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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자신의 농업 회사 건물(현재의 발산초등학교) 뒤뜰에 임의로 이곳저곳의 우리나라 문화재(보물 2점 등)들을 가져와 장식용으로 설치해 둔 광경을 둘러보고 있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 김재경, 박진미 두 예술인과 대구동학연구회 추연창 대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자신의 농업 회사 건물(현재의 발산초등학교) 뒤뜰에 임의로 이곳저곳의 우리나라 문화재(보물 2점 등)들을 가져와 장식용으로 설치해 둔 광경을 둘러보고 있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 김재경, 박진미 두 예술인과 대구동학연구회 추연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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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는 일본과 관련되는 역사 유적들이 매우 많다. 그 중에서도 오래된 것으로는 전라북도 기념물 421호인 최호 장군 사당과 묘소를 들 수 있다. 충청 수사로서 1596년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과 맞서 싸웠던 최호 장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했다. 묘소와 사당은 개정면 발산리 421번지에 있는데, 사당인 충의사는 후손 최호선이 1729년(영조 5년)에 세웠다.

최호 장군이 선조로부터 하사받은 칼 삼인보검과 칼집은 지금도 남아 있다. 본래 충의사 경내에 두었지만 현재는 군산 근대 역사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박물관 측은 삼인보검이 들어 있는 유리 진열대 위에 확대경을 설치해 두었다. 칼의 몸에 새겨져 있는 '三寅寶劍護身將令(삼인보검 호신장령)' 여덟 글자를 유심히 확인해보라는 뜻이다.  

임진왜란 때 활동한 최호 장군 유적도 있고

2011년에 문을 연 군산 근대 역사박물관(http://museum.gunsan.go.kr)은 해망로 240에 있다. 1층은 해양물류역사관(509㎡), 어린이박물관(126㎡), 수장고(113㎡)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근대자료 규장각실(84㎡), 3층은 근대 생활관(617㎡), 기획전시실(231㎡), 세미나실(73㎡)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여느 역사박물관들처럼 야외 마당에도 고인돌 등 볼 것들이 많다.
  
카페와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일제 강점기 당시 군산의 일본식 건축물들
 카페와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일제 강점기 당시 군산의 일본식 건축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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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근대 역사관은 '국제 무역항 군산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콘셉트 아래 선사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통해 물류 유통의 중심지였던 군산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상세하고 흥미롭게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군산의 역사를 조명한 '삶과 문화 코너', 지리적 중요성으로 물류 유통의 항구 기능을 확인하는 '해양 유통 코너', 군산 및 고군산의 문화와 역사를 조명하는 '바다와 문화 코너', 군산 인근의 해저 발굴 유물을 소개하는 코너 등이 핵심 볼거리들이다.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

근대 역사박물관 자체는 일제 강점기 건축물이 아니지만 인근에 있는 근대 미술관, 근대 건축관, 호남 관세 박물관, 미즈 카페 등은 모두 당시를 증언하는 역사 유적들이다. 기념물 87호인 호남 관세 박물관(장미동 49-38)은 옛 군산 세관이었고, 유형문화재 372호인 근대 미술관(장미동 32)은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이었고, 등록문화재 374호인 근대 건축관(장미동 23-1)은 조선은행 군산지점이었다.
 
군산시는 옛 군산세관을 외형은 그대로 보전하고 내부를 세관 역사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군산시는 옛 군산세관을 외형은 그대로 보전하고 내부를 세관 역사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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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관세 박물관은 1908년에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서울 역사,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더불어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근대 건축관은 1922년에 지어졌다. 처음부터 조선은행 군산 지점 건물로 신축되었는데, 조선은행은 일제 강점기의 침탈적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표 은행이었다. 

근대 미술관은 1907년에 건축된 일본 제18 은행 군산 지점을 재활용하여 쓰고 있다. 숫자 18은 은행 설립 인가 순서를 의미하며, 이 건물은 1945년 이후 대한통운 사무실로 쓰이기도 했다. 근대 미술관 옆 미즈 카페 건물은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했지만 일본인이 1930년대에 건립하여 무역회사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14일부터 16일까지 '군산 시간 여행 축제' 펼쳐져

근대 역사박물관과 미즈 카페 사이에는 도로를 건너는 횡단보도가 있다. 길 건너편 시장 입구에는 백여 명도 넘을 듯이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기 위해 운집해 있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대형 풍선 아치가 설치되어 있는데, 푸른 바탕에는 '빽투더 1930's 미션 독립 자금을 모아라!'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과 일제 수탈을 주제로 열린 2018년 9월 14-16일 '군산 시간여행 축제' 때 답사자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변에 설치된 <빽투더 1930's> 행사 상징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과 일제 수탈을 주제로 열린 2018년 9월 14-16일 "군산 시간여행 축제" 때 답사자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변에 설치된 <빽투더 1930"s> 행사 상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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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간여행 축제 때 거리에 설치된 형무소
 군산시간여행 축제 때 거리에 설치된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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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하지 않은 인파와 풍선 아치는 지금 '군산 시간 여행 축제'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14일부터 시작된 '군산 시간 여행 축제'는 16일까지 계속됐다. 빽투더 1930's는 1930년대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을 하자는 뜻이고, 당시 일제에 맞서기 위해 독립군 군자금을 모았던 선조들의 투쟁을 오늘에 되살리자는 의미이다.

대한광복회의 마지막 모금 활동이 이루어진 군산

일제 강점기 군산에는 어떠한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이 있었을까? 군산시청 누리집을 찾아보니 '광복회 우리견 사건(光復會員禹利見事件)'이라는 제목의 글이 발견된다.

광복회 우리견 사건은 1915년 음력 7월 1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창립된 무장 투쟁 항일 결사체 대한광복회의 '중심 인물 우재룡(禹在龍, 일명 우리견)이 군산 지역 광복 회원들과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된 사건'을 가리킨다. 글을 읽어본다.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에서는 1910년대 국내 무장 독립운동을 선도한 대한광복회가 창립되었다. 박상진, 우재룡, 채기중, 김한종 등 투사들은 친일파를 처단하고 일본 헌병대를 공격하고 현금 수송 마차를 탈취하며 위조지폐를 발행하고 일본인 경영 금광을 습격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전국 각 도와 만주에까지 지부를 설치하는 등 전국 조직을 갖춰 1919년 3.1운동과 의열단 창단의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달성은 달성'공원'과 '동물원'이 되었고, 현장에는 대한광복회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이나마 해주는 안내판 하나 없다.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에서는 1910년대 국내 무장 독립운동을 선도한 대한광복회가 창립되었다. 박상진, 우재룡, 채기중, 김한종 등 투사들은 친일파를 처단하고 일본 헌병대를 공격하고 현금 수송 마차를 탈취하며 위조지폐를 발행하고 일본인 경영 금광을 습격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을 뿐만 아니라 전국 각 도와 만주에까지 지부를 설치하는 등 전국 조직을 갖춰 1919년 3.1운동과 의열단 창단의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달성은 달성"공원"과 "동물원"이 되었고, 현장에는 대한광복회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이나마 해주는 안내판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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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의 우재룡(우리견) 지사 흉상. 우재룡은 1910년대 국내 무장 투쟁을 선도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의 지휘장으로, 대한광복회가 해체된 뒤 군산 일대에서 복원 활동을 펼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16년여 세월을 감옥에서 지냈다.
 대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의 우재룡(우리견) 지사 흉상. 우재룡은 1910년대 국내 무장 투쟁을 선도한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의 지휘장으로, 대한광복회가 해체된 뒤 군산 일대에서 복원 활동을 펼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16년여 세월을 감옥에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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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견은 우재룡(禹在龍), 김재수(金在洙), 김재서(金在瑞)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의병 대장, 광복회(光復會), 주비단(籌備團) 등 독립 운동 단체를 조직하여 군산과 각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광복회에서 우리견은 지휘장을 맡으며 각 지역의 부호들을 대상으로 무기 구축과 군자금 마련에 필요한 자금 마련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우리견과 광복회의 행동은 일제 경찰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1918년 광복회 회원들에 대한 대대적 검거로 이어져 광복회는 와해되었다. 이후 광복회 회원들은 체포되거나 도망을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되었다. 이때 우리견은 무사히 피하여 한국 각지를 돌아다니다 3·1 운동 이후 이재환(李載煥)·안종운(安鍾雲)·권영만(權寧萬)·소종형(蘇鍾亨)과 주비단을 조직하여 전라북도의 군산과 충청남도 지방을 중심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군산의 일제 강점기 유적을 둘러보는 소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으로 활동 중인 김재경, 박진미 두 예술가를 군산 시간여행 축제 현장에서 만났다. 두 예술가는 오래된 건물을 새롭게 리모델링한 사례들을 답사하여 성공 요인 또는 실패 요인을 둘러본 후, 다른 건물 리뉴얼 작업의 참고 자료를 찾아내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두 예술인은 "구 세관, 조선은행 군산 지점, 18은행 군산 지점, 일본 민간인 무역회사 등을 리뉴얼하여 외관은 살려둔 채 내부를 가꾸어 미술관, 건축관, 세관 관련 역사관, 카페 등으로 활용하는 군산의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모범 사례로 여겨진다. 다만 이곳을 둘러보니 우리들에게는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가 리모델링하려는 곳은 다른 도시의 거대 건물인데, 여러 동이 한 곳에 나란히 건립되어 있다."면서 "군산의 옛 건물들은 일렬로 놓여 있어 찾기도 쉽고 방문하기도 쉽지만 역사와 문화 분야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빼놓지 않고 두루 답사를 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에 견주면 우리가 리모델링하려는 곳은 한 울타리 안에 네 동의 큰 옛날 건축물들이 서로 복도로 연결될 만큼 인접해 있다. 이 건물들을 한꺼번에 음악당, 미술관, 공연장, 박물관, 상업 시설 등으로 리모델링하면 규모와 접근성에서 탁월한 명소로 금세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예술인은 "군산이 일제 강점기 때 두드러진 독립운동의 현장인 줄 처음으로 알았다."면서 "일제 강점기 시대로 돌아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일제 수탈의 참상을 직접 쌀가마니를 들고 모형 감옥에도 갇혀 보는 등 체험해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한 것이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접 쌀가마니를 들어보였고, 일제 수탈의 상징인 부잔교도 둘러보았다.

 
일제 수탈의 상징인 쌀가마니를 들어보이고 있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 김재경 화가. 2018년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열린 '군산 시간 여행 축제'는 일제 강점기 때의 독립운동을 재현하는 행사를 근대역사박물관 앞 시가지 일대에서 개최했다.
 일제 수탈의 상징인 쌀가마니를 들어보이고 있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 김재경 화가. 2018년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열린 "군산 시간 여행 축제"는 일제 강점기 때의 독립운동을 재현하는 행사를 근대역사박물관 앞 시가지 일대에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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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2월 경 주비단 활동이 일제 경찰에 의해 적발이 되어 단원 일동이 경기도 경찰부에 체포되었다. 우리견은 무사히 탈출하여 김재서라는 가명으로 군산 지방에 들어와 청년 단체와 노동 단체를 통해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우리견은 군산과 인천에서 미곡 매매를 하고 있던 이재환 및 권영만, 안종운, 소종형, 임규현 등과 함께 군산 지역을 방문하였다. 이들은 군산 지역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 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임시 정부에 송달하고자 하였다.

군산에 도착한 우리견 일행은 한호 예기 조합(漢湖藝妓組合)에 근거를 두었다. 백운학(白雲鶴)·임창현·기생 강국향(姜菊香) 등의 도움으로 고등계 형사 최기배(崔基培)·김경순(金秉淳) 등과 결탁할 수 있었다. 김경순과 최기배는 일제 경찰 신분으로 광복회에 포섭되어 광복회 활동에 기여했다. 해외에서 광복회로 전달되는 무기 반입을 도와 무기 소유를 쉽게 할 수 있게 해주었고 광복 회원들이 전라북도 지역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우리견은 군산 지역 광복회 회원들의 도움으로 군산 지역 부호를 방문하여 독립 운동 자금을 모집하고자 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다 1921년 5월 29일 군산 항구(港口)에서 독립 운동 관련자들을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경기도 경찰부에 의해 체포되었다.

우리견은 1921년 6월 10일 검사국에 송치되었고 1921년 6월 23일부터 경성 지방 법원에서 심문을 받기 시작하였다. 심문은 총 다섯 차례 진행되었고 1921년 12월 22일 우리견에 대한 예심 판결이 종결되었다. 예심 판결 결과 우리견에 대해서 광복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제령 7호를 위반한 죄목이 적용되어 사형이 구형되었다. 최종 판결은 1922년 4월 13일 경성 지방 법원에서 노무라[野村] 재판장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무기징역으로 최종 판결되었다. 이후 우리견은 16년을 복역하다 1937년 석방되었다."


시청 누리집은 '우리견을 중심으로 한 군산 지역 광복회 활동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면서 '첫째,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된 광복회가 그 한계를 극복하고 전국적 조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항일 구국 운동이 1910년 일제 강점기라는 상황에서 단절되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부호들을 대상으로 한 우리견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통해 당시 군산 지역의 사회 모습과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라고 '의의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일제의 우리나라 수탈을 상징하는 군산 내항 뜬다리(부잔교)의 현재 모습. 1910년대 국내 무장 투쟁을 주도했던 대한광복회의 지휘장 우재룡(우리견) 독립운동가는 조선인의 밀고로 이곳 군산 내항 인근 식당에서 일경에 체포되었다.
 일제의 우리나라 수탈을 상징하는 군산 내항 뜬다리(부잔교)의 현재 모습. 1910년대 국내 무장 투쟁을 주도했던 대한광복회의 지휘장 우재룡(우리견) 독립운동가는 조선인의 밀고로 이곳 군산 내항 인근 식당에서 일경에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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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회 지휘장 우리견이 체포된 군산 내항

우리견이 군산 항구에서 체포되었다고 하니 바닷가로 가보지 않을 수 없다. 근대 역사박물관 바로 뒤편이 군산 내항이다. 군산 내항은 아득한 삼국 시대 중에서도 말기인 660년(의자왕 20) 당나라 군대가 부여성을 공격하기 위해 배를 타고 진군했던 금강의 입구다. 강 건너로 당시 지명 기벌포, 요즘 이름 장항이 보인다.

하지만 군산 내항은 외세에 굴욕을 당했던 슬픈 현장만은 아니다. 1380년(우왕 6) 최무선, 나세, 심덕부 등이 이끄는 우리 수군 전함 100척은 진포(당시 군산 내항의 이름)로 내려와 500척의 군함에 1만여 명이 넘는 왜구를 무찔렀다. 진포 대첩 이후 한참 동안 왜구는 우리나라를 넘보지 못했다. 진포 해전은 세계 역사상 최초로 배 위에 대포를 싣고 치른 수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광복회 지휘장 우리견(우재룡)이 독립운동 중 체포된 군산 내항의 앞바다. 금강 너머로 장항(삼국 시대 당나라 소정방이 군선을 끌고 부여로 진입하던 당시 이름은 기벌포)이 보인다.
 대한광복회 지휘장 우리견(우재룡)이 독립운동 중 체포된 군산 내항의 앞바다. 금강 너머로 장항(삼국 시대 당나라 소정방이 군선을 끌고 부여로 진입하던 당시 이름은 기벌포)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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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랑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대한광복회 지휘장 우리견이 일제에 체포되었다니 너무나 안타깝다. 게다가 그가 일경에 잡힌 전말을 알고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산남의진 정용기 의병대장의 손자 정노용이 정리한 <백산실기(白山實記)>는 우리견의 전기에 해당되는 저술로 이 책에 "이놈들아!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속이는 것은 천도를 어기는 짓이다!"라는 우리견의 호통이 실려 있다.

우리견과 알고 지내온 조선인이 그를 속여 일경에 체포되도록 유인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증언이다. 평민 의병대장 신돌석이 포상금에 눈이 먼 친지로부터 암살당한 사실이 저절로 연상되는, 참으로 원통한 일인 것이다.      

배신자의 밀고는 참으로 원통하고 안타까운 일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라 하릴없이 군산 시내를 떠나 고속도로 쪽으로 나아간다. 최호 장군 사당에서 1km밖에 안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발산초등학교(개정면 바르메길 43)를 찾는다. 이곳 역시 일제 강점기의 자취가 가득 배어 있는 곳이다. 이 학교 건물은 일제 강점기 당시 거대 농장을 운영했던 일본인 시마타니 야소야의 사무실을 개조한 것이고, 교사 뒤에는 그 일본인이  농장의 문서, 귀중품, 현금, 미술품 등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3층짜리 콘크리트 창고도 남아 있다.
 
발산초등학교 뒤뜰의 보물 석탑. 이 석탑이 이곳에 놓이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이 학교 건물을 자신이 운영하는 농업회사 사무실로 사용한 일본인이 자기 마음대로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을 옮겨와 자신을 위한 장식물로 사용한 때문이다.
 발산초등학교 뒤뜰의 보물 석탑. 이 석탑이 이곳에 놓이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이 학교 건물을 자신이 운영하는 농업회사 사무실로 사용한 일본인이 자기 마음대로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을 옮겨와 자신을 위한 장식물로 사용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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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이 아니다. 창고 건물 옆에는 보물 276호 5층 석탑·보물 234호 석등·문화재자료 185호 6각 부도 등이 있다. 교내에 웬 불교 문화재들이 이토록 많은가 싶어 의아하지만 알고 보면 이 역시 나라를 빼앗긴 탓에 생겨난 결과물들이다. 

시마타니 야소야는 자기 마음대로 다른 곳에 있던 문화재들을 현재 위치로 옮겨놓았다. 자기 정원을 풍성하게 꾸미려고 남의 나라 문화재들을 마구 위치변경시켰던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결과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발산초등학교 뒤뜰이 빗물에 젖은 탓인지 모기들로 가득하다.

조금 더 나아가면 논산이다. 논산에는 현대 한국군의 신병 훈련소도 있지만 후백제 '망국'의 견훤 왕릉도 있다. 우리견(우재룡) 지사도 논산과 군산 일원에서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던 당시 이곳 견훤 왕릉에 들러 망국의 슬픔을 한탄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런 생각을 하니 견훤 왕릉에도 꼭 가보고 싶어진다. 충청남도 기념물 26호인 견훤 왕릉의 주소는 충남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산18-3이다.
 
견훤 왕릉으로 전해지는 '전(傳)견훤묘'는 충남 기념물 26호로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산18-3에 있다. 주소가 산 지번이머서 지레 답사를 포기하실 분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들판과 마을 가운데에 있다. 공식 주차장에서 오르면 계단을 따라 5분가량 걸리고, 반대편에서 오르면 차랑이 묘 바로앞까지 간다.
 견훤 왕릉으로 전해지는 "전(傳)견훤묘"는 충남 기념물 26호로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산18-3에 있다. 주소가 산 지번이머서 지레 답사를 포기하실 분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들판과 마을 가운데에 있다. 공식 주차장에서 오르면 계단을 따라 5분가량 걸리고, 반대편에서 오르면 차랑이 묘 바로앞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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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군산에서 보아야 할 일본 관련 답사지들

오늘 답사하지는 못했지만 군산에는 유형문화재 200호인 이영춘 가옥(개정동 413-7), 등록문화재 183호인 신흥동 일본식 가옥(일명 히로스 가옥, 신흥동 58-2), 일제 강점기 시절의 건축 양식을 복원하여 일본식 가옥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우당(월명동 16-8) 등 일본인들이 살던 집도 많이 남아 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수탈하기 위해 만든 임피 역사(등록문화재 208호, 술산리 226-1), 해망굴(등록문화재 184호, 금동 9-3) 등도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등록문화재 64호인 동국사(금광동 135-1)는 일본식 사찰 건물을 보여준다.

물론 군산에는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우리 손으로 세운, 미래의 문화유산들도 많다. 근대역사관도 그 중 하나이지만, 군산 3·1운동기념관(구암동 334), 군산 항쟁관(월명동 17-13), 옥구 농민 항일 항쟁 기념비(임피 역사 내), 평화의 소녀상(동국사 내) 등도 그런 성격의 문화유산들이다. 

태그:#군산, #우재룡, #우리견, #대한광복회, #한국예술인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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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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