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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봉생리에 위치한 온양 방씨 일가의 선산에 벌초를 위해 많은 친척들이 모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식의 대규모 벌초 모습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봉생리에 위치한 온양 방씨 일가의 선산에 벌초를 위해 많은 친척들이 모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식의 대규모 벌초 모습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 방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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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면 대한민국 남자들은 '벌초'란 거사를 위해 연락을 주고받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형님이 아우에게, 삼촌이 조카에게 보내는 이 연락은 집안의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수단이다. 김장이 여성들을 한자리로 불러 모은다면 벌초는 남성들을 집합시킨다. 과거에 비해 조상의 묘를 돌보는 정성이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지만 무덤에 풀이 무성한 모습은 아직도 손가락질 받는 대상이다.

벌초는 대개 봄에는 한식, 가을에는 추석을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다. 벌초나 시제가 있을 때만 만날 수 있는 먼 친척들은 이웃사촌보다 훨씬 어색하다. 고향땅에서 어린 시절을 공유한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각기 태어난 고향도 살아온 환경도 전혀 다른 2세들의 어색함은 그 정도가 심하다.

하지만 이런 데면데면함은 속 시끄러운 예초기 소음에 곧 파묻히고 만다. 이들의 핏속에는 '혈연'이라는 유전자적 공통점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기라도 하듯 벌초에 들어가기에 앞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은 일장 설명에 돌입한다. '너는 이 사람과 몇 촌이고, 무슨 벌이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매년 들어도 헷갈리는 촌수, 머릿속에는 그냥 친척이란 개념으로 저장시킨 후에 본격적인 벌초는 시작된다.
 
벌초에서 낫이 사라진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역할을 해온 것에 비하면 그 존재감이 너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하지만 예초기의 등장에 따라 효율성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벌초에서 낫이 사라진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역할을 해온 것에 비하면 그 존재감이 너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하지만 예초기의 등장에 따라 효율성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 방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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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에서 낫이 사라진지는 오래다. 대신 예초기가 그 위용을 자랑한다. 낫이 소총이라면 예초기는 기관총 정도 되는 위치다. 달라진 풍경은 사용하는 도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핵가족화가 보편화되면서 4~8촌까지 모여 대규모로 벌초를 하던 풍경은 대부분 사라졌고, 요즘은 할아버지나 부모님 산소를 벌초하는 간출한 모습이 더 많다.

하지만 이 모습도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몇 해 전부터 벌초대행이 인기를 끌기 시작해 전문가(?)들이 벌초를 도맡아하는 풍경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상님들의 산소를 앞에 두고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두 노인의 뒷모습. 이들에게 있어 벌초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행사다.
 조상님들의 산소를 앞에 두고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두 노인의 뒷모습. 이들에게 있어 벌초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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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변하는 마당에 벌초의 방식이 변한다고 해서 그리 아쉬워할 필요는 없겠지만 무덤 속 조상님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어찌됐든 몇 시간에 걸친 힘든 노동의 결과로 말끔하게 정리된 조상님들의 산소가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벌초', 그 고단함 뒤의 단상(斷想)이 즐거운 이유다.

태그:#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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