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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려운 일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애 키우는 일은 정말 애끓는 일이다. 어릴 때도 느꼈지만 나이가 들면서도 느낀다. 태어난 시점에서 몇 kg도 안 되는 어린 아기를 수십 년간 가르쳐서 제대로 가치관이 정립된 어엿한 인간으로 자라나게 하려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무한하게 필요하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전부 '육아의 베테랑'은 아니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부모도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였던 것은 아니니까. 부모들도 원래 아기였다. 부모가 될 무렵이라고 해서 세상 모든 일에 통달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을 사는 한 사람으로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도 좌충우돌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애를 키우는 것이 좋을까. 완벽한 부모가 되기는 어렵고, 아이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데 말이다. 정답은 없겠지만, 이 책 <어른은 어떻게 돼?>가 제시하는 길도 하나의 방법이다. 책의 부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각자의 속도로, 서로의 리듬으로'
 
어른은어떻게돼
 어른은어떻게돼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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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려 애를 넷(!)이나 키우는 가족의 육아일기다. 이 집에는 06년생 미우, 07년생 유나, 10년생 준이, 13년생 시온이 2남 2녀 대가족이 산다. 한국은 지금 바야흐로 저출산시대를 맞이하야 애 하나 키우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애를 무려 넷이나 키우는 가족의 이야기니, 띠지부터 범상치가 않다. "도쿄에 살고 있습니다. 아, 애는 넷이구요." 

'도쿄에서 애를 넷이나 키우니 살림살이가 넉넉한 상류층인가 보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적극적으로 돕는 가족인가 보다'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겠지만, 글쎄 그런 육아와 책이 말하는 '애 넷 육아'는 약간 다르다. 이들 부부는 서로의 리듬으로 자립을 지향하는 육아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박철현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한국인이다. 저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2001년에 일본에 건너갔고, 그곳에서 일본인 아내와 결혼했다. 저자의 다른 가족은 한국에 살고 있다. 결혼 당시 저자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때문에 장인이 두 사람의 결혼을 대놓고 반대하진 않았지만 긍정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저자는 과거에는 저널리스트로 근무했다가 후엔 술집을 운영했었고, 현재는 인테리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서로 다른 직업을 오간 것이다. 지금은 '노가다 뛰는 칼럼니스트'라는 프로필을 두고 글을 쓰는 일도 겸하고 있다. 이 책도 <경향신문>에 쓴 저자의 육아 에세이가 환호를 받아 탄생한 것이다.

이런 환경을 두고 보면, 저자는 가족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고, 직업도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니 육아가 쉬운 상황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애 넷 키우기에 돈이 넉넉할 정도로 버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저자와 아이들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핵심은 '아동복지', '자립과 존중'이다.

우선, 일본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국가에서 제공한다. 일본 정부는 아동복지를 차근차근 준비해 자국이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가 되도록 노력했다. 일단 신청하고 보라는 식으로 다양한 제도에 대한 정보가 소식지를 통해 제공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지원받기 위해 일터에서 돌아와 고된 몸을 이끌고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하는 일은 없다.
 
취학지원금 외에도 아동수당이 연3회 나오고 초등학교까지 병원비가 완전 무료다. 2008년에 고교교육 무상화 법안이 통과돼 국공립고등학교의 경우 수업료도 공짜다. 반드시 4년제 대학을 나와야 하는 사회 분위기도 아니다. -23P
 
또 지역사회의 교육 행사나 복지 제도 지원이 매우 잘되어 있다. 일본이라고 사교육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이 저렴한 가격에 교육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덜어진다. 책에 따르면, 동네센터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였지만 지금은 은퇴한 분들이 자원봉사로 영어, 바둑, 주산, 자수 등을 가르친다. 이런 강좌를 저렴한 가격에 배울 수 있기에 사교육 부담이 적다고 한다.

일본의 튼튼한 아동 복지가 아이들의 활동을 안정적으로 보장했다면, 아이들의 행복은 저자 부부의 독특한 육아 철학이 만든다. 저자 부부는 아이들이 자라고 성장하는 데 있어서 자립과 존중을 강조한다. 저자 부부는 대부분 일들은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정하고, 아이들이 스스로의 규칙을 지키도록 유도한다.

속옷은 자기가 손빨래하고, 세탁물은 바구니 안에 넣고, 밥은 자기가 먹을 만큼 푸고 다 먹은 후 식기는 스스로 치우게 한다. 마른 세탁물은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 개고, 쓰고 난 필기도구 역시 자기가 치워야 한다. 이런 규칙은 저자에게도 적용되기에, 아빠인 저자도 세탁물을 세탁물 바구니에 넣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책에 재밌는 일화가 있다.

저자가 피곤하다 보니 바구니에 던진 옷이 마룻바닥에 떨어진 적이 있다. 그러자 저자의 딸 유나는 이걸 다시 저자에게 갖다 준다. 옆에 세탁물 바구니가 있으니 다시 아빠한테 줄 것이 아니라 그냥 네가 넣어두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저자가 말하자, 유나는 명석한 논리로 저자에게 반박한다.
 
"아빠 피곤한 건 잘 알겠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피곤해. 엄마 일 많은 건 아빠도 당연히 알 것이고, 미우도 소프트볼 때문에 매일같이 연습해서 피곤하고, 준은 저랬다간 나한테 맞고, 시온이는 아직 우리 룰에 해당사항 없고, 우리 모두 다 이유가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는 나하고 약속을 했어.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그런데 약속을 어겼어. 지금 나는 아빠한테 어긴 약속을 지킬 기회를 주는 거야. 고마운 줄 알아야지." -111P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배인 아이가 아니면 하기 힘든 말이다. 저자는 이런 자립을 가르치면서 규칙을 엄하게 적용하되, 아이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고 공부는 덜 하더라도 혼내지 않는다. 봉사를 하거나 다른 아이들을 돕고 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관심을 둔다. 아이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성장시키는 일에 관심이 많아 한국의 문화를 새기거나 다양한 부가활동을 하는데 여념이 없다.

잘 준비된 아동 복지와 자립 교육, 이것이 저자가 타국에서 4명의 아이를 키우는 비결이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각자의 속도로 자립하는 것을 존중하고, 서로의 리듬을 지키면서 공부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를 키운다. 아이가 자라서 한 사람 몫을 하는 밝은 사람이 되도록 키우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인생을 편하게 살은 사람이 아니다. 영화학과를 졸업했지만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또한 외지에서 실업으로 인해 여러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되고 싶은 어른은 못 되었어도,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는 가족을 만나고 키우는 데는 성공했다. 저자는 첫 애가 태어날 때 애가 애를 낳아서 어쩌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할 만하지 않을까.

어른은 어떻게 돼? - 각자의 속도로, 서로의 리듬으로

박철현 지음, 어크로스(2018)


태그:#육아, #일본, #가족, #교육,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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