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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전기계량기가 붙은 집.
 다섯 개의 전기계량기가 붙은 집.
ⓒ 서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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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전기계량기를 만났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한 지붕 아래 다섯 가구가 사는 집입니다.

1960년대 서울에 인구가 몰리면서 셋방살이가 등장했습니다. ㅁ자 개량한옥에서 문간방이나 아랫방을 신혼부부나 대학생, 직장인들에게 세를 주던 방식입니다. 본래 한 채의 집으로 지어진 것을 방마다 세를 주다 보니 부엌과 화장실이 따로 마련되지 않아 불편했고 그 중에 가장 불편한 것이 전기요금을 낼 때였습니다.

어느 집은 식구가 많아서 전기를 많이 쓰지만, 문간방에 혼자 사는 직장인은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니 전기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그러니 주인이 적당히 이 방은 한 달 전기요금 1만 원, 저 방은 5천원, 문간방은 3천원 등으로 분배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집에서 냉장고나 TV라도 하나 새로 들이는 날이면 은근히 눈치 전쟁이 시작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개량한옥도 시간이 지나 헐리고 대신 그 자리에 다가구 주택이 들어서면서 아예 각 세대별로 별도의 전기계량기를 부착하기 시작했습니다. 1층엔 주인이 살고 2층에는 전세를, 그리고 반지하에는 월세를 사는 세입자가 있는, 한지붕 세가족 집이라면 전기계량기를 3개 붙여야 하겠지요. 여기에 옥탑방을 올리고 2층 전셋집도 둘로 나누어 세를 받는다면 계량기를 5개 붙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굴뚝의 개수를 보고 그 집을 부유함을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도 예전에는 연료가 부족해서 겨울이면 한 집에 난로를 하나만 떼는 경우가 많았지만, 19세기 석탄을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연료비가 저렴해지자 집 안에 여러 개의 벽난로를 설치하는 집이 생겨났습니다.

거실에 하나, 침실에 하나, 자녀방에도 하나, 한 집에 벽난로를 세 개만 놓아도 그럭저럭 잘 사는 집이었고 여기에 식당에도 하나, 살롱에도 하나씩 둔다면 정말 잘 사는 집이었습니다. 벽난로마다 별도의 굴뚝이 있어야 했으니 지붕 위에 몇 개의 굴뚝이 있는지, 그 굴뚝에 몇 개의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는지를 보면 그 집의 부유함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지사 굴뚝이 많을수록 부유한 집이었겠지요.

지금 벽난로는 사라지고 전기가 모든 것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19세기에는 굴뚝의 개수가 많을수록 부유한 집이었지만 지금은 어느새 반대가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도심의 다가구 주택, 다세대 주택들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꿈의 집 현실의 집(서해문집)"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


태그:#다가구주택, #전기계량기, #서윤영,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꿈의 집 현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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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건축학과 졸업 후 설계사무소 입사. 2001년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작가 데뷔 2003년부터 지금까지 15년간 12권의 저서 출간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오마이뉴스를 시작합니다. 저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2015) /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2009) / 꿈의 집 현실의 집(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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