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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오늘의 나를 있도록 만드는 정체성의 바탕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있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으며 그것은 결국 지나온 시간만큼의 기억이 밑바탕이 된다. 홍콩은 나에게 그런 도시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야경도, 화려하고 세련된 수많은 쇼핑센터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적어도 홍콩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나에게는.

주윤발, 유덕화, 양조위. 아니, 아니지. 윤발 형님, 덕화 형님, 조위 형님이라고 해야지.

1980년대 말~1990년대 중반까지 당시의 청춘들에게 팬덤 현상을 일으켰던 홍콩 배우들, 그래서 하나의 추억으로 오롯이 자리 잡아 그 시절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배우들.
 
 홍콩 트램
 홍콩 트램
ⓒ 김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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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으로 가기 전 목표로 해둔 것이 있었다. 그것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걸쳐 대한민국 영화계를 뒤흔들었던 홍콩 영화의 촬영지를 꼭 한 번 찾아가 보는 것. 

소위 말하는 '느와르' 장르의 시작을 알렸던 <영웅본색>부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거칠게 다룬 <천장지구>, 아련하게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영상미가 풍부했던 <중경삼림>까지. 그 당시의 청춘들이라면 누구나 열광했을 그런 영화들의 촬영지를.

그래서 나에게는 란콰이퐁에서 맥주를 마신다거나 '쇼핑의 본고장'이라는 홍콩에서 쇼핑을 하는 것보다 그런 곳을 찾아 영화에서 느꼈던 감동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 더 소중했고 그러기에도 시간이 많이 모자랐다.

<중경삼림>의 아련함

2016년 말,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중경삼림>의 무대이자 양조위와 웡페이의 사랑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장소, 실연당한 금성무가 누군가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던 공중전화가 있던 곳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Midnight Express)'.  그곳에 가면 난 어떤 음식을 시켜 먹어봐야 할까라는 아련한 감정으로 찾아간 곳. 
 
 <중경삼림>의 한 장면
 <중경삼림>의 한 장면
ⓒ "중경삼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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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경삼림>의 한 장면
 <중경삼림>의 한 장면
ⓒ "중경삼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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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경삼림>의 한 장면
 <중경삼림>의 한 장면
ⓒ "중경삼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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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잘 갈무리된 나의 추억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그 아름답고 낭만적이어야 할 곳이 편의점으로 바뀐 것은 물론 그 위층엔 성인용품점이 떡 하니 자리 잡아 추억과 감동과 낭만을 산산이 부서트린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는 웡페이도, 금성무도, 조위 형님도 그리고 그들이 만들고 전해주었던 아련한 가슴 떨림을 느낄 수가 없게 되었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 김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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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펐다. 사람이란 때론 추억을 자양분 삼아 오늘을 살아가기도 하는데 이토록 무참하게 추억이 깨졌으니 어쩌면 오지 않았던 것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천장지구>의 감동

에라, 모르겠다. 설마 <천장지구> 촬영지는 이렇게 변하지 않았겠지. 최소한 영화의 감동을 어느 정도는 느껴볼 수 있겠지. 

그렇게 슬픈 마음을 안고 이번엔 <천장지구>의 촬영지를 찾아 발걸음을 옮겨 본다. 거리의 남자 아화(유덕화)와 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 딸 죠죠(오천련)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원조 격인 영화 <천장지구?. 영화의 가장 명장면인 두 사람만의 결혼식을 올렸던 성 마거릿 성당(St. Margaret's Church). 설마 이곳도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처럼 무참하게 변했을까?

지하철 코즈웨이베이 역에 내려 타임스퀘어 백화점 쪽으로 나온다. 타임스퀘어 백화점 역시 영화 <툼레이더 2>의 촬영지로 등장했지만 지금은 덕화 형님이 전해주었던 감동을 만나러 가는 것이 급하다. 정문인지 뒷문인지 모를 듯한 곳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쭉 가서 '웡나이 청 로드(Wong Nai Chung Road)'를 따라 걷다 보면 이런 트램 정류장이 나온다.
   
 천장지구 촬영지
 천장지구 촬영지
ⓒ 김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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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트램 정류장에 공중전화가 있었던 듯하다. 왜냐고? 바로 영화에서 덕화 형님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길을 건너서 다시 한번 보면 같은 곳이란 걸 알 수 있다.
 
 <천장지구>의 한 장면
 <천장지구>의 한 장면
ⓒ "천장지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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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성당은 바로 이 언덕을 따라 10미터만 올라가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보니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덕화 형님이 오천련을 남겨둔 채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온 길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천장지구>의 한 장면
 <천장지구>의 한 장면
ⓒ "천장지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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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언덕을 올라가면 다음과 같은 성당이 나온다.
 
 성 마가렛 성당
 성 마가렛 성당
ⓒ 김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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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곳이 <천장지구>에서 덕화 형님이 오천련과 둘만의 결혼식을 올린 바로 그곳이다.

영화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둘만의 결혼식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덕화 형님과 오천련. 그리고 그 결혼식의 장소가 된 성 마가렛 성당. 그곳에서 난 작은 영화를 봤을 때의 감정 그리고 감동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천장지구>의 한 장면
 <천장지구>의 한 장면
ⓒ "천장지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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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마가렛 성당
 성 마가렛 성당
ⓒ 김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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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행이었다. <중경삼림>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현재 모습이 준 상처, 오래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첫사랑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 들어 변해버린 모습에 아니 만난 것만 못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 <천장지구>는 아직 살아 있다.

그래서 이번엔 영화에서 가장 마지막 장면, 안타까운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죠죠 (오천련)가 맨발로 달린 고가 도로를 찾아 가본다. 
 
 <천장지구>의 한 장면
 <천장지구>의 한 장면
ⓒ "천장지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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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곳이다. 퀸스 로드 센트럴에서 더들 스트리트를 등지고 오른쪽으로 쭉 가면 중국은행이 나오고 그 길 건너편에 리포 센터가 나오는데 바로 이 두 건물을 잇는 육교에서 찍은 장면이다. 
 
 천장지구 촬영지
 천장지구 촬영지
ⓒ 김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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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곳이 <천장지구>의 마지막 나오는 고가 도로다. 영화의 마지막 감동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한 느낌은 이곳을 직접 찾아 가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웅본색>의 강렬함

이제는 <영웅본색>의 윤발 형님의 멋들어지게 담배 피우는 모습을 촬영한 곳으로 가 볼 차례다.
 
 <영웅본색>의 한 장면
 <영웅본색>의 한 장면
ⓒ "영웅본색"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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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왕후상 광장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있다. 왕후상 광장의 토마스 잭슨 경 동상을 등지고 왼쪽으로 가서 차도를 하나 건너면 볼 수 있는 곳.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 온다. 드디어 윤발 형님과 조우할 수 있는 순간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홍콩 느와르 영화의 불을 지핀 장본인이자, 당시의 청춘들이 과거를 추억하면 항상 존재하시는 그분. 성격 급하신 분들을 위해 바로 아래 사진으로 얘기하겠다.
 
 영웅본색 촬영지
 영웅본색 촬영지
ⓒ 김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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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로 영화 속에서 윤발 형님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의 배경으로 사용된 곳이다. 사실 여기는 오래전 영국 통치 시절에 영국에서 건너온 누군가의 묘지라고 하는데 누군가의 묘지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바로 윤발 형님이 담배를 태우던 곳이란 게 더 중요하다. 아, 이 가슴 떨림이여!

홍콩은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쇼핑할 것도 많은 그런 곳이지만 나에게는 오래전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곳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의 한 부분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그때의 홍콩 영화들, 그래서 그 촬영지를 찾아가 보는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그래서 홍콩을 여행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추억을 따라 여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때, 그 시절의 나에게 응답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책 <인도차이나 캐리어 여행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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