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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 나오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피시방은 요지경이다. 피시방에는 유치원생부터 노인까지, 노숙자부터 기업체 사장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온다. 피시방이란 곳은 단돈 천원으로 그의 신분, 재산, 나이에 관계없이 적어도 한 시간 동안은 현재를 벗어나 가상의 공간에서 무한한 자유를 만끽하며 때로는 한잔의 공짜 음료까지 얻어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피시방의 하루하루는 세상의 축소판과 같다. 나는 그곳에서 오년이란 짧다면 짧은 시간을 보내며 어쩌면 인간사에 벌어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압축해서 경험해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은 필자가 전에 써올렸던, 경제민주화나 사회정의와 같은 무겁고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웃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여러분들이 일상에서 마주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손님으로 맞아 생계를 유지하는 한 자영업자의 생존기다.

쳅터 1. 시작부터 낚이다

십 수 년의 회사 생활 중 딱 40세가 되면서 부업(결국 전업이 되었지만)을 알아보았다. 컴퓨터 전공자이고 관련 업종에 종사하였기에 하던 일과 조금은 연관된 피시방을 선정하고 전문 개설 업체로부터 입점할 상가 몇 군데를 소개받았다.

그중 부동산에서 통상 좋은 입지로 꼽는 왕복 8차선 대로변에 바로 인접한 사거리 모퉁이 상가, 그것도 거주지에서 5분 거리, 신축 건물이라 바닥 권리금도 없는 금상첨화인 곳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입지는 교과서적이었지만 건물과 바로 인접한 상권 대부분이 다세대주택으로 이루어진 서민 주거 지역이라 염려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신축건물답게 주변 시세보다 상당히 비싼 임대료도 문제였다. 결국 임대료가 마음에 걸렸던 나는 결정을 미루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 컨설팅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자리를 다른 피시방 업체가 보러왔고 내일 계약할 예정이란 내용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특별히 건물주에게 부탁해 오늘 계약하기로 했으니 지금 빨리 인감도장을 가지고 부동산으로 나오라고 했다.

늦은 시간에 온 다급한 연락, 오늘 아니면 안된다는 긴박한 내용에 경황도 없이 옷도 대충 걸치고 인감도장을 들고 나갔다. 나는 목적지로 출발하면서 일단 그곳에서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그 다짐도 무색하게 나를 둘러싼 부동산업자, 건물주, 컨설팅업자의 압박에 그야말로 얼떨결에 계약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수개월 후 피시방 손님 중 부동산업종에 종사하는 손님으로부터 그때 그 상황은 부동산이나 컨설팅 전문 업체에서 결정을 주저하는 고객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손님은 그 바닥 용어로 그런 행위를 '낚시질'이라고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쳅터 2. 피시방을 두고 경쟁을 논하지 말라

피시방은 참 많다. 물론 요즘 대표적 과열 업종인 편의점과 치킨점에 점포 숫자로는 대적하지 못하지만, 피시방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는 전국에 점포수가 2만여 개에 달하는 대표적 과열 업종이었고 지금 많이 진정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1만6천여 개가 영업중일 정도로 창업자들이 많이 선호하는 업종이다.

당시 개업을 수 일 앞두고 나는 늦은 밤은 물론 새벽에도 벌떡 일어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인적이 끊긴 거리에 색색의 조명을 뽐내는 수많은 심야업종의 간판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피시방 간판들, 가진 모든 재산을 걸고 돌이킬 수 없는 주사위를 던진 절박한 상황에 나는 그 간판들을 몇 번이고 헤아렸고, 온몸에 스멀스멀 퍼지는 막연한 두려움과 초조감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당시 낙점한 점포의 지근거리에 피시방이 4개나 되었다. 그중 한 군데는 백대가 넘는 대형 피시방이었고 또 한 군 데는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골목길에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있었다. 한마디로 이웃사촌을 경쟁업자로 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컨설팅 담당자에게 "주변에 이렇게 피시방이 많은데 여기는 포화상태가 아닌가?"라며 불만스럽게 묻자 그는 "자영업은 적자생존의 세계이다, 여기 피시방이 많다는 건 이 지역이 그만큼 되는 자리라는 거다, 마음 독하게 먹고 싸워 이겨야 한다"며 자영업 준비생의 약한 정신자세를 타박했다.

그렇게 두려움과 기대 속에 피시방을 열었다. 개점 첫날 그래도 소위 말하는 '오픈빨'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학생들이 방과 후 시간대에 정말 노도와 같이 밀려와 혼을 쏙 빼놨다. 그러나 그래봐야 두어 시간. 학생들이 학원 가려고 일제히 빠져나가자 적막강산으로 변한 가게에서, 특히 심야시간대에 완전히 비어버린 좌석을 바라보며 다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곱씹어야 했고 이런 상황은 삼개월 지속해 이어졌다. 손님은 쉽게 움직이지도 않고 쉽게 끌어올 수 없다는 걸 초보 자영업자로서 뼈저리게 느낀 시기였다.

자영업 자체가 포화시장이기에 정도의 차이일 뿐 경쟁은 어느 업종이건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피시방의 경쟁은 다른 업종과는 그 질이 다르다.

새로운 피시방이 열거나 장사가 이전 같지 않다 싶으면 피시방 사장들은 알바들을 적진(?)에 정찰을 보내거나 때로는 자신이 용감하게 적진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정찰병은 상대 피시방의 좌석 점유율부터 우리 단골손님 유무, 무료 서비스, 이벤트  등을 확인한다.

사장들은 이렇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방에 맞대응 하거나 새로 문 여는 피시방에 손님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여러 대책을 강구하게 된다. 그래서 새로 문 연 피시방은 때로는 실제 손님보다 주변 피시방의 알바와 사장들이 더 많이 들락거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실시간으로 피를 말리는 업종이다.

이런 과열 경쟁은 때로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손님을 지키고 빼앗기 위해 요금 할인이나 무료 음료서비스를 넘어 라면, 칼국수 같은 무료 식사 제공까지, 더 나아가 상대 PC에 바이러스 유포, 출입구에 인분이나 쓰레기 투척, 화장실 변기 막기, 여름에 에어콘 전원선 절단 등의 극단적 '범법' 행위까지 감행하기도 한다.

이 정도 되면 마음 약한 초보 사장들은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경쟁 업체라도 이웃 사장들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내 가게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상도를 지키며, 나만의 경영 철학과 이상을 실천해보리라 했던 초보 사장의 꿈은 치졸하고 야비한 행위도 서슴지 않는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잔혹한 생존 게임이라는 현실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게 되는 것이다.  

쳅터 3. 먹튀(무전취식객)와의 전쟁

손님을 상대하는 자영업이라면 온갖 손님을 만나게 된다. 특히나 피시방은 다른 업종과는 다른 어려움이 바로 '먹튀' 손님이 적잖다는 것이다. 가게를 오픈 하고 삼일 만에 소위 말하는 '먹튀'를 만났다.

저녁에 들어온 20대 여성, 그녀는 들어와 얼마 되지 않아 온갖 먹거리를 후불로 시켜 먹기 시작했다. 당시 초보 사장이었던 난 아무런 의심 없이 정말 친절하게 접대했다. 개점 초기라 썰렁했던 매장을 채워주고 많은 식음료까지 소비해주는 그녀가 고맙기까지 했다.

그렇게 저녁에 들어왔던 그녀는 몇 시간이 지나 나와 심야 알바 교대시간인 밤 12까지도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해보니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수많은 먹거리의 흔적을 쌓아둔 채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녀가 계산해야할 사용요금은 삼만 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난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중간 정산을 해야 하니 정산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고, 그녀는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돈이 없어요" 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녀는 애초 돈없이 들어왔고 돈을 낼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난 그녀를 카운터로 불러들였고 이제 친절한 사장이 아닌 채권자의 처지에서 그녀에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경직된 단어로 사용금액 지불을 독촉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 수중에는 돈도 휴대폰도 심지어 휴지 한 쪼가리도 없었다. 이쯤 되면 경찰을 불러야 했으나 아직 심성이 여린(?) 초보 사장인 나는 차마 그렇게까지 할 수 없어 일주일 내 갚겠다는 각서만 받고 내보냈다. 그런데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삼일을 내리 온라인 바둑을 두어 쓰러질까봐 내가 먹으려고 싸갔던 아침까지 제공하며 모셨던 학자풍의 중년 남자 먹튀, 하루 종일 음료수 한 개로 버티며 게임하다 결국 무전취식으로 경찰에 연행되었지만 가출 청년이고 부모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며 경찰서에서 라면 끊여 먹여 훈방했다는 20대 먹튀, 낡은 외투에 다 떨어진 신발, 한눈에도 노숙자로 보였지만 그렇다고 차마 문전박대할 수 없어 공짜 커피 접대하고 두어 시간 후 그냥 내보냈던 70대 노숙자. 

그렇게 수많은 먹튀들에게 뒤통수를 맞으며 내공이 쌓여갔던 나는 몇 년 후부터는 카운터 앞을 스쳐지나 가는 손님의 모습만으로도 먹튀의 가능성까지 판단할 수준에 이르렀다. 

[피시방에서 본 요지경 세상 (하)] 초보 사장의 고민, '아무 알바 대잔치'

태그:#자영업, #피시방, #알바, #건물주, #먹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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