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시가스 부당요금 - 상 ] 당신은 도시가스 요금을 더 내고 있다

잘못 끼운 첫 단추

전기, 가스, 수도는 3대 공공재다. 전기는 5대 화력발전 공기업(남동, 남부, 서부, 중부, 동서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으로 구성된 총 6대 공기업이 생산을 담당하고, 한국전력이 송전과 배전을 담당하는 구조다. 2000년 이후에는 민간 자본이 전력시장에 뛰어들어서 현재는 전력 생산의 약 20%를 민자발전사가 담당하고 있다.

요약하면 전력생산은 대부분 발전공기업이 담당하고, 민간에도 일정 부분 개방하여 안정과 혁신을 상호 보완하는 형태다. 그리고 전력거래소는 각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입찰로 공급받아 한전에 판매한다. 즉, 전기는 일정정도 경쟁 구조에서 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도시가스는 도입은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가 담당하되, 판매 즉 공급은 34개 민영회사가 지역을 분할하여 공급하는 형태다. 왜 이런 기형적인 구조가 되었을까?

우리나라의 도시가스 보급은 석유파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은 석유에 의존하던 한국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당시 정권으로서는 석유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였고, 장기간의 시장 조사 끝에 1986년 인도네시아로부터 LNG가스를 도입하여 본격적인 도시가스 시대를 열었다.

문제는 LNG 가스는 배관시설이 필요하다는 것. 정부는 민간기업에 배관 등 기간시설 설치 투자 대가로 지역을 분할하여 독점 공급하는 상식밖의 특혜를 부여한다. 왜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까?

1986년이면 전두환 정권 시절이다. 그 당시까지 전기(한국전력), 수도, 통신(한국통신)은 당연히 국가독점 형태의 공공운영 방식이었다. 그런데 동일한 공공재인 가스만 출발부터 민간 독점형태로 운영된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도로나 항만, 전기와 같은 기간사업은 초기 막대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본의 회수 기간 또한 길다. 그러나 가스는 배관만 설치하면 곧바로 투자금이 회수되고 지역 분할 독점 구조여서 경영 또한 안정적이다. 이런 점 때문에 도시가스 공급권은 출발부터 모든 기업들에 초미의 관심사였고, 결국 신규 시장 개척을 열망하던 대자본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즉 한국의 가스 분야는 태생부터 수입-공기업, 판매-민간기업이라는 기형적 구조에 지역분할 독점 공급이라는 특혜가 덧붙여져서 탄생한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경기 변동에 좌우되지 않는 안정적 시장에 소비자에게 매월 현금으로 징수하는,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가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34개에 이르는 도시가스 회사가 사실상 SK E&S, GS그룹, LS그룹, 대성그룹, 삼천리그룹 등 소수 대기업이 지역자회사를 설립하여 과점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지역마다 이름을 달리하여 마치 별개의 34개 회사가 지역을 분할하여 공급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소수 대기업이 도시가스 공급을 좌우하고 있다.
 
도시가스 모회사와 자회사 현황
 도시가스 모회사와 자회사 현황
ⓒ 이재선

관련사진보기

   
독점의 폐해

이 가운데 SK E&S는 25%의 시장 점유율로 가장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있다. SK E&S 도시가스 회사의 주요 재무현황은 다음과 같다(2017년 기준).
 
'1) 이익잉여금'은 2017년까지의 순이익 누적액 (자료출처 : 금융감독원 제출[DART] 감사보고서)
▲ SK E&S 도시가스 자회사 경영실적 "1) 이익잉여금"은 2017년까지의 순이익 누적액 (자료출처 : 금융감독원 제출[DART] 감사보고서)
ⓒ 이재선

관련사진보기

 
1) 도시가스 사업 매출액은 34,495억 원(62.3%) (자료 출처 : SK E&S 홈페이지 투자정보)
▲ SK E&S 도시가스 사업 재무 현황(2017년) (단위: 억 원) 1) 도시가스 사업 매출액은 34,495억 원(62.3%) (자료 출처 : SK E&S 홈페이지 투자정보)
ⓒ 이재선

관련사진보기


위 도표는 겉보기에는 항시 보아왔던 대기업의 재무제표로 보인다. 그리고 도시가스 회사들은 그다지 높지 않은 수익률을 얻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위에서 얘기했듯이, 기업의 부침이 극심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매월 안정적인 현금이 안정적 수익률로 보장되는 시장은 사실상 없다. 게다가 도시가스 회사들은 사업 초창기 막대한 수익을 거두어 투자금을 이미 다 회수한 상태다. 도시가스 사업이 각 그룹에 중요성을 갖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불황도 없고, 투자금은 이미 다 회수한 상태에서 수익률이 보장된 사업. 전 지구적으로 자본과잉 시대에, 그래서 수익률 1%라도 더 안정적인 곳에 자본이 몰려다니는 시대에, 지역을 분할하여 독점하는 한국의 도시가스 사업이 봉이 김선달 사업이 아니고 무엇인가? 거기에 덧붙여 팽창된 부피로 얻는 부당수익까지. 도시가스 회사들은 국민의 생존권을 볼모로 가장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자본주의의 강점은 치열한 경쟁을 통한 혁신과 발전이다. 그러나 한국의 도시가스 회사들은 아무런 경쟁도 혁신도 없다. 도시가스 회사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근저에는 바로 이러한 비상식적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도시가스 회사들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국민경제에 기여한다면 누가 뭐라고 하는가?

에너지라는 막강한 무기를 움켜쥐고, 요금을 두 달만 연체하면 가스 공급을 중단한다는 협박성 고지서나 보내고, 통합고지도 거부한 채 개별고지 인정고지를 고수한다. 각종 불편을 호소해도 도시가스법령 운운하며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정확한 가스 계량을 위해 온압보정기를 설치해달라는 시민사회단체의 항의는 무시한 지 오래다. 배관 시설도 가스요금으로 다 징수한 뒤 사적 재산으로 편입하여 자산으로 돌려놓았다. 독점이 낳은 생생한 폐해다.
 
도시가스 공급중단 안내문
 도시가스 공급중단 안내문
ⓒ 이재선

관련사진보기


함부르크의 반란
 
독일 함부르크시 발전 재공영화 주민투표 기사
 독일 함부르크시 발전 재공영화 주민투표 기사
ⓒ 이재선

관련사진보기

   
2013년 9월 22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중요한 주민투표가 있었다. 50.9%의 주민이 기존의 민영화 된 전력회사를 사들여 재공영화 하는데 찬성 투표를 한 것이다. 독일은 1990년대 통일 직후 전력, 가스 등을 민영화 한 바 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민영화의 폐해가 나타나자 함부르크 시민들이 투표로 전력산업을 다시 공영화 한 것이다. 이것이 함부르크의 반란이다.

함부르크의 반란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매우 의미심장하다. 한국의 대자본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이 전력, 가스, 수도의 민영화를 줄기차게 주장하기 때문이다. 가스의 경우 직도입 자유화 주장이 대표적이다.

얘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현재 한국가스공사는 수급의 안정성 때문에 최소 20~30년 장기계약으로 가스를 도입한다. 그런데 그 사이 국제 가스 현물가격이 급락하는 구간이 있다. 현재의 도시가스 회사들은 그러한 기회를 이용해 자신들이 가스를 직도입하면 도입가를 낮출 수 있다는 논리다. (참고로 현행 직도입 물량은 자가소비에 한하고 있다. 도시가스 회사들은 이 제한을 풀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제 현물가가 낮으면 현물시장에서 가스를 도입하여 이익을 취하고, 국제 현물가가 높으면 한국가스공사에서 공급받겠다는 것이다. 이게 말인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저변에는 독점적 지위로 얻은 이익의 달콤함에 취한 게으른 기업가 정신이 깔려 있다.

지난 2017년 12월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지역난방공사의 민영화를 막기 위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이 제출한 것으로, 이 의원은 "가스는 석유 ·석탄과 유사한 성격인데도 '한국석유공사법'이나 '대한석탄공사법'에 근거해 설립된 한국석유공사 및 대한석탄공사와 달리 언제든 민영화가 가능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면서 "가스공사가 공기업으로서 가스산업의 안정성 확보와 국가의 에너지·자원정책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의된 법안은 민영화 대상기업에서 가스공사를 삭제하는 한편 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이 일정 비중 이상을 의무적으로 출자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역난방공사 관련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가스공사관련법은 아직도 법사위에 계류중이다. 법안의 시급한 처리가 요구된다.
  
도시가스의 공영성 확보는 가능한가

한국가스공사의 민영화 저지는 입법형태로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춘 상태다. 문제는 출발부터 민영화된 도시가스 재판매 영역이다. 이로 인한 폐해는 30여 년에 걸쳐 국민의 일방적 부담으로 전가되어 왔다.

도시가스 재판매 영역의 공영성 확보는 불가능한 것인가? 독일 함부르크시의 사례처럼 우리도 도시가스의 공영성 확보를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왔다.

지난 40년간 도시가스 회사들이 국민들의 필수공공재인 도시가스를 그들의 개인적인 독점사업으로 만들어온 과정과 근거, 그리고 결과가 모두 도시가스사업법에 함축되어 있다. 도시가스회사는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해왔다. 이를 위해 전체 도시가스회사들이 연합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한국도시가스협회'도 결성했다. 따라서 현재 수많은 도시가스와 관련된 문제점과 국민들의 불이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가스회사들의 독점체제를 보장하는 수단이 되는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

특히 주목할 것은 도시가스사업법 제7조 1항 등의 사업의 승계 조항 부분이다. 현행 도시가스사업법은 사업자가 사망할 경우 그 상속인이 사업을 승계하는 것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즉 영원히 독점분할 사업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업 분야와의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위헌적 조항이다. 공영방송, 면세점 등 공적인 요소가 있는 여타 사업의 경우 일정 기간 사업권을 부여하되, 반드시 재심사를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도시가스의 경우 공영성은 더 지적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현행 도시가스사업법 7조 1항 등의 승계 부분에서 10년 또는 일정 기간 경과 후 사업권 재심사를 받도록 법을 개정하여야 한다. 이것이 현행 독점의 폐해를 최소화 할 수 있고 나아가 도시가스의 공영성을 확보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부당요금 개선을 위한 시민들의 투쟁

부피 팽창으로 발생하는 부당요금 징수에 대해 시민사회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 중 일부 시민과 시민단체는 법원에 부당요금 환불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 소송이 이병철(전 도시가스소비자원장), 이옥주(식당업), 양철수(목욕탕업) 등 3인이 2007년 서울남부지법에 강남도시가스 주식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이 소송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 제기될 각종 소송의 판례가 되기 때문이다.

이 소송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이병철 등 위 3인에 대해 부과된 부당요금 환불 및 손해배상 등 주장에 대해 첫째 2007년 당시 실내에서 측정한 온압계측 데이터를 제출하지 못한 점, 둘째 2007년 당시 온압보정기가 KS 규격 인증을 받지 않은 점, 셋째 2007년 당시 가정용 온압보정기가 200여만 원에 이르러 온압보정기 설치로 인한 실효성이 없는 점 등을 들어 원고 패소라는 판결이 나왔다.

위 판결은 대단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재판부가 지적한 상황대로라면 현재는 가정용 온압보정기 가격이 10만 원대로 저렴해졌고, KS규격 인증을 받았으며, KS규격 인증을 받은 10만 원대의 저렴한 온압보정기로 측정한 데이터가 방대하게 축적되었기 때문에 위 판결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도시가스사 횡포를 고발하는 국민청원
 도시가스사 횡포를 고발하는 국민청원
ⓒ 이재선

관련사진보기

 
부당요금 환불 소송으로 시민 권리 되찾아야

지금까지의 얘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도시가스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34개 민영도시가스 회사들은 한국가스공사로부터 0도씨 1기압으로 도시가스를 공급받아 각 가정에 공급한다. 그런데 각 가정에는 온도상승으로 부피가 팽창된 도시가스를 계량하여 요금을 징수한다. 이 부당요금이 연간 약 4000억 원에 달하고, 지난 10년만 계산해도 34개 민영 도시가스 회사들이 도시가스 사용자들에게 부당하게 징수한 금액이 무려 4조 원에 달한다.

지난 10여 년간 산업자원부, 시민단체 등이 도시가스회사들에 수차례 정확한 측정을 위한 온압보정기 설치를 줄기차게 요구하였지만 도시가스 회사들은 독점적 지위를 악용하여 이를 철저히 외면하여 왔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도시가스소비자원'은 연 4천억 원에 달하는 도시가스 회사들의 부당요금을 돌려받고, 도시가스 회사들로 하여금 기존의 계량기가 아니라 각 가정의 온도와 압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원격 검침 온압보정기를 설치하도록 하기 위해 100만 소송인단을 모집하고 있다.

일정 수의 소송인과 요건이 갖춰지면 소비자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곧바로 도시가스 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미 상당수의 시민이 백만 소송인단에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환경도 변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집단소송제도를 강화하여 3~5배의 징벌적 배상규모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

권리란 주장할 때만이 쟁취할 수 있다. 깨어있는 시민만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밀고 간다.

[도시가스 부당요금 환수 1백만 소송인단 모집]
아래의 사이트에서 도시가스 부당요금 환수 소송인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www.cgca.or.kr

덧붙이는 글 | 이재선 기자는 도시가스소비자원 원장입니다.


태그:#도시가스, #부당요금, #도시가스 적폐, #정경유착, #온압보정기
댓글1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