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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발레극장의 역사
 
 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 발레극장
 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 발레극장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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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 발레극장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극장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볼쇼이극장보다도 크다. 건축면적이 11,837㎡이고, 내부 공간면적이 294,340㎥나 된다. 극장 한가운데 돔은 높이가 35m, 폭이 60m나 된다. 극장이 너무나 크고 둥근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시베리아의 콜로세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건물이 완성된 것은 1941년이고, 8월 1일 공식적으로 공연을 무대에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격화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박물관과 모스크바 트레차코프미술관, 볼쇼이극장의 물건들이 이곳에 옮겨져 보관되었다고 한다. 극장이 공식적으로 문을 연 것은 1945년 5월 12일이다. 이때 글링카(Mikhail Glinka)의 오페라 <이반 수사닌(Иван Сусанин)>이 무대에 올려졌다. 이 작품이 선택된 것은 러시아 최초의 오페라이기 때문이다. <이반 수사닌>은 <차르를 위한 삶(A Life for the Tsar)>으로도 알려져 있다.
 
 오페라 발레극장의 전면
 오페라 발레극장의 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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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 발레극장은 2005년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공연장으로 개조되어, 1,790명의 관객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레퍼토리의 선택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여기서 요구된 것이 '문학과 예술작품의 창의성' 즉 창작의 자유였다.

그러나 사회의 도덕과 윤리규범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 제한이 가해지고 있다. 그러한 것은 정부의 경제적인 지원과 제한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 측면에서 러시아에는 아직도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완전하지 않다.

극장 전면에 보니 세 개의 거대한 포스터가 걸려 있다.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프로코피에프(Sergey Prokofiev)의 발레 <신데렐라> 공연이 열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안내 자료를 보니 내부 객석이 원형극장 형태를 취하고 있다. 요금은 좌석에 따라 1,200루블에서 5,000루블로 다양하다. 인터넷 상에 공연모습이 1분 정도 나온다. 신데렐라 역은 엘라 페르손(Ella Persson)이 맡는다.

9월 22/23일에는 들리브(Léo Delibes)의 발레 <코펠리아>가, 25일에는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의 오페라 <보리스 구드노프>가 공연될 예정이다. 7월과 8월에 러시아를 가면 공연을 보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낮이 긴 여름에는 자연을 즐기고, 밤이 긴 계절에는 예술을 즐기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공연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레닌이 여전히 살아있는 도시
 
 레닌동상
 레닌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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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발레극장 앞이 레닌광장이고, 그곳에는 이름 그대로 레닌동상이 있다. 그리고 레닌의 양쪽에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두 개의 동상이 레닌을 호위하고 있다. 가운데 레닌은 외투에 손을 넣은 채 결연한 의지로 왼쪽을 쳐다보고 있다. 러시아의 레닌동상 중 가장 훌륭하다고 하는데, 예술적인 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얼굴 표정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고, 외투가 지나치게 크다.

레닌 오른쪽의 동상은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붉은 군대다. 이들은 모두 3명으로 총을 들고 메고 받치고 있다. 이들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지켜내는 전위대로 표현된 것 같다. 레닌 왼쪽의 동상은 횃불을 든 남성과 이삭을 든 여성상이다. 여기서 횃불은 혁명을, 이삭은 삶을 의미한다. 이들 동상 역시 작품의 정교성이나 예술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횃불과 이삭을 든 동상
 횃불과 이삭을 든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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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광장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보인다. 이곳이 시내 중심의 요지이기 때문에 약속장소로 쓰이는 것 같다. 광장의 남서쪽 끝에는 레닌스카야 지하철역이 있다. 또 주변에 화단과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어 쉴 곳도 많은 편이다. 레닌광장에서 오페라 발레극장을 보면 마치 신전 같은 모습이다. 그것은 원형극장 앞에 기둥을 세워 아케이드 형식의 로비와 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영화관 터에 있는 기념조형물
 
 최초의 영화관터 기념조형물
 최초의 영화관터 기념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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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동상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다 보면, 노보시비르스크 최초의 영화관을 알리는 조형물을 발견할 수 있다. 영사기에 필름이 걸려 돌아가는 형태의 조형물로, 영사기가 릴테이프 위에 놓여 있다. 이 기념물이 세워진 것은 2014년이다. 조형물은 높이가 2m로, 건축가인 부리카(Yuri Burica)와 조각가인 제말(Jemal)이 공동 작업했다. 조형물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1908년 이곳에 마호틴(Fyodor Makhotin)이 노보니콜라옙스크 최초의 영화관 '마호틴 시네마 극장'을 열었다."

이처럼 노보시비르스크에 최초의 영화관이 세워진 것은 1908년 사업가이자 서커스, 극단 운영자인 마호틴에 의해서다. 그는 영화관을 설립하기 전인 1896년 이미 영사기를 가지고, 노보니콜라옙스크, 이르쿠츠크, 톰스크에서 영화를 상영한 바 있다.

그리고 1908년 서커스사업을 접고, 노보니콜라옙스크에 정착해 이곳 야마로치나야(Yarmarochnaya) 광장에 영화관을 세운 것이다. 1911년에는 영화관 객석의 규모가 450석까지 늘어났고, 1917년 10월혁명까지 승승장구했다. 이때 상영된 영화가 30편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시설과 장비, 영화 배급 등에서 그가 경쟁자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최고의 영화사와 연결할 능력이 있었다. 그 때문에 노보니콜라옙스크 시민들은 최고의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혁명 후 영화관과 영화사 등이 국유화되었으며, 여전히 그는 영화관련 조직의 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1923년 해고되었고, 건강이 악화되어 그 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돔 레니나(Дом Ленина)로 불리는 필하모니아홀
 
 1926년의 돔 레니나
 1926년의 돔 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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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시비르스크에 필하모니아홀이 생긴 것은 1925년이다. 1924년 세상을 떠난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지도자인 레닌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져 돔 레니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건물 박공장식에 "레닌은 죽었다. 레닌주의는 살아 있다. 1870-1924"라는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처음에는 건물이 정치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노보니콜라옙스크 공산당위원회, 시베리아 방송국, 시베리아 공산주의 교육연구소 등이 입주하게 되었다.

이것이 문화와 예술을 위한 용도로 바뀐 것은 1935년이다. 1935년 노보시비르스크 청소년극장이 들어섰고, 1937/38년 무대 등 내부시설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1943/44년 건물 재건축이 이루어져, 고전주의 형태의 기둥을 가진 전면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1985년에야 현재와 같은 필하모니아홀로 바뀌게 되었다. 현재는 노보시비르스크 주립 필하모니아의 공연무대로 사용되고 있다.
 
 필하모니아홀
 필하모니아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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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기둥에 세 개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여름날의 재즈 공연이 8월 22일 저녁 7시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노보시비르스크 필하모니아에서 매일 라이브 음악을 즐기라는 플래카드도 걸려 있다. 9월 28일에는 전 세계 탕고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되어 있다. 가수는 베이스 바리톤 드미트리 리베로다. 필하모니아홀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공연이 있다. 공연내용은 http://filnsk.ru/en/에서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 혁명영웅들 
 
 혁명영웅공원의 조형물과 벽화
 혁명영웅공원의 조형물과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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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하모니아홀 뒤쪽에는 혁명영웅공원이 있다. 이곳을 가려면 고리키거리를 통해 가야 한다. 가는 길에 꽃시계탑을 볼 수 있고, 흑담비(black sables)의 호위를 받는 노보시비르스크 문장을 볼 수 있다. 혁명영웅공원은 1918년 1920년 1960년 시민전쟁(Civil War)으로 희생된 영웅들을 기리는 공원이다. 그 중 중요한 사람들이 1920년 1월 콜착제독의 군대에 사로잡혀 죽음을 당한 104위의 영웅들이다.

이곳에는 그들을 기리는 기념조형물과 벽화가 있다. 조형물은 횃불을 들고 있는 팔을 콘크리트로 조각했는데 예술성이 부족하다. 혁명을 상징하는데 주안점을 두다 보니 그리 된 것 같다. 벽화는 회색의 저부조로 혁명을 위해 총을 들고 나선 노동자 농민 군인을 표현하고 있다. 이 벽화를 만든 사람은 체르노브롭트세프(A. S. Chernobrovtsev)다.

 
 노보시비르스크의 현대적인 비즈니스 빌딩
 노보시비르스크의 현대적인 비즈니스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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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음산하다. 그곳이 일종의 공동묘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 우리는 이제 길 건너 마야콥스키 영화관으로 간다. 영화관으로 가려면 버거킹이 들어 있는 현대적인 비즈니스 빌딩과 니콜라이 소성당을 지나가야 한다. 이들 두 건물은 노보시비르스크의 전통과 현대를 상징하는 대조적인 건축이다. 그 빌딩에 'English First라는 큰 글자가 보인다. 러시아도 영어를 안 하고는 못 사는 시대가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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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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