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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명절'이라는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이 날은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친지를 보는 시간이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한편 누군가에게 추석은 일상의 다양한 차별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성별, 장애, 고용형태, 성적지향 등에 따라 마주하는 여러 추석명절의 경험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명절' 이 되기 위한 고민들을 나누고자 한다. - 기자말

나의 호칭은 OO입니다

외국의 성소수자 행사를 가서 영어로 자기소개를 할 때면 이름을 이야기하는 것과 더불어 꼭 하는 것이 있다. 자신에 대한 호칭을 정하는 것이다. 대명사를 많이 사용하는 영어의 특성상 상대방의 성별정체성에 맞게 He 나 She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대화하는데 있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편 여성/남성 이분법적인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They 또는 Ze로 자신을 지칭한다. 그렇게 해서 자기소개를 할 때 이야기하는 "My pronouns are he/she/they/ze"라는 말은 해당 행사를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없이 평등한 공간으로 만들어가겠다는 서로의 약속이기도 하다.

영어와 달리 한국어는 그/그녀와 같은 대명사를 대화에서 사용하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한국어로 진행되는 행사에서 자신의 호칭을 소개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에서 성별에 따른 호칭 구분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빠/언니/형/누나와 같은 일상에서도 사용하는 호칭과 더불어 가족, 친인척간에 이루어지는 수많은 호칭들은 성별에 따라 구분되어 있고 이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예의로 이해된다. 그리고 명절과 같이 친지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이러한 호칭의 차이는 극대화된다.

도련님과 처남, 아가씨와 처제

추석과 같은 명절을 앞두고 으레 나오는 기사들 중 하나가 '가족 간 호칭예절'에 대한 정보이다. 결혼이주여성들에게 가족 간 호칭예절을 포함한 예절교실을 운영하는 지자체에 대한 기사들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호칭을 따로 예절로 익혀야 할 만큼 한국어에서 가족 간 호칭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장인/장모/처형/처제/형님/아가씨/아주버님/처남 등등.... 부르는 사람과 불리는 사람의 성별, 가족관계, 나이 등에 따라 변화하는 호칭들은 이주민들만이 아닌 한국 선주민들 역시 따로 배워야 할 정도로 복잡하다.
 
 가족 간 호칭표
 가족 간 호칭표
ⓒ 국민콜110(정부민원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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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호칭이 결코 평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여성이 남편의 동생들을 지칭할 때 '도련님, 아가씨'로 높이고 남성은 아내의 동생을 '처남, 처제'로 부르는 것, 남성의 집안은 '시댁'으로 높이고 여성의 집안은 '처가'로 부르는 호칭의 차이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문제제기를 하여 왔다. 이러한 호칭의 차별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의 집안을 더 높은 위치로 여김에 따라 만들어진 성차별적 관행의 결과물이다.

그래도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개선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립국어원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호칭에서의 성차별을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65%를 차지했고, 최근 여성가족부는 '제3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에 대한 개선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별에 따른 차등적인 호칭개선만으로 가족 간 호칭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나와 같은 트랜스젠더에게 있어서는 성별에 따라 구분되는 호칭 그 자체가 문제가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형수와 새언니, 호칭과 성별이분법
 

나에게는 남자 손위형제가 한 명이 있는데 몇 년 전 결혼을 했다. 당시 나는 막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조금씩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상황이었기에 호칭을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 되었다. 법적 성별로 하여 형수라고 부르고 도련님이라 불리는 것은 싫었고, 성별정체성에 따라 새언니라고 부르고 아가씨라고 불리기에는 가족들에게 막 커밍아웃을 한 상황에서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결국 나의 선택은 가능한 형수/새언니에 대한 호칭을 생략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주어를 생략하고 이야기가 가능한 한국어의 특성상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형수/새언니는 나를 그냥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렇게 호칭을 정리한 상황으로 벌써 몇 차례의 명절을 맞이하고 있다.

나의 경우는 서로를 이해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최적의 답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등 성별이분법에 맞지 않는 사람들 중 가족 간 호칭을 둘러싼 갈등을 겪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커밍아웃을 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법적성별에 따라 부모에게 아들, 딸로 계속 불리는 경우나 또는 가족들에게는 받아들여졌지만 명절에 사정을 모르는 친척들을 만날 때면 서로를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모를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동성커플에 대해 남편, 아내로 구분을 하여 부르는 등 성별이분법에 따른 호칭은 성적지향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호칭을 둘러싼 경험들에는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과 관련된 다양한 차별 경험들이 얽혀 있다.

평등한 호칭, 평등을 위한 선언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다양한 호칭으로 상대를 부르고 또 불린다. 그렇기에 호칭은 그 사회의 구조 속에서 발전하고 이를 반영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아가씨, 도련님' 등 여성에게만 존대를 요구하는 호칭이 여성이 차별받아 온 가부장제의 결과물이라면 화자/청자의 성별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호칭은 성별이 여/남 두 가지만 존재하며 자연스레 구분된다는 성별이분법 구조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위 호칭에 대한 개선의 논의, 문제제기를 단지 단어 몇 개를 바꾸자는 것으로 이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호칭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 그러한 단어들을 만들어낸 차별적 현실을 직면하고 차별금지법 제정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사회 전체의 차별 구조를 이야기하는 데까지 논의가 이어져 나가야 할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그러면 명절에 가족, 친지를 만나면 뭐라 불러야 하는가 하는 지 고민이 된다면, 당장의 언어적 관행을 바꾸기 어렵다면, 우선은 상대방에게 어떻게 불리고 싶은지를 물어보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부터 출발해보면 좋을 듯하다. 그러한 질문과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평등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추석은 다양한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고 부르는, 그럼으로써 보다 평등한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한희님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이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입니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equalityact.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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