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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밤의 한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 김광석,  '일어나' 노랫말  중에서


나는 10월 1일 네팔로 배낭을 메고 홀로 떠난다. 70일 정도 떠돌 것이다. 퇴직 후 친한 이들과의 술자리에서 사람들이 물었다.

"이제 뭘 할 거야?"
"응, 히말라야에 갈 거야. 혼자서 배낭 메고"
"뭐하러 가? 네 저질 체력으로 그 높은 산에? 고산병에 걸려 죽은 사람도 있대. 혼자 가면 위험해. 정 가고 싶으면 패키지로 편하게 가. 그러지 말고 나중에 우리랑 여행사 통해 유럽이나 가자."


나는 왜 혼자서 히말라야를 가려고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대답이 궁했다. 그저 막연히 퇴직하면 배낭 메고 히말라야 설산을 떠돌고 싶다는 생각을 늘 지니고 살아왔던 것 같다. 모임이 끝난 후에 나의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 보았다.

왜 히말라야인가
   
휘문산 정상에서
 휘문산 정상에서
ⓒ l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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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홀로 히말라야를 가려고 하는가? 나는 이제부터는 홀로서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퇴직할 때까지 늘 조직 안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7명 대가족의 일원이었고,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학급의 한 명이었으며, 군대에서는 늘 동료 소대원들과 같이 생활했었다.

직장에서는 동료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퇴근 후에는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가도, 등산을 가도 누군가와 같이 했고 나 홀로 시간을 보내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이제 퇴직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해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신과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부처님이 홀로 6년 면벽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었듯이 이제는 홀로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다. 물론 홀로 여행을 가도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 외국을 떠돌다 보면 홀로 있는 시간을 훨씬 많이 갖게 되어 과거를 떠나보내고 미래를 설계하며, 또한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될 죽음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히말라야인가? 나는 번잡한 도시보다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 도시의 아파트 숲속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도 항상 들꽃과 나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는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지니고 살아 왔다.

TV 프로그램 중에서 우리나라 50대가 가장 자주 본다고 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가끔 저렇게 살아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하지만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여건상 하는 수 없이 시간 나는 대로 등산을 하며 자연에 대한 갈증을 풀며 살아 왔다. 지금까지 국내에 어지간한 명산이라고 하는 산은 거의 다 가 보았다.

그래서 이제는 해외에 유명한 산을 가 보고 싶었다. 언젠가 한비야씨가 쓴 책들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퇴직 후 세계 여행을 떠나면서 가장 먼저 간 곳이 네팔이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한 살이라도 젊어 가장 체력이 좋을 때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모여 있는 험준한 히말라야를 갔다고 한다. 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나이인 지금, 가장 힘들지만 의미 있는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히말라야를 선택하였다.

어떤 태도로 히말라야에 갈 것인가? 무엇보다도 돈과 시간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기고 싶다. 지금까지 가족이나 동료들과 해외여행을 몇 번 가본 경험을 되살려 보면 늘 돈을 조금이라도 적게 쓸려고 아등바등 했다.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의 경우든 자유 여행의 경우든 조금이라도 돈이 덜 드는 여행을 하기 위해 얼마나 인터넷을 검색하였는지 모른다. 교통편이나 음식에서도 늘 돈을 계산하고 시간을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돈과 시간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즐기고 싶다. 물론 퇴직해서 시간은 완전 자유지만, 돈 문제만큼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돈은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니까.

하지만 오성급 호텔에서 잠을 자지 못해도 깨끗한 중급 정도의 호텔은 고민하지 않고 들어가는 태도로 여행을 하고 싶다. 나무, 풀, 꽃, 구름, 별을 보며 바람을 느끼면서 천천히 천천히 느리게 걷고 싶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삶을

히말라야를 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나는 히말라야의 높은 산을 날마다 하루에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열 시간 정도 걸어야 한다. 이렇게 한 달 이상의 일정을 세우고 보니 가장 걱정되는 게 체력이다. 나는 한평생 체력에 대한 열등감 속에서 살아 왔다. 무슨 일을 하든지 쉽게 지치고 힘들어해서 나 자신도 주위 사람들도 저질 체력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8월부터 달리기와 팔굽혀 펴기 운동을 매일 하고 있다. 달리기는 아침에 20분 정도 하고 팔굽혀 펴기는 아침과 저녁으로 65개씩 하고 있다. 처음에는 5분만 달려도 헉헉거렸고, 팔굽혀 펴기를 20개도 못했지만 날마다 하다 보니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운동을 하면서 늘 '오늘은 한 걸음만 더 달리자, 팔 굽혀 펴기 한 개만 더 하자'고 중얼거린다. 이제는 정말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남들의 인정과 칭찬,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운동하며 나의 삶을 살고 싶다. 
 
안산 희망 마라톤 대회(2018.9.16)
 안산 희망 마라톤 대회(2018.9.16)
ⓒ l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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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안산 희망 마라톤에 아내와 같이 참가했다. 나는 사람들이 그토록 달리기를 좋아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5km 마라톤에 8천 명을 포함하여 무려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나는 5km를 32분 46초의 기록으로 완주하였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성적이지만 처음 목표대로 걷지 않고 끝까지 달려서 기분이 좋았다. 달리기는 네팔에 다녀온 후에도 꾸준히 하여 내년에는 10km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날마다 달리는 것을 습관화하여 건강을 다지고 싶다.
  
퇴직 후에 의료보험증을 새로 받았다. 이제는 아내가 세대주가 되어 그 아래로 나와 두 아이, 장인과 장모 5명이 차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아내가 한참을 들여다 본 뒤 말했다.

"이제 내가 가장이네. 어깨가 갑자기 무거워지네."

갑자기 가슴 한편으로 허전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 왔다.

"그래 이제 나는 가장 사표 낸 거야. 당신이 가장이 된 것 축하해.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루 하루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그 무더웠던 8월의 더위도 까마득한 과거처럼 여겨지고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기조차 하다. 매일 출근하던 직장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있다. 어쩌다 문득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언젠가 반드시 오게 될 그 날에 나는 인생을 되돌아보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ε.  Δεν φοβʊμαι τίποτε.  Είμαι λεύτερος.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 조지 버나드 쇼

태그:#퇴직,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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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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