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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 지금?   (p9)

한밤중에 도배를 하자는 아내와 두 말없이 따르는 남편의 대화로 소설집 <바깥은 여름>의 첫 이야기는 시작된다. 집안 풍경과 대화하는 부부의 얼굴을 상상해본다.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몰입한다. 
 
<바깥은 여름> 책표지
 <바깥은 여름> 책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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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게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한 문장에서 멈췄다. 입을 틀어막을 뻔 했다. 52개월된 아들이 후진하는 어린이 집 차량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고 했다.

'헉~ 아들이 죽었어?'

아내가 왜 그리 무기력하고 이상하게 행동했는지, 남편은 왜 그런 아내를 지켜만 보고 조심스러워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때부터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 장착되어 문장이 읽힌다. 내가 겪은 일인 듯 직접적인 슬픔이 느껴진다. 아이를 잃고 일어나는, 직접 겪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할 일상의 묘사가 좋았다. 동네 사람들의 변해가는 시선과 행동을 표현한 부분도.
 
"아내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본다고, 아이 잃은 사람은 옷을 어떻게 입나, 자식 잃은 사람도 시식 코너에서 음식을 먹나, 무슨 반찬을 사고 어떤 흥정을 하나 훔쳐본다고 했다." (p23)

처음 사고 소식을 듣고는 함께 슬퍼하고 모두 안타까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시장을 보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하는 일상을 감시 당하는 느낌, 말을 걸기보다 슬슬 피해 다니는 모습이 야속하면서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을 잃고서도 밥이 들어가는구나, 시장을 보는구나" 하는 눈초리. 죄인처럼 고개 숙이며 힘 없이 꾸역꾸역 사는 모습을 기대한 걸까. 그런 시선이 서운하고 불편했다. 아내는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외출을 점점 삼가게 된다.

자신에게 일어난 슬픔은 언제든 인정받고 위로 받기를 바란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는 그 마음가짐이 다르다. 너무 오래 슬퍼하면 '이제 그만 울라'고, '우리가 그만큼 위로하고 슬퍼해줬으니 이제 됐다'고 남의 슬픔에 대해 함부로 기한을 정한다. 남의 불행이 전염병처럼 내게도 옮지 않을까 피해 다닌다. 당사자는 슬픔을 아직 추스르지 못했는데, 주변의 시선에서 또 한번 상처받는다.

슬픔이나 고통을 견디는 강도가 개인마다 다르다. 짧게 슬퍼하고 털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이 있다. 슬픔을 끝내는 시점은 분명 있겠지만 개인별로 시간차는 발생한다.
 
"왜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벌써 잊을 수 있어?"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는 일은 위험하다. 상실과 결핍을 경험한 사람이, 슬픔을 겪는 당사자가 충분히 슬퍼하고 떠나 보낼 준비가 되었을 때 끝낼 수 있다. 주위에서 아무리 지혜로운 말로 설득해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영역이다. 자신의 동굴에서 제 발로 걸어 나오는 수밖에 없다. 답답하고 속상해도 기다려줘야 한다.

이 책은 7개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제일 처음에 나오는 <입동>이 아이를 잃은 부부의 이야기다. 첫 번째 작품부터 감정을 출렁이며 읽혔다. 나머지 6개 작품도 공통적으로 상실과 결핍에 관한 이야기다.

처음부터 마음을 뺏겨 나머지 작품도 재미있게 읽었다. 김애란 작가의 작품 중 <두근두근 내 인생>을 최고로 꼽았는데, 이 책이 순위를 바꿔놓았다. 한동안 <바깥은 여름>을 추천하며 다닐 것 같다.

바깥은 여름 (여름 한정판 리커버)

김애란 지음, 문학동네(2017)


태그:#바깥은 여름, #김애란, #상실, #결핍,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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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을 꿈꾸지만, 매번 바른생활의 삶.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다. 하고 싶은게 뭔가는 아직도 찾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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