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포스터.

<명당> 포스터. ⓒ 주피터필름

 
성경의 전도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한 세대는 가고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땅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영원하다. 현 시대에도 유산 계급과 무산 계급을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바로 땅을 소유했느냐다. 초등학생들 장래희망이 건물주, 즉 임대업자인 시대. 치솟는 땅값을 보며 박탈감을 느끼는 가지지 못한 자들, 더 많은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가진 자들의 욕망이 휘몰아치는 대한민국에서 양자 간의 욕망을 조율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과제다. 

훌륭한 묏자리를 쓰기 위해 권력 간의 충돌이 일어나고 몰래 겹장을 하는 꼼수를 쓰거나 살인까지 자행하는, 한 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영화 <명당>이 19일 개봉했다. 이러한 피 튀기는 전쟁을 단순히 풍수지리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1970년대 강남 재개발을 다룬 영화 <강남>이 오버랩되지 않는가? 

땅에 대한 욕망,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여 이를 대대손손 물려주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은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일견 풍수지리가 그 주제인듯 보이는 이 영화가 제공하는 함의는 실로 오묘하다. 

역사에 대한 재해석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명당>의 한 장면

<명당>의 한 장면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명당>은 역사적 배경을 알고 관람해야 재미있다. 지관 박재상(조승우 분)은 왕에게 묏자리가 잘못되었음을 간언한다. 그러나 이를 명백히 기만하는 세력이 등장하고, 왕을 능멸한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처벌받기는 커녕 오히려 왕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이 있다. 이는 상가집에서 객기를 부리던 왕족(지성 분)이 자신을 '흥선군'이라고 소개하는 장면에서 단 한 번에 이해가 돼 버린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재미있었고, 관람 직전까지 이 영화의 배경 시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더 즐거웠다. 흥선군이 등장한 그 시점부터 영화에 대한 몰입감은 실로 대단했다. 

묏자리를 잘 쓰면 2대에 왕이 탄생한다는 '2대 천자'라는 그 단어에서부터 본인 아닌 아들을 왕으로 즉위시켰던 조선의 유일무이한 왕의 아버지 '대원군'을 접목한 부분이 기가 막혔다. 또 자리를 두고 다투는 클라이막스에서, 그 '2대 천자'의 자리는 묏자리를 쓴 사람은 물론이고 국가의 대를 끊는다는 지관의 해석에 다시 한 번 전율했다. 

역사를 소재로 쓴 영화는 무수히 많지만, 소재 활용도 하나만으로는 내가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영화 <명당>을 일순위로 꼽고 싶다. 다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는 이같은 절묘한 역사 활용에 비하면 작은 흠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명당'을 찾아 조상의 묘를 쓰고 자식의 공부운 혹은 취업운을 위해 집 터를 옮기려는 이들의 모습 등 영화 속 내용은 현 시대와 겹쳐지기도 한다.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뽑은 대통령 등 집권자들이 가장 먼저 맞딱뜨리는 현실 역시 기득권 세력들의 큰 목소리다. 땅은 물론이고 이제는 미디어까지 소유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철옹성 앞에서 고전하는 집권세력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명당> 속 왕 현종(이원근 분)이 김좌근(백윤식) 앞에서 무릎을 꿇는 모습은 현실과 역사를 한 번에 관통해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 땅의 세습, 우리는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명당>의 스틸 사진

<명당>의 스틸 사진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이제 한국에서 자신이 나고 자란 계층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어느 '가문' 출신인가, 물려줄 재산이 있고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할 부모가 있는지는 예전 못지 않게 각 개인의 삶에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문에 대한 집착은 결국 '성씨'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남성 중심주의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불공평과 불행을 세습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역량을 쏟에 붓게 만들 수도 없다. 자신의 노력으로 가난하지만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보다, 편하게 살다가 다른 사람들이 취업할 나이 쯤에 상가를 하나 상속 받는 사람이 선망 받는 지금의 한국이 과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이들은 공무원 시험에나 몰리며 필연적으로 체념하는 방관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풍수지리와 2대 천자에 집착하던 영화 <명당>의 집권층들은 결국 일제에 나라가 병합되고 자신들의 대마저 끊기는 결과를 보게 되었다.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 더 이상 욕망하지 않는 오포세대가 주축이 되어 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만으로 나라 경제가 지탱될 수는 없다.

영화 <명당>의 마지막 장면, 독립운동을 위해 무관학교를 세울 자리의 풍수를 잡아달라고 부탁하자, 지관이 사람이 모일 자리를 잡아주는 그 장면은 실로 유의미하다. 더 이상 인류 사회는, 그 유전자의 근원이 어떻든 간에 조그만 땅을 두고 가문을 세우는 그런 좁은 개념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인터넷과 블록 체인의 이 시대에서, 어느 나라든 간에 제대로 된 혁신을 만들면 그것은 순식간에 전 세계에 퍼지게 되고, 그 사람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소위 말하는 그 플랫폼 비즈니스의 주역들은 주커버그나 스티븐 잡스 같은 미국인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예나 지금에나 땅에만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그 모습이 안타깝다. 

땅이 차지한 자가 아니라 결국 사람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자가 진짜 승자가 되었다. 이 영화가, 추후 남성중심적이고 토지중심적인 이 가치관에서 벗어난 어떤 세련된 노마드적인 문화가 탄생에 기여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이에 대한 화두를 던진 좋은 영화였다.
명당 영화 명당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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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투자자, 소설가, 아마추어 기자. "삶은 지식과 경험의 보고(寶庫)이자 향연이다. 그러므로 나 풍류판관 페트로니우스가 다음처럼 말하노라." - 사티리콘 中 blog.naver.com/admljy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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