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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청년이 정치활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저하게 하는 것과 확신하게 하는 것이 가득한 이 정치판에 뛰어든 이, 여성최초 제주도지사 후보였던 고은영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활동가인 혜민과 연주가 함께 만났다.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또는 꿈꾸는 여성청년들의 사연을 받았고 이를 중심으로 고은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고은영x여세연의 제주도 푸른밤. 장장 5시간이 넘게 이어진 대화를 4회차 기사로 정리해보았다. 1, 4회차는 혜민, 2, 3회차는 연주가 작성하였으며 1회차씩 연달아 게시될 예정이다. -기자말

[이전 기사]
1톤 트럭에 오른 무일푼 후보, 그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지난 8월 30일 고은영과의 인터뷰에 앞서 정치활동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는 여성청년들로부터 사연을 받았다. 각자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들이었다. 여성청년들이 정치를 하는데 있어 '주저하게 하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검열과 내부투쟁이고, '확신하게 하는 것'은 성취의 경험임을 사연과 고은영의 답변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본격정치수다]고은영x여세연 제주도 푸른밤" 웹자보
 "[본격정치수다]고은영x여세연 제주도 푸른밤" 웹자보
ⓒ (사)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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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에게 정치적 자격을 묻는가
 
첫 번째 사연 : "저는 20대 여성입니다. 부모님께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은 제가 해낼 수 없는 일에 무모하게 뛰어든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런데 오빠가 하는 모든 일에는 '얘가 나중에 큰 자리를 얻게 될지도 모르니'라는 전제가 깔려있어요. 오빠는 언제든지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지원하면서, 왜 저에겐 그 '혹여'나 '만약에'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요."
 

내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여자애가 무슨 정치냐. 사범대나 가서 선생이나 해라"였다.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는데 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가 딸이기 때문'이었음을 후에 자각하게 되었다. 이 사연 또한 딸이기 때문에(여성이기 때문에) 정치를 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처럼 치부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에 고은영은 본인의 경험으로 답했다.

"고등학생 때 엄마한테 '오빠는 태한인데 왜 나는 은영이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오빠는 크게 될 사람이니까 그렇게 지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나는? 그 말이 오랫동안 맴돌았어요. 그 당시엔 잘 알진 못했지만, 살아가면서 그 이야기 자체와 제가 살아온 환경들을 계속 복기했고 피해의식에 시달렸어요."

고은영은 제주로 이주한 후에 과거 경험들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더듬어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가족들과 공간적으로, 물리적으로 분리된 후 과거를 관찰 할 수 있게 되었고, 구체적인 피해가 있음을 알아챘다고 했다.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분리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결국엔 아주 개인적인 것이 아주 정치적인 것이고, 나의 당사자로서의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인 것이죠. 나에게 정치적 자격을 묻는 그 공간, 하지만 눈물나도록 친밀한 그 공간과 용기 있게 분리할 것은 분리해야 해요.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지언정 연대자들과 함께 눈물 뚝뚝 흘리면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분리의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에게 자격을 주는 것은 결국 본인임을 알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단다. 자기 검열에 빠지더라도 나를 건져주고 사랑해주는 연대자들이 있었기에(1회차 기사 참고) 제주도지사로 출마까지 하게 된 것이다.

"정치라고 하는 것은 저에게 기대한 역할이 아니셨죠. 오히려 시집을 잘가는 것, 이런 것을 기대하셨고요. 부모님은 여전히 제가 정치를 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분리된다고 하더라도, 혹은 가족들로부터 자격을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 청년들은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편견과 혐오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전문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나이로 인해 무시 받거나, 태도에 대해 지적받는 등 '정치할 자격'을 의심받는다.
 
“난개발 막는 여성청년도지사”를 내건 선거사무소 개소식. 청년이 정치하기 힘든 제주의 정치적 토양에도 불구하고, 고은영은 여성 청년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난개발 막는 여성청년도지사”를 내건 선거사무소 개소식. 청년이 정치하기 힘든 제주의 정치적 토양에도 불구하고, 고은영은 여성 청년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 제주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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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양한 여성청년 정치인의 얼굴이 필요하다
 
두 번째 사연 : "저는 정치를 하고 싶지만, 겁이 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 나를 어린 것으로 보고 무시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제가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작은 일에 분노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 감정적인 태도가 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치를 할 생각하면 토론에서 침착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나오는 제 태도가 걱정입니다."
 
 
이 사연에 고은영은 "화를 내면 안 될까요?"라며 반문했다. 사람마다 추동하는 에너지가 다른데 고정적인 역할과 사고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남성 정치인이 소리를 지르고 버럭 화를 내도 그 정치인을 두고 '감정적'이라고 하진 않는다. 결국 여성의 목소리와 생각을 '감정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은영이 여성청년으로 정치에 등장했을 때, 토론회 등의 자리에서 공격하고 휘젓고 소리 지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초반에 지역사회에서는 저를 두고 '리틀 이정희'라고. 저에게 대선국면에서 이정희 후보가 보여준 모습을 덧씌우는 거예요. 아무래도 여성정치인의 얼굴이 많지 않으니까, 제가 굉장히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투영하는거죠."

막상 토론회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위험분자'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고, "고은영 후보는 안전하게 이야기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선거제도 개혁 관련 토론회에서는 사회자가 신지예 후보에게 "생각보다 점잖으시네요"라고 말한 일화를 설명하며, 고은영은 이것이 여성청년 정치인들에 대한 편견에 대한 반응이라고 했다.

"고은영 후보 안전해, 신지예 후보 생각보다 점잖아, 라고 하는 것이 편견에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거기에서 화내면 안 될까요? 점잖고 안전한게 우리의 미덕일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마다 다른 얼굴에 저마다 다른 스타일이 있고, 어떤 얼굴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여성청년에게 유독 씌워지는 '위험분자' 이미지가 있다. 결국 여성청년의 얼굴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기존의 어떤 얼굴에 덧씌우거나, 여성청년을 하나의 집합처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이다. 고은영은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얼굴들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혜민도 여성 정치인의 다양한 얼굴들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여성정치인 안에서도 여성청년한테 가혹하잖아요. 다양한 여성 청년 정치인들의 모습이 애초에 없었고, 사라지고. 아니면 아예 기혼 여성으로 점핑해서 00댁으로 이야기되어 버리니까요. 한편으로 우리가 다양한 얼굴을 이야기하면서도, 자기검열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우리 스스로도 여성정치인에 기대하는 수준이 남다르게 높은거예요. 의도치 않게."

우리는 여성정치인에게 '아재 정치'로 일컬어지는 남성 중심 정치판에서 다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혜민은 그 정치판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현실적으로 놓여져 있는가를 같이 고민하기보단 남성정치와는 달라야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나 고민이 든다고 했다. 결국 보다 많은 여성의 얼굴이 정치판에 등장해, 정치 생리를 바꿔가야 하지 않을까.

얼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당에서 인물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당들은 청년 정치인, 특히나 여성 청년 정치인을 발굴하고 있을까. 다음 사연은 당에서 청년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강원도 하드캐리 원팀’ 영상 캡쳐. 50대 남자로 대표되는 ‘아재 원팀’ 정치를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정치판에서 여성청년의 모습을 보고싶다.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강원도 하드캐리 원팀’ 영상 캡쳐. 50대 남자로 대표되는 ‘아재 원팀’ 정치를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우리는 정치판에서 여성청년의 모습을 보고싶다.
ⓒ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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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치인, 왜 사라지고 있을까
 
세 번째 사연 : "당 활동을 7년째 하며 당의 주요 직책을 맡았던 청년들이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나이, 경력이 있는 분들은 당의 직책에 따른 임기를 마친 후에도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청년보다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당에서 청년 정치인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관심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청년이 정치를 주 업으로 하기에 어려운 상황인데, 고은영님은 선거 이후 정치활동에 대해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신가요?"
 
 
이 사연의 문제의식은 정당활동에서 청년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고은영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회를 주면 된다'는 단순한 해법을 제시했다.

"청년들이 왜 사라질까요. 평등하지 않아서인 것이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인 것이죠. 10년, 20년 뒤에 그 기회가 내 기회가 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이론적으론 단순하지만, 현실의 정치는 청년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2018년 지방선거 결과 또한 '50대 남성'으로 정리된다. 2018 지방선거 전체 후보(9317명) 가운데 20·30대 후보는 653명으로, 그 비율은 7%에 불과하다. 청년들이 정치를 하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청년들의 정치는 실전경험보다는 도전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제주에는 기초의회가 없다. 기초의회가 없다는 것은 정치신인들이 차근차근 밟아갈 단계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정치판에서 청년들의 입지가 좁다는 것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제주의 106명 후보자 중에 2030 청년 후보가 6명으로, 5%에 그쳤다. 이는 전국 평균보다 낮은 수치이다.

고은영은 "구체적인 정치적 학습을 통해서 정당인을 키워나가는 것이 정당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제도 시행과 더불어 청년에게 기회를 주고 정당인으로 육성하는 교육 또한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으로 갈수록 겉핥기식으로나마 만들어놨던 제도들이 작동하지 않고, 교육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 가장 화가 난다고 했다.

"결국엔 4-50대에 '될 만한 사람들'을 데려와서 꽂는 형태란 말이에요. 지역의 청년들이 정당활동을 하면서, 미래를 가져가면서, 지금 혹은 10년 뒤에라도 공천받을 생각을 하면서 당에 헌신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래서 기성정치에 대해 불만이 크죠."

고은영은 네트워크를 늘리고, 기성의 방식으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문화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투쟁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고 사연에 답했다. 청년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의사결정 구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나눠 가져야 정치가 바뀔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고은영은 "제주 녹색당에서 키워온 청년 정치인과 4년 뒤에 경쟁하는 것"이라 답했다. 제주에서 여성청년 정치인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고은영이 동네정치부터 도지사 선거까지의 경험들은 다음 3회차에서 나누고자 한다.

(*3회에서 계속)

태그:#여세연, #고은영, #여성청년, #녹색당, #제주도푸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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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정치적 역량과 연대를 강화하고 사회 전반에서의 성평등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여세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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