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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사울 선언>   책표지
▲ 김시덕의 <사울 선언>  책표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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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본다는 공통점으로 TV와 책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차이는 분명하다. TV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취향을 쫓아 찾아오는 면이 있다면 책은 작가의 세계를 접하고자 하는 독자가 직접 찾아가는 경향이 크다.

이번 책이 특히 그랬다. 이 책은 답사와 관찰과 기록에 관한 책이다. 내가 요즘 푹 빠진 분야인데 일간지 책 소개 지면에 빠짐없이 소개되어 호기심을 자극했다.

저자는 모 일간지에 글을 연재하는 젊은 학자다. 문헌학자의 관점에서 인문학을 얘기하거나 과거의 기록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거나 하는. 그가 쓴 글의 주제와 시각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었다. 서울의 이곳저곳을 두 발로 걷고 기록하게 된 사연도 마음에 와닿았고. 이 책을 읽지 않을 순 없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교수인 김시덕이 쓴 <서울 선언>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문헌학 박사학위를 받은 서울대 출신 아닌 서울대 교수다. 그를 검색해본다면 다양한 저술 활동과 기고한 글이 나올 것이다. 그와 관련된 어떤 사건도 언급될 것이고. '경계인'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어울린다고 할까.

아무튼, 모종의 일 때문에 화를 삭이며 걷게 되었고, 걷다 보니 "서울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어 책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전공인 문헌학의 시각을 담아서. 이 책에서도 이런 내용이 녹아있지만, 자세한 사연은 <신동아>나 여러 일간지에서 다룬 인터뷰 기사를 참고하길.

어디까지 서울일까?

작가는 일각이 가진 "서울에 대한 선입견"을 비판한다. 서울의 역사나 문화 혹은 공간을 다룬 많은 책에서 "궁궐 같은 조선 왕조 시기의 유적"이나 일본에 의한 식민 지배의 흔적이 남아있는 "사대문 안팎에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많았다는 것. 이런 경향이 "사대문 안만이 진정한 서울"이라는 인식을 낳게 했고 여기에는 "다섯 가지 선입견"이 있다고 분석한다.

"조선 후기 중심주의, 사대문 안 중심주의, 왕족과 양반 중심주의, 주자학 중심주의, 남성 중심주의"의 다섯 가지라고 설명한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유적과 지워지거나 파괴된 흔적이 이런 편견의 결과라는 걸 책 전체에 걸쳐 녹여냈다.

이런 편견 때문에 다음 "세 가지의 서울이 소외"되었다고 설명한다. "사대문 밖 특히 1936년과 1963년에 서울로 편입된 지역, 한성 백제 시대와 현 대한민국의 서울, 중인과 평민들 그리고 노비들의 유적이 발견된 곳" 등이 그곳이다.

저자는 서울 여러 지역을 걸어서 답사한다. 사대문 안과 복개되기 전 도로 밑에 있던 청계천, 일본 압제 시절 흔적이 남은 남산과 용산 일대, 1936년에 경기도 시흥에서 서울로 편입된 영등포와 1963년에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로 편입된 영동지역 즉 강남지역을. 문헌을 통해 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문헌학자다운 시각을 곳곳에 남은 흔적을 보여주며 설명한다.

저자는 "지도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라며 다양한 지도를 인용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행한 지도부터 여행자들이 그린 약도까지. 특히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전후의 지도를 통해 물길이 바뀐 한강과 그 영향으로 "서울의 모양과 생활권이 변화된 사례를 문화사적으로 분석"했다. 1920년대에 나온 서울 여행안내 책자에 들어간 지도를 통해서는 당시의 주요 시설과 그곳에 연결된 대중교통을 분석하기도.

"문헌은 기록이고 흔적"이라는 저자의 설명처럼 문서뿐 아니라 남겨진 유적과 없어진 흔적에서도 역사를 읽고 그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 준다. 조선 시대 성곽을 쌓던 일꾼들이 돌에다 새긴 이름들, 청계천 위에 도로를 포장하다가 무너뜨린 옛 다리의 흔적을 표시한 이름 없는 노동자들, 일본 종교 시설 자리에 개신교 건물이 들어선 배경 등. 관심 없으면 그냥 지나칠 사연들을 찾아 이야기해준다.

부끄럽다고 지운 흔적들

서울은 1963년 영등포의 동쪽인 영동, 즉 강남지역이 편입된 이후 급격한 성장을 겪었다. 성장의 흐름을 따라 서울로 유입된 사람들이 있었다면 밀려난 사람도 있게 마련. 그들은 가난해서 밀려났고 보기 싫다고 가려졌다.

청계천을 덮어버리고 도로로 포장하게 되어 개천 옆에서 살아가던 서울의 빈민들은 1960년대 말부터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으로 옮겨진다. 이름하여 '광주대단지'.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구다. 옮겨지기는 했지만, 생계 터전은 서울이었다. 열악한 환경이라기보다는 "그냥 내던져졌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들의 분노가 "광주 대단지 사건"으로 이어져 정부가 대책을 세우게는 했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눈에 거슬리는 것을 치우는 정책"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고.

이후에도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거치며 빈민과 상인들은 서울 끝으로" 밀려났고. 지금도 그렇게 가리거나 치우자는 의견을 내세우는 특정 계층이 있다고 설명한다. 올 초 평창 올림픽 직전에도 모 신문에서 "국가 이미지 떨어뜨린다며 임시 펜스라도 설치해 서울 도심의 민낯이 드러나는 걸 최소화하자"라는 글이 그 시각을 대변한다는 설명. "도시 빈민들을 인간 방해물로 취급"해서 가려 버리려는 사고방식은 88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기득권층에 자리 잡고 있다는 작가의 해석이다.

그 펜스를 설치하자던 곳이 용산이다. 자랑하고픈 초고층 건물과 가리고 싶은 곳이 함께 존재하는 곳. 그곳뿐 아니라 아직 서울 곳곳에 빈민이 살고 있고 그들이 서울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위에서 언급한 "서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존재한다고 비판한다. 가진 자들에 의한 그들만의 서울이라는.

저자는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노회찬을 불러낸다. 책에서는 살아서 이렇게 외친다.
 
"생각하면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투명 인간들, 이런 분들이 이 서울 시내에 얼마나 많습니까." (335쪽)
 
지난 2010년 5월 서울시장에 출마할 때의 외침이다. 못 본 체하거나 없다고 여겨버리는 정책들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도 서울이다

부끄러운 것을 가리려는 정책은 사람뿐 아니라 "혐오 시설을 서울 외곽으로 밀어내 중심부와 차단"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청계천 주변의 공장들. 그래서 생겨난 곳이 구로 공단과 가리봉 공단이다. 그 주변에 벌집이라 불린 주거시설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서울 땅끝"인 그곳에서 노동자들이 벌인 삶의 투쟁은 "서울 중심부"에선 딴 나라의 일이었다고.

그들의 몸부림이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다지만, 역사에서 지워져 감을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구로 공단은 G밸리로, 공단보다는 디지털 단지로 불리고 싶어 하는 현실에서. 가리봉 공단은 가리봉과 독산동에서 한자씩 따와서 가산으로 불리며 예전의 흔적이 희미해져 가는 현실을.

저자는 예전의 흔적을 가리고 지워내기보다는 모든 순간과 공간을 우리의 과거로, 역사와 문화로 받아들이자고 설득한다. 문헌학자다운 시각으로. 작가는 서울을 얘기하고 있지만, 이 지점에서 논의의 초점을 대한민국 전체로 확대한다.

일본의 흔적을 지우는 과정에서 함께 사라진 해방 후에 쌓은 대한민국 시절의 흔적들, 개발 논리에 눈감고 묻어버린 전국의 유적지들, 번듯한 비석이 없으면 그냥 파헤친 민중들의 무덤들, 이들의 흔적 모두 우리의 역사라고 호소한다. 무너뜨리더라도 기록은 제대로 하자고.

투명 인간이더라도 속하고 싶은 곳?

지우고 가렸던 과거의 흔적을 보니 모두 개발이라는 논리가 최고의 가치로 작용 된 결과였다. 옛 공단의 회색빛 공장을 헐어내고 들어선 첨단의 아파트형 공장도, 백제의 왕족일 수도 있는 유골에 굴착기를 들이대고 들어선 아파트 단지도, 이름 모를 5000여 기의 조선 시대 무덤을 파헤치고 들어선 뉴타운도. 모두 서울에서 밀려나기 싫었던 사람들의 불안을 지렛대 삼아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 서울 외곽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의 욕망과 불안을 달래려 서울의 끝, 경기도의 시작은 서울을 닮아가려 더 파헤칠 곳이 없을까 찾고 있을 것이다. 아니 서울의 근교는 더 멀리, 경기도의 끝자락까지 옛 흔적을 지우고 가려가며 동서남북으로 넓어지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한강의 남쪽에서 자라며 학교에 다녔고 더 성장해선 현실적 이유로 그 남쪽 근교의 도시로 내려와 사는 나의 모습이 읽힌 책이다. 읽고 나니 아파트 단지에서 단지로 이어진 길들과 지하철역 주변의 간판들, 그리고 탄천의 산책로 구석구석을 새롭게 보게도 되었다. 오늘 찍은 제목 없는 사진들이 몇 년 후에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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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영화, 에니메이션 등 콘텐츠 회사와 투자회사에서 프로젝트 기획과 프로젝트 펀딩을 담당했다. 오피니언 뉴스에 북에세이와 문화 컬럼을 게재하고 있으며 전문 문예지에도 글을 싣고 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