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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자(農者)는 이제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 아니다.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으로서 농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농업은 결국 망한 것이다. 이제 농업은 없다. 농민은 사라지고 농촌은 죽었다. 농민이 농업을 해서 농촌에서 먹고살 수도, 사람 구실도 할 수 없다.

오늘날 농투성이들의 사막같은 무논과 텃밭에는 4차산업혁명, 스마트농산업, 심지어 도시재생이라는 터무니없는 선전과 선동이 난무한다. 이데올로기와 노동이 종말했듯 농업도 종말하고 있는 중이다. 대신 농업은 농공업과 농촌관광서비스업으로, 농민은 농업임노동자로, 농촌은 유사도시화 러바니제이션(Rurbanization)으로 변질되고 있다. 농정은 FTA와 GMO라는 외세로 만성적 중병을 앓고 있다.

농가평균 연간 농업소득 1005만원, 농가인구 고령화율 42.5%, 40세 미만 농가 0.9%, 곡물자급률 23.4%, 유전자변형작물(GMO) 수입 세계 1위 등의 정량적 종말의 징후는 이미 넘친다. 또 총선 출마 경력쌓기용 행정관료 출신 농정 수장, 내부주민이 아닌 외부 용역업자가 주체 행세를 하는 농촌마을공동체사업, 농촌재생이 아닌 도시재생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지역개발사업 등 정성적 종말의 징후도 심상치 않다.

폐농, 이농하고 농촌을 탈출해 도시난민으로 전향해봤자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도시의 시공간에서조차 노동은 벌써 종말되었기 때문이다. 농민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깊이 분석했을 정부는, 농정 당국은 이미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아무 행동도 안 하고, 대책도 못 내놓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차마 말도 못하고 답답한 심정일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농자의 종말을 마치 국외자처럼 이토록 철저히 수수방관하지는 않을 게 아니겠는가.
 
청와대 시민농성단 기자회견  시민농선단의 '국민 먹거리위기.농정적폐 청산과 대개혁 촉구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 청와대 앞 기자회견'
▲ 청와대 시민농성단 기자회견  시민농선단의 "국민 먹거리위기.농정적폐 청산과 대개혁 촉구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 청와대 앞 기자회견"
ⓒ 박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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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의심하는 농민들은 마침내 최후의 행동에 돌입했다. 한국 농업·농촌·먹거리의 위기, 빈사상태를 걱정하는 시민농성단이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 것이다. 시민농성단은 국민들의 촛불혁명의 힘으로 탄생한 개혁정부의 무기력한 농정에 실망과 배신감을 감추지 못한다. "근본을 개혁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정부, 수십 년 이어온 적폐를 유지확대하려는 관료, 그 뒤에 숨어 있는 기업과 자본을 내버려둘 수 없다"며 시민들이, 농민들이 직접 나선다는 비장한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시민농성단의 요구는 지극히 지당하고 단순명쾌하다. 우선 국민과 농민에게 사과하고 먹거리·농업 진영과의 면담에 응하라는 것이다. 또 스마트팜 밸리, PLS 등 적폐 농정을 즉각 중단하고, 구태의연한 관료들을 쇄신하라고 요구한다. GMO완전표시제 등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식량문제도 직접 챙기라고 다그친다. 이렇게 허위공약, 구두선에 그치고 있는 민간주도 농특위 설치 등 농정개혁에 즉각 착수하라고 거듭 촉구하고 있다.

어쩌면 농자의 종말을 멈출 수 있는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농민들은 일터인 농업과 삶터인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 방법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종말의 종착역으로 치닫고 있는 농자를 돌이켜 회생시키려면 오직 적폐농정 패러다임의 혁명적인 대전환 밖에 없다.
 
순천시 농민회  9월 11일 전국농민대회를 알리는 순천시 농민회
▲ 순천시 농민회  9월 11일 전국농민대회를 알리는 순천시 농민회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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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월급 받는 공익농민이 책임지는 농업의 국가기간산업화, 농업경제학 일변도에서 농촌사회학과 사회복지학 중심으로 농정 설계방법론의 전환, 기업농과 공업농에서 사회적 소농과 농업공동체로 농업 핵심주체 이동, 개발농촌에서 재생농촌으로 농촌생활공간 전환, 중앙정부통치에서 지역공동체자치로 농정집행기구 혁신. 농정혁명의 외길이다. 농자의 종말을 멈출 마지막 기회다.

덧붙이는 글 | 정기석 : 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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