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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어머니는 자장가로 '섬 집 아기'라는 동요를 불러주셨다. 내게 이 노래는 즉효 약이었는데 노래가 감미로워서는 아니었다. 사실 그 반대였다. 공포였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 달려옵니다.


어떻게 이 노래가 자장가가 될 수 있나. 노래는 어머니의 부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가사로 어머니의 부재를 느꼈고 가사로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제서야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고 잠을 청했다.

며칠 전, 온 가족이 함께 잠을 잤다. 열대야가 원인이었다. 도저히 에어컨이 없이는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같은 천장을 바라보니 까마득한 옛날 일이 생각났다. 나는 어머니에게 대뜸 물었다. 어떻게 그런 노래를 자장가로 불러 줄 수 있느냐고.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크게 웃으셨다. 그러고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추억의 자장가를 다시 부르셨다.

우리에게 타임머신은 없지만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건 아니다. 어머니가 자장가를 불러 주시는 순간 나는 과거로 돌아갔다. 노래는 여전히 나를 외롭게 했고 또 안도하게 했는데 그때와 달라진 건 어머니의 주름살뿐이었다. 그것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나는 애써 눈물을 감췄고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이 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 폭염이 준 선물이었다.

추석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추석의 유래에는 이런 설이 있다고 한다. 고대 사회에서는 밤이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보름달이 뜰 때면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8월 15일(음력)은 일 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날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날을 큰 명절로 여기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시대가 많이 흘렀다. 추석이라고 집밖으로 나가 축제를 즐기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고 공포마저 사라졌을까. 어머니의 노래를 이십 년 만에 들으면서 나는 어머니의 부재가 무서웠다. 이제 어머니의 부재는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피할 수 없는 확실함으로 내게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가구 가운데 '1인 가구'의 비중이 가장 높다고 한다. 2045년이 되면 3명 중 1명은 1인 가구로 살아갈 것이라는 통계도 나왔다. 이제는 누군가와 같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잠들 기회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우리의 공포가 사라질까.

이번 추석에 모두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한 번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이유도 없이 무서워 부모님을 찾아가 같이 자자고 말했던 경험 말이다. 꼭 부모님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오랫동안 같이 잠을 자지 않은 누구라도 좋을 테다. 나이가 들어 남사스런 일일지는 모르나, 혹시 아는가.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설명되지 않는 안도감에 단잠에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인권연대 <우리시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글을 쓴 최우식 님은 인권연대 회원 칼럼니스트으로 활동 중입니다.


태그:##추석, ##섬집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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