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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자유로운 싱글로 살 때보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리고 난 직후부터 드는 이런 생각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이건 조금 불합리한 것 같은데.'
'나, 행복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런데 왜 그런지 뾰족하게 이유를 알 수도 없고, 아무도 그 답을 명확하게 가르쳐주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요즘 것들의 사생활>이라는 책은 스스로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 독서시간
 요즘 것들의 사생활 독서시간
ⓒ 이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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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결혼식 대신 친구들과 게임 한판 하며 시간을 보낸 부부, 동거하다가 그저 대출받기위해 혼인신고를 한 커플, 평등육아, 5:5 육아를 실천하는 부부,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부부 등이 등장한다.

다양한 삶을 존중하기보다 당연시 되는 가치들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서 '이건 아닌 것 같다' 싶은 결혼제도 및 결혼 문화에 질문을 던지고 각자에게 맞는 답을 찾아가며 사는 요즘 젊은 부부들의 이야기를 인터뷰한 책이다.

결혼 만 1년째. 내게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시리즈가 있다. 가령 이런 것들.

1.
"명절마다 당연하게 시댁을 먼저 가고 그 뒤에 친정에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시댁을 가는게 싫은게 아니라, 너무 당연하게 '시댁 먼저'가 싫어." 
이렇게 말하는 내게 엄마는 혼을 내셨다.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나만 변하기로 했다. 어딜 먼저 갈지는, 우리의 스케줄과 편의에 따라 결정한다.

2.
"내 동생은 여보에게 존댓말을 쓰는데, 여보는 내 동생이 여보보다 어리다고 해서,
당연하게 말을 놓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여보가 손 윗사람이라 그렇다고? 근데 왜 형님은 여보보다 손 윗사람인데 여보랑 맞존대를 하는거야? 여보 말대로라면 형님도 여보한테 말을 놔야하잖아? 결국 남편은 내 여동생과 서로 맞존대를 한다. 서로 격의없이 친해지지 않는 이상 이게 맞다.

3.
"다른 사람들과 말할 때도 처갓집이 아니라 처가댁이라고 말 하는 습관을 들여줘.
장인, 장모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장인어른, 장모님이야. 입버릇처럼 나오는 작은 습관 하나하나가 더 무서운거야."

남편은 무의식적으로 나오던 아내의 친정을 하대하는 말버릇을 고쳤다.

4.
시댁에 가서 내가 집안일을 하게 된다면 남편이 '걱정 말라고, 돕겠다'고 했다. 나는 "네가 내 일을 도와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너의 일을 돕는 거야"라고. "며느리라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의 부모님이니까, 어른이시니까 집안일을 돕는 거야"라고 대답해 주었다. 시댁에 가면 집안일은 남편이 하며, 나는 옆에서 남편 일을 돕는다.

남편은 참 선한 사람이고 절대 가부장적인 사람이 아닌데,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습득해 온 관습과 사고방식, 말버릇들이 있었다. 남편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왔던 거라서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고, "네가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라는 말과 함께 서로 불편한 부분들을 고쳐나갔다.

누군가는 내게 피곤하게 산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상관없다. 그 누구도 내 인생에 있어 내 권리와 내 행복에 대해 나만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말이다. 아니다, 싶으면 움직여야 한다. 내가 먼저 목소리를 내고 행동으로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고, 내 인생은 변하지 않는다. 결혼한 지 1년이 훨씬 지난 지금, 나는 나의 결혼생활과 고부관계에서 꽤 만족한다.

시부모님이 굉장히 개방적이시고, 결혼한 자식을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새로운 가정'으로 여겨주시는 덕분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스스로 사소하지만 불편한 점들을 모두 개선해 보기위해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조금 외로웠다. 함께 공감은 하지만 같이 행동으로 움직이는 동지가 없었다. 내가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읽으면서 속이 다 후련했던 이유다.
 
'나는 결혼 했다고 해서, 내 아내가 된 사람에게 '당신은 우리 집에 이런 의무가 있어'라고 말할 자격이 나에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P56)

'사실 나와 어머니는 원래 남이었는데, 남편과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잖아요. 남편이 있기 때문에 내가 어머니한테 잘하려고 하는거고요. 그러니까 뭔가 문제가 있다면 30년 넘게 관계를 맺어왔던 분들이 알아서 해결을 해주고 내가 편안할 수 있게 배려를 해줘야 하는 거지, 이걸 갓 결혼해서 만난 지 한두 달도 안 된 여자들끼리의 갈등으로 치부하면 안 되죠. 시댁과의 일은 무조건 해결 주체가 남편이어야 해요.' (P123)

'서로가 서로의 모습대로 존재할 수 있어야 그게 진짜 행복한 결혼생활인 거 잖아요.'(P152)

 

어찌 이렇게 공감 가는 말들만 쏙쏙 하는지(!) 명절 때마다 나오는 단골 기사는 명절 증후군에서 B급 며느리로 바뀌었다. 느리지만 조금씩 사회가 변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요즘 세대는 다르다. 요즘 것들은 남들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생각대로 산다.

이런 사람들과 이런 책들이 많아져야 한다. 당연한 삶이 아니라, 다양한 삶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나는 남편에게도 이 책을 읽기를 권해볼 작정이다.

덧붙이는 글 | 저의 개인블로그에 올렸던 서평입니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 : 결혼생활탐구 - 요즘 젊은 부부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법

이혜민 글.인터뷰, 정현우 사진, 900km(구백킬로미터)(2018)


태그:#요즘것들의사생활, #B급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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