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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대전 오월드를 탈출한 퓨마 호롱이가 사살됐다. 호롱이의 탈출은 단순 해프닝 혹은 흥밋거리로 끝나지 않았다. 시민들은 화면으로만 접한 맹수의 죽음에 슬퍼했고 분노했다.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전동물원 퓨마 동물도 하나의 생명입니다' '퓨마가 왜 죽어야 했나요' '동물원을 없애주세요' '동물을 위한 보호법을 개정해주세요' 등의 청원이 잇따랐다.

철장 속에 갇힌 이도, 이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우리도 지쳐 시선을 돌릴 즈음, 호롱이의 탈출은 철장 속 이들을 외면하는 데 익숙해져선 안 된다는 강한 울림이 돼 우리 마음을 흔들고 있다. 호롱이의 죽음은 '무수히 많은 수'로만 불러지며 보이지 않았던 한 마리 한 마리의 죽음을 보게 했다. 이제껏 우리가 외면했던 수많은 동물들의 삶을 돌아봐야만 하는 계기가 됐다.

그 계기를 빌려 말한다. 여기 우리가 지나쳤던, 혹은 모르고 살았던 또 다른 '호롱이'들이 있다. 이들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심판대 위에 올라 조금씩 나아졌던 주류 동물원들에 끼지 못하고 변화의 사각지대에 놓여왔다. 동물원이지만 동물원이라 칭하기 어려운, 대부분 '동물마을' '동물농장' '동물체험장' 등으로 표기되는 이곳. 우리가 지역에서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수목원'이다. 호롱이의 죽음 계기로 지난 여름 취재했던 내용을 옮겨본다.

수목원 동물들의 삶
 

호롱이가 살다 간 대전 오월드에서 1시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한 공립수목원이 있다. 이 수목원은 다양한 식물 유전 자원을 수집, 증식, 보존, 관리, 전시하는 곳을 말한다. 더불어 학술적·산업적 연구를 위한 시설이다. 사람들은 숲에 들어가 계절의 정취를 느끼고 싶을 때,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공기를 느끼고 싶을 때 이곳을 방문한다.
 
▲ 철장 속 반달가슴곰  반달가슴곰이 의미 없이 철장 안을 왔다 갔다 하는 정형행동, 자폐 증상을 보이고 있다.
ⓒ 김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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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수목원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숲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철창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동물들이 있다.

올해 여름, 대한민국은 유례없는 폭염을 경험했다. 기자가 이 수목원을 방문했던 날(7월 21일) 인근 도시의 최고기온은 36.3℃였다. 재난문자가 왔다. 위 영상 속 반달가슴곰이 있는 사육장 바로 앞은 뙤약볕이었다. 

다른 대형동물원과는 다르게 반달가슴곰 주변에 얼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게다가 사육장 바닥과 벽 모두 콘크리트다. 산에서 사는 반달가슴곰이 사방이 꽉 막힌 콘크리트 사이에서 살고 있다. 심심함을 달랠 요인(행동풍부화 요소)으로는 자동차 타이어를 달아놓은 게 전부다.

반달가슴곰은 지능이 높고 자연 상태에서는 활동량이 매우 많은 동물이다. 그만큼 지루함과 신체적·사회적·정서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박탈·외로움·스트레스·절망을 느끼고 이로 인해 이상행동(정형행동)을 보이며 심한 고통을 겪는다.
 
철장 속 게잡이원숭이  무리를 지어 사는 게잡이 원숭이가 홀로 있다.
▲ 철장 속 게잡이원숭이  무리를 지어 사는 게잡이 원숭이가 홀로 있다.
ⓒ 김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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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를 이루고 사는 사회성 높은 동물인 게잡이원숭이 또한 철장 안에 홀로 놓여 있었다. 동물들의 습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환경이다. 무료함과 외로움은 이들에게 큰 고통이다. 그래서 지능이 높고 활동량이 많은 동물일수록 공간 조성에 있어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구성해야 한다.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대다수 수목원 내 동물원은 이 두 가지를 충족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충족도 없는 경우가 많다. 

9월 21일 현재까지도 상황은 그대로일까. 이 수목원 관계자는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자체 예산지원이 부족해 만족할만한 리모델링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앞으로 더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수목원 내 조류원 바닥 배설물과 깃털 등 각종 부유물이 엉켜있다. 악취가 심하다.
▲ 수목원 내 조류원 바닥 배설물과 깃털 등 각종 부유물이 엉켜있다. 악취가 심하다.
ⓒ 김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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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경기도의 한 수목원이다.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고 물에는 녹조가 잔뜩 낀 채 각종 오물들과 깃털이 떠다녔다. 사육장 내의 환경도 심각하다. 열악하다 못해 더럽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이런 환경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제대로 서식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사랑앵무와 토끼, 기니피그가 살고 있는 철장 수목시설 대신 콘크리트 벽면에 풀잎이 그려져 있다.
▲ 사랑앵무와 토끼, 기니피그가 살고 있는 철장 수목시설 대신 콘크리트 벽면에 풀잎이 그려져 있다.
ⓒ 김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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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앵무는 청결한 환경이 기본이며,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지능이 높은 조류다. 따라서 앵무새의 새장은 행동풍부화를 위한 다양한 놀이 수단이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밥통과 물 외에는 어떠한 것도 없다. 새장에 최소한으로 달려있어야 하는 횟대조차 없다. 앵무 새장 밑에는 기니피그와 토끼를 합사한 비좁은 철장이 있다. 흙이나 웅덩이, 수목 시설 등 적절한 사육시설은커녕 동물이 몸을 숨길 곳도 없다.

어쩌다가 이런 환경이 그대로 방치된 걸까. 이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21일 경기도의 한 수목원에 전화를 걸었다. 이 수목원 관계자는 "수목원 내에 조류원 담당이 따로 없어서 시청 관리자를 바로 연결해주겠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토요일이라 전화가 연결되진 않았다. 

이 수목원의 열악한 환경은 이미 언론의 지적을 받은 바 있다. 2016년 9월, 한 언론이 <OOO수목원 관상조류원 관리 엉망>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보도 이후 2년이 지났지만, 개선된 부분은 없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물 보존과 연구를 위한' 수목원 내 동물원 운영은, 사실상 관람객 유치를 위한 전시 목적으로 바뀐지 오래다. 앞서 소개한 세종 소재 수목원의 경우도 어린이들의 생태학습과 관람객에 대한 볼거리 제공을 목적으로 동물마을을 개장했다. 

경기도의 한 수목원도 관람객의 관찰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다 보니 수목원 내 동물들의 삶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열악하다. 통상 공립 수목원의 경우 입장료가 대부분 무료에 가까우리만큼 저렴하다. 동물들을 위해 쓸 수 예산이 많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여러 지역에 산재돼 있어 시설과 동물들 상태에 대한 관리 감독도 어렵다.

우리의 관심에 죽고 사는 이들

동물의 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열악한 환경, 아무런 자극 없는 수 년의 무료한 생활 그 안에서의 스트레스를 우리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동물원은 각 동물들의 생태적 환경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며 무료함을 달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 수목원의 독수리가 철장 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동범위가 하루 200㎞를 넘는 독수리가 철장 안에 갇혀있다.인간 판단하에 공간을 넓힌다 한들 이 독수리를 만족시킬 수 없을 거다.
ⓒ 김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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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을 충족해줄 수 있는, 책임질 수 있는 경우에만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적절한 공간 조성에도 허덕이는 공립 수목원들이 동물들의 삶과 행복을 책임져줄 수 있을리 없다.

그나마 대형동물원의 경우 공립수목원 동물원보다 형편이 낫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여름에 시베리아 호랑이에게 인공눈을 뿌려준다고 한다. 에버랜드엔 동물들을 위해 나무그늘과 폭포 등이 설치돼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대전 오월드도 동물 우리마다 스프링클러 시설 정도는 갖추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게 자유를 얻는 것보단 못하다. 그러나 대형동물원의 경우 이번처럼 동물원 문제가 이슈 될 때마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재정상황이 수목원과 같은 소형 동물원보다 나으며, 동물보호단체와 수천 명의 관람객의 관심과 시선이 닿기 쉽다.

공립 수목원의 경우 어떠한가. 처음 설립 당시에서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다. 수목원 내에 동물원을 설립하는 것도, 동물 복지에 대한 것도 별다른 규정이 없다. 이 많은 '동물나라' '동물농장' '동물마을'들을 정기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것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수목원에 온 관람객들이 그 안의 작은 동물마을에 세심히 신경 쓰고 따져 묻기도 어렵다. 수목원의 동물들에겐 감시자가 없다. 변화의 물결에 탑승하기 어렵다.

책임질 수 없다면 멈춰라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는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퓨마 호롱이의 죽음을 통해 동물들의 갇힌 삶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또렷히 인지하게 됐다. 이 세상의 모든 동물원이 없어졌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어렵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아주 최소한의 고통만 받길 바란다. 관람객 한 명 더 유치하기 위해 곰이나 원숭이, 앵무새와 같은 지능 높고 사회성 발달한 동물들을 관리도 허술한 수목원에 가둬 놓아야 할까. 이를 우리는 허락해도 될까? 수목원에 어울리는 건 쇠창살과 콘크리트 벽에 갇혀있는 동물이 아닌, 풀잎과 나무 사이에서 뛰노는 동물들이다.

더 나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기폭제는 늘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죽어야만 변하는 사회는 암울하다. 슬픔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 이전에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더 빠르게 생태동물원으로 바꿔나가라고 요구하자. 그럴 능력이 없다면 동물원을 만들 수 없게 하자. 그렇게 줄여나가자. 이게 그들을 가둬놓고 멋모르고 즐기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정말 최소한의 도덕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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