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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관계자가 11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정부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고 있다.
▲ 정부,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국회에 제출 통일부 관계자가 11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정부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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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늦은 오후, 4.27 판문점 선언 비준안이 국회에 도착했다. 청와대 국무회의를 통과한 판문점 선언 비준안은 통일부 직원의 손에 의해 국회 의안과에 접수됐다. 국회 동의 절차를 거치기 위해서이다. 의안과에서는 별도의 심사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로 비준안을 올리게 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조약의 국내 체결을 위한 절차의 8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그러나 가장 험난한 단계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에 적극적인 반면,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 비준안이 거쳐 온 그리고 거쳐 가야 할 길을 정리해봤다.

판문점 선언 비준 원하는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의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의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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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곧바로 '국회 비준'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앞둔 4월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남북정상 간 합의가 국회 '비준동의'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실제 선언이 나오기 전부터 국회 비준을 염두해 두고 작전 계획을 짠 셈이다. 비준(Ratification)은 국가의 기속적 동의를 최종적으로 표시하는 행위이다. 헌법상의 비준권자는 대통령이지만, 헌법 제60조 1항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약이 있다. 이 경우 국회 동의를 받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판문점 선언이 국회 비준 대상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우선, '정치적 선언'일 뿐인 판문점 선언이 비준 대상인 조약(Treaty)에 해당되는지 여부다. 그러나 선언(Declaration) 역시 넓은 의미의 조약에 포함되며, 경우에 따라서 국회 비준을 받기도 하고 받지 않기도 한다. 

조약이라는 말에는 협약(convention), 협정(agreement), 헌장(charter), 규정(statute), 규약(covenant), 규칙(regulation), 선언(declaration) 등이 모두 포함된다. 조약인지 아닌지를 규정하는 건 이름이 아니다. 조약에 관한 국제법상 규정('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조)은 "문서의 명칭에 관계없이 서면의 형식으로 단일의 문서 혹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관련문서에 구현되며 국제법에 의해 규율되는 국제적 합의"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언이 조약에 준하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 비준을 거칠 수 있다. 1991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의 경우에도 국회 동의 절차를 안 거쳤을 뿐, 비준 절차는 거쳤다. 만약 해당 선언이 조약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비준 절차 자체가 필요 없다. 박근혜정부의 일본군위안부합의, 사드 배치의 경우에도 국회에서 비준을 받지 않고 추진해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법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해당 선언이 '국가 간의 조약'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에 따르면 된다. 남북관계발전법 제21조 3항은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통일부가 법제처에 검토를 의뢰한 이유이다. 판문점 선언이 과연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물은 것이다. 통일부는 지난 8월 17일, 법제처가 "판문점 선언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3항에 따른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로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남북합의서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회신했다고 밝혔다.

법제처 심사 후의 절차는 국무회의 심의 그리고 대통령의 재가이다. 문재인 대통령주재로 1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을 심의‧의결했다. 이후 대통령의 재가까지 같은 날 쾌속으로 처리됐다. '중대한 재정적 부담'임을 증명하기 위해 4712억 원 규모의 비용추계서도 덧붙였다. 이중 1726억 원은 2018년도 예산에 준해 편성된 비용이며, 추가로 편성된 비용은 2986억 원이다. 대부분이 철도‧도로‧산림협력 비용이다.

통일부 실무자가 대통령 재가를 받은 이 비준 동의안과 재정추계서를 같은 날 국회 의안과에 제출한 것이다. 청와대는 18일에 있을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안이 통과하는 구상을 그렸다. 그러나 청와대가 원했던 구도대로 흘러가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당이 위원장인 외통위, 비준안 붙들 가능성 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강석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기 위해 발언대로 향하고 있다.
▲ 발언대로 향하는 강석호 위원장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강석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기 위해 발언대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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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법률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되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번 더 심의를 거친다. 현행 법률과 어긋나거나 모순되는 부분은 없는지, 법체계상의 하자는 없는지 등을 세심하게 따지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조약 비준의 경우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지 않는다.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의 경우, 외통위에서 무사히 넘어오면 바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본회의에서는 '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통과가 가능하다.

의석수를 계산해보면, 일단 본회의에 비준안이 올라올 경우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129), 평화당(14), 정의당(5), 평화당에서 활동하는 바른미래당 비례대표(3), 민중당(1) 여기에 여당 출신 문희상 국회의장(1)과 민주당 성향으로 분류되는 무소속 의원들(2)까지 더하면 설사 보수 야당 의원 전원이 회의에 참석해 반대를 해도 통과를 막지 못한다.

국회에서 일단 처리가 되면, 판문점 선언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국회는 수정할 권한이 없고 동의 권한만 있다. 정권이 바뀌거나, 국회 의석 배분이 변화한다고 해도, 기존 선언을 수정‧대체할 새로운 남북정상 간 합의가 나오지 않는 이상 해당 선언의 효력은 불가역적이다. 이후 남은 절차는 '국내 공포' 뿐이다.

그런데 본회의에 올라올 수 있을지가 미지수이다. 외통위 위원은 총 22명으로 민주당(10)‧한국당(8)‧바른미래당(2)‧평화당(1)‧무소속(1)이다. 이중 무소속은 새누리당 시절 탈당한 이정현 의원이다. 민주당+평화당 11명에 한국당+바른미래당+무소속 11명으로 팽팽하다. 여기에 외통위 위원장인 강석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큰 걸림돌이다. 지난 여야 상임위원장 배분 당시, 외통위원장은 자유한국당 몫으로 돌아갔다.

강 위원장은 12일 오전 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비용추계가 허술하다"라면서 "구체적인 비용추계가 아니므로, 이는 '중대한 재정적 부담'의 근거로 쓰일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서술이 모호하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담보하고 있지 않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은 위헌"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그는 "외통위에서는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에서 누구보다 엄격하고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라고 선을 그었다.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반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의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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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성태 원내대표 역시 "국회 비준은 본질적으로 국민 동의를 수반하는 행위"라면서 "정권이 밀어붙일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준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11일 오후, 자유한국당은 윤영석 수석대변인을 통해 "자유한국당은 정부의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전체 사업규모에 대한 상세한 재정추계서가 제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준안을 논의 할 수 없고, 북한의 기존 차관에 대한 상환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차관 형태의 새로운 퍼주기를 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바른미래당 역시 11일 김삼화 수석대변인을 통해 "국회의장과 여야3당 원내대표 간에 판문점선언비준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논의하기로 합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비준 동의안을 일방적으로 제출한 행위는 과연 국회를 존중하는 것인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변인은 "국회가 어제 판문점 선언 비준 처리문제를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논의하기로 연기한 것은 판문점선언 비준안 처리를 둘러싸고 국회가 정쟁에 휘말리게 되어 민생법안 처리에 방해가 될까 우려했기 때문"이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과 그에 따른 비용추계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다"라고 전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12일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국회의장과 3당 원내대표들이 비준동의안은 남북정상회담 후에 논의하기로 했는데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강행한 것"이라며 "국회의장과 함께 여당 원내대표도 동의한 사안을 정부가 이렇게 무시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국회무시, 오만과 독선이 어디까지 와있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한 "비준동의안에 제시된 예산추계도 당장 필요한 예비적 소요만을 제시한 데 그쳐 전체비용은 감춰지고 있다"라면서 "어차피 비준동의를 받아서 남북정상회담에 갈 것도 아닌 것을 잘 아는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국회와 야당을 압박하려는 정치적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라고도 지적했다. 바른미래당은 국회 결의안을 먼저 채택하고, 비준안 처리는 추후에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바른미래당이 지적한 것처럼, 문희상 국회의장을 포함한 교섭단체 원내대표단은 10일 회동을 갖고 오는 18일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어렵다는 데 뜻을 모았다. 야당의 태도가 완고한 상황에서 여당도 18일 이전 통과를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이기 부담스러웠을 가능성이 크다. (관련 기사: 정상회담 전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사실상 물 건너갔다)

그러나 18일 이후라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교착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도 높다.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경우 비준 동의에 필요한 전제들을 이야기하는 반면, 당 내 강경파들은 '무조건 반대'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 관계자가 11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정부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고 있다.
▲ 정부,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국회에 제출 통일부 관계자가 11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정부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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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판문점선언, #국회비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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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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