는 가사분담 뿐 아니라 결혼과 임신·출산과 관련한 걱정과 조언을 가장한 간섭, 외모에 대한 평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명절기간 가족들과의 만남을 기피하게 만드는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여기 활동을 하면서 실제 겪은 사례들을 각색한 4명의 명절 이야기를 소개한다.

성폭력 피해생존자 A의 이야기

잠시 떠나있던 고향집으로 향하는 A. 그곳에는 나에게 한 번도 따뜻한 말을 건네본 적이 없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에게 성폭력을 일삼았던 오빠가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할머니와 내가 보고 싶다고 매일 메시지를 보내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성폭력이 일어난 직후에 엄마와 아빠에게 처음 피해를 이야기하던 날, 처신을 잘하지 못한 나를 탓하며 오빠의 장래를 걱정하던 부모님에게 너무 크게 실망했었다. 가족들에게 그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경찰에 신고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빠와 한 공간에 있을 수가 없어 학교의 상담소를 통해 성폭력피해자들을 위한 쉼터를 찾아갔다. 쉼터 생활에 잘 적응했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탐색하는 시간을 갖는 중이다.

그리고 얼마 전 동생을 통해 오빠의 군입대를 알게 되었다. 당분간은 집에 오빠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참에 보고 싶은 할머니와 동생, 친척들을 만날 수 있겠다 싶었다.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는 오빠의 가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친척들과 함께 있는 때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곳으로 가는 차 안에서, 혹시나 가해자인 오빠를 만나게 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약해지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한다.

결혼 2년차 B의 이야기

명절은 그리운 가족들을 만나는 날인데, B는 그리운 가족이 있는 곳과 정반대의 방향을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작년 추석을 떠올린다.

작년 추석은 2주일 전부터 시작되었다. 시어머니로부터 음식 재료들을 주문하고 준비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수행하던 2주일 동안 계속해서 '이게 뭘까?'하는 의문은 지워지질 않았다.

명절 전날, 당연하게도 이틀 정도 외박할 수 있는 짐을 챙겨서 집에서 나섰다. 부여받은 메뉴의 식재료를 잘 챙겨서 차를 타고 도로에서 서너 시간을 보낸 끝에 도착한 시가는 이미 음식 준비로 분주했다.

사전에 나에게 어떤 일정이 있느냐고도 묻지 않았고, 나는 당연히 노동력을 제공해야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나는 산더미 같이 쌓이도록 잡채를 만들고 전을 부치고, 약밥을 만들었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 중 처음 보는 것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하시는 대로 눈치껏 따라했다.

시가에 짐을 부리자마자 점심을 먹은 직후부터 시작된 노동은 밤이 깊어서야 끝이 났고, 몸을 쭉 펴기조차 어려운, 남편이 결혼 전에 쓰던 침대에서 둘이서 불편하게 쪽잠을 잤다.

알람을 맞추어놓은 새벽에 일어나 차례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절을 다 마치고 나서 나에게도 절할 기회가 있었지만, 종교를 가진 나는 고사했다. 종교가 아니었더라도 그 절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차례를 마치고 시가 식구들이 둘러앉아 음복을 하고 나서, 또 한 차례 폭풍 같은 설거지가 끝나고 나니 친척들이 인사를 왔다.

그때마다 새로운 상을 차려내고, 치우기를 반복했다. 점심때까지 서너 차례의 차리고 치우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친정행을 허락받고, 최대한 부산스럽지 않게 시가를 나왔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B의 한쪽 어깨 위로 떨어지는 잠든 남편의 머리를 멀찌감치 밀어내고는 애써 잠을 청한다.

성소수자 C의 이야기

명절 때마다 친척들로 북적이는 고향집에서는 늘 C의 외모와 결혼이 가십거리처럼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남자가 그렇게 말라서 어디에 쓰니? 남자면 힘이 좋아야지"부터 시작해서 "남자가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을 키우면 여자들이 좋아한다"느니, "아직도 변변한 직업도 없이 앞으로 결혼은 어떻게 하고 애는 언제 낳니"라며, C를 걱정하는 척하며 C의 외모와 직업을 업신여겼다.

몇 년 전까지는 친척들의 간섭을 듣고 싶지 않아서 C가 가진 옷 중에 가장 좋은 옷을 챙겨입고, 더 강하고 "남자다워" 보이기 위해 가진 애를 다 썼다. 하지만 그들의 기준에 맞출수록 "이제 좋은 여자만 데려오면 되겠네"라며 이성애 결혼을 당연한 듯 이야기했다. 이미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한 후였지만, 부모님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는 듯이 아무것도 모르는 친척들의 장단에 맞추어 "여자 있대"라고 대꾸했다. 더 이상 식구들과 친척들에게 기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C는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는 대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성소수자 친구들과 동네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올해는 그동안 명절을 함께 보내던 친구들과 함께 고향 근처로 등산을 간다. 연휴 중 이틀은 땀 흘리며 산을 오르고 친척들이 돌아가고 난 다음에 부모님 댁에 들러 인사 정도만 드리고 서울로 올라올 계획이다. 친척들과 만나지 않으니 명절 전에 굳이 머리를 짧게 자를 필요도 없어 정말 편하다. 외모나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고 평소대로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등산복에 배낭을 메고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고속버스를 타고 마음이 이렇게 편안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마트노동자 D의 이야기

결혼을 하지 않은 D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출산을 결정할 때는 아빠가 없어도 당당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출산한 후, 비혼모라는 것을 밝히고 일자리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결국은 아이가 있다는 것을 숨기고서야 겨우 대형마트에 비정규직 계산원으로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교대와 야근이 잦은 대형 마트에서 일하며 혼자서 어린 아기를 돌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죄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맡겨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를 보러갔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 대형마트 의무휴업제가 도입된 이후로는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씩 아이를 만나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추석은 바로 전날이 휴무일인 일요일이라 마트가 쉬지만, 매출을 위해 추석 당일에 영업을 한다고 해서 아이와 하룻밤만 같이 지내고 새벽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와서 출근을 해야 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와 명절기분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대화의 주제나 내용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서 참 어렵다. 요즘은 아빠와 함께하거나, 엄마 혹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수행해야하는 숙제들이 많은 것 때문에 할머니에게 심통을 부리며 숙제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걱정이 많다, 오늘은 아이와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야할 것 같다. 여느 가족처럼 엄마, 아빠, 자매/형제가 없는 아이들은 그런 숙제를 어떻게 하는 걸까?

모두에게 평등한 명절을 위한 고민

위와 같이 차별의 장면들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주 가까이에서 일어난다.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장벽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가해자인 오빠를 피해 고모 옆에 앉은 A에게 "진짜 미투와 가짜 미투"를 운운하며 성폭력피해자들을 비난하는 말들을 한다든지, 설거지를 막 끝내고 과일을 깎고 있는 B 앞에서 성차별적이고 비합리적인 명절문화를 비웃으며 "우리 집은 평등하다"고 호언장담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성수소자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유튜브 동영상을 C와 함께 있는 방에서 돌려보며 조롱하고, D에게 "너는 속 썩이는 남편이 없어 좋겠다"며 부러운 듯 추켜세우다가 결국 사촌들의 부부모임에는 초대하지 않는 위선적인 장면은 결코 허황된 상상이 아니다.

A, B, C, D들은 평범한 존재들이다.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다. 모두에게 평등한 명절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버스조차 탈 수 없는 사람들도 기억해야한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탑승할 수 있는 고속버스가 없고, 장애인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이 명절에 고향을 방문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한국에 이주한 노동자들이나 난민들도 즐길 수 있는 "모두에게 평등한 명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노선이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equalityact.kr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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