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됐다. 많은 국민들이 정기국회라 하면 본회의장에 참석한 국회의장, 국회의원의 활동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국회에는 본회의 이외에도 수많은 회의가 존재한다. 이 자리에서 법안을 심의하고 통과시키고, 사회적 쟁점을 토론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은 제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의원의 역할 수행에 영향을 끼치는 다른 이들도 존재한다. 

"전문위원, 이 정도면 되겠어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 앞.
ⓒ 김지현

관련사진보기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한다. 아래 인용한 회의록은 최근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았던 최저임금법 개정안 등을 다뤘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회의록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과 복리후생 수당 일부를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는 장면이다

위원장 OOO :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보면, '상여금, 그밖에 이에 준하는 것으로서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임금' 이렇게 규정이 되어 있는데 우리 전문위원이 객관적 판단 기준을 법령에 명확히 할 것을 지적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습니까?"
고용노동부 장관 김영주 : "그 부분에 대해서, 조문에 대해서는 저희가 법사위 전문위원 의견안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위원장 OOO : "이렇게 전문위원과 노동부 간에 합의를 봤다고 그러는데, '상여금, 그밖에 이에 준하는 것으로서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임금' 이렇게 합의를 봤다는데 동의하십니까?"
고용노동부장관 김영주 : "예, 그렇습니다."

위원장 OOO : "전문위원, 이 정도면 되겠어요?"
전문위원 □□□ : "예."
- 2018년 5월 28일 법사위 회의록


일반인들은 거의 그 존재를 잘 알 수 없는 '국회 전문위원'의 힘을 엿볼 수 있다. "전문위원이 지적했다" "전문위원과 노동부 간에 합의를 봤다고 그러는데" "전문위원, 이 정도면 되겠어요?" 등의 발언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위원은 당시 가장 첨예한 이슈였던 최저임금에 대한 합의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국회사무처 소속 공무원인 전문위원은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 권한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발의된 법안이 타당한지 아닌지 검토해서 보고하는 것인데,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는 법안 통과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이 비단 법안 검토보고만 하는 건 아니다. 예산과 결산에 대한 '검토보고'도 수행한다. 그리고 관련 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행정부처 피심사기관들은 대체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수용'하는 자세로 심사에 응한다.

타이완은, 미국은 어떻게 '입법'하는가

심지어 우리보다 정치적 발전이 한 단계 뒤쳐진 것으로 평가되는 타이완의 사례를 보더라도, '대체복무조례'는 2년여 동안 3건의 개정안이 발의돼 2016년 6월 3일부터 2017년 5월 19일까지 내정(內政)위원회에서 각각 세 차례의 1독을 거쳤다. 그후 두 차례의 위원회 심사를 진행했다. 

이후 광범 토론과 축조심사의 두 차례 2독을 거쳐 위원회 심사보고서가 본회의에 넘겨졌고, 2018년 4월 3일 본회의의 3독을 통해 의결됐다. 물론 이 입법과정은 모두 의원들에 의해 직접 수행됐다.

한편, 미국 의회에서는 법안이 발의되면 소관 상임위에 넘겨지고 상임위는 먼저 법률안에 대해 대통령 직속 관리예산처 등 행정부 관련 부처 혹은 의회 내 회계감사원의 의견을 묻게 된다. 그러나 이 의견은 참고사항으로 준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임위에 회부된 법안은 대부분 소위원회에 넘겨져 심의되는데, 소위원회에서 청문 절차 등을 완료하게 되면 마크업(markup)으로 알려진 축조심사를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 조문별로 이견이 있는 견해들에 대해 세부적인 검토와 표결이 이뤄진다.

전체 상임위는 소위원회의 이 검토보고를 기초로 찬성, 폐기, 무기한 연기 등을 결정한다. 이후 심사보고서를 작성해 본회의에 보고한다. 물론 상임위원회에서의 이 모든 활동은 의원들 자신들이 직접 수행한다.

상임위에서 의결된 법안의 심사보고서에는 수정안 및 위원회 수정 의견을 비롯해 법안의 취지 및 주요 골자, 법안의 내용, 위원회 심사결과 요약, 위원회 심의경과 및 내용(청문회 및 축조심의 내용), 법안의 필요성과 그 배경, 법안에 대한 조문별 위원회 의견이 담긴다.

또 법안 조문별 내용 분석, 법안의 취지에 대한 위원회 의견, 법안에 수반되는 소요예산 추계, 세출 집행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 정책 집행상의 소관위원회 감독의견 및 권고안, 정부개혁위원회의 감독의견 및 권고안, 의회예산처의 비용분석과 재정영향 평가, 행정부 입장 및 의견, 수정조문 대비표, 투표 결과 기록, 보충의견, 소수의견 및 부대의견, 지방정부에 재정 부담을 주는 경우의 부담예산 추계 등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된다.

본회의 참석만이 중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국무위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
▲ 정기국회 개회식 참석한 여야 의원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국무위원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독일 의회에서는 법안이 상임위에 도달하면 각 원내교섭단체의 검토보고 의원들의 보고를 청취하는 절차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법안의 세부사항에 대한 토의가 이뤄지는데, 이는 연방의회 의사규칙이 정한 순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

연정 원내교섭단체들의 검토보고자들은 각 당 '워크그룹' 대표들과 때로는 부처 대표단과 회합을 갖고 위원회 표결을 준비하기 위해 자체 검토보고자회의를 갖는다. 종종 심야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래 걸리는 토의과정에서 법안의 세부사항들이 연정파트너들 사이에 조율되고 확정된다. 모든 수정요청사항은 위원회 다수결로 확인돼야 한다.

특기할만한 사실은 독일 의회에서 2002년 당시 본회의에 재적의원 598명 중 대부분 100명 남짓한 의원만이 출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1972년 <무기법> 의결에는 단지 36명 의원만이 참석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의회의 의사형성이 반드시 본회의에서만 이뤄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교섭단체와 상임위원회에서 사실상의 의회의 의사가 결정되고 이러한 과정에 의원들이 참여할 기회가 충분히 보장된다면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의원들의 의견도 본회의의 의결에 충분히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상임위원회에서의 의원들의 성실한 검토 및 입법심의 활동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는 대목이다.

국회의원은 국회라는 헌법기관의 구성원인 동시에 국회의원 개개인이 곧 헌법기관이다. 이는 입법권이 지니는 엄중함에 대한 강조다. 국회란 무엇보다도 국민의 대표로서 선출돼 국민 의사를 대의해 입법권을 행사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동시에 이를 성실하게 수행하라는 엄중한 직무 책임도 국민으로부터 명령받았다.

독재정권, 권위주의 정권의 특성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유정회 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와 같이 국회와 국회의원을 제도적으로 무력화하는 정권이라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독재정권은 국회의원을 무력화하는 제도의 연장선상에서 입법권을 무력화했다.

현재의 국회는 아직 그 관행에 길들여져 편승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이제 외부에 의한 국회의원의 입법권 침해가 아닌,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부인 그리고 자기 모독이 나타나고 있다.

한 지인(知人)은 이런 현상을 빗대 "국회의원은 간선 임명직과 다를 바 없고 국회의 최대 정당은 '국회입공(입법공무원)당'"이라면서 탄식했다. 만약 이러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장차 국회의 존재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와 문제제기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의회에서 법안에 대한 검토와 심사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이 직접 수행해야 하며,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 의회에서도 관철되는 철칙이다. 그것은 곧 대의민주주의 그리고 의회민주주의의 흔들릴 수 없는 근본 원칙이다. 대한민국 국회처럼 입법공무원이 법안을 검토하고 입법과정에 근본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근간에 대한 부정이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국회의원을 보고 싶다
 
2016 4.13 총선을 이틀 앞둔 4월 11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되고 있다.
▲ 20대 국회의원 배지 공개 2016 4.13 총선을 이틀 앞둔 4월 11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이런 '국회'를 언필칭 국회라고 말하기 어렵다. 국회가 진정으로 국민들에게 신뢰 받는 국회로 거듭 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기본 원칙에 부합하는 국회의원상을 회복해야 하며, 이에 걸맞게 국회 조직의 근본적 혁신이 있어야만 한다.

그때 비로소 각 국회의원이 신뢰받는 전문 직업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당들은 정책정당으로 거듭나 정당정치를 안정시킬 것이다. 결국 국회가 의회다운 의회로서의 의회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를 호령하고 국정감사장에서 기관장들에게 호통을 내리는 것만이 헌법기관 국회의 진정한 위엄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상시적인 역할을 하는 해당 상임위에서 담당분야의 전문가들로서 유관 부처의 업무와 정책을 꿰뚫어보고 정확히 견제하며 분명한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진정 프로페셔널한 모습이요, 국민의 든든한 대변자 모습이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법안을 검토보고하는 과정에서 논증하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

[관련 기사]
'일하지 않는 국회'의 숨겨진 진실
월 150만원 특활비 받는 '힘 센' 국회 공무원?
한국에서 '100년 정당' 만들기, 이렇게 해야 가능하다
한국 국회의원들이여, 독일에게 배우시라

태그:#본회의참석률, #전문위원, #검토보고, #정당정치, #의회민주주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지금은 이 꽃을 봐야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