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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에 상가가 들어선다. 1층엔 편의점과 치킨집, 카페, 빵집, 화장품가게가, 윗층엔 교회와 학원이 자리를 채운다. 교회와 학원은 한국에서 가장 성업중인 자영업이다. 두 업종의 공통점은 '불안'을 볼모로 장사를 한다는 점.

무한경쟁의 정글로 최적화된 한국 교육현장에서 자식을 학원에라도 안 보내는 부모는 밤잠을 이룰 수 없다. 같은 세상에서 생존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밑져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붙잡는 심리적 보험이다. 헌금을 내야 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소중한 사회적 자본인 인맥, 네트워크를 얻는다.

편의점 숫자보다 많다는 한국교회의 그 무시무시한 양적 성장을 뒷받침 해주는 또 하나의 성공 요소는 한국사회가 '최악의 불신사회'라는 점이다. 만인의 만인을 향한 경쟁이 우리 사회의 룰이 된 후 동업은 금물이다. 채점의 공정성을 믿지 못하여 객관식이 아닌 시험은 배제되는 곳이 한국사회다. 믿을 구석이 있다면, 오로지 보이지 않는 존재인 신뿐. 그 분을 믿었지만 뜻한 대로 이루지 못했다면, 내 기도가 부족했을 뿐.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새로 들어선 화려한 건물들은 다시 볼 것도 없이 교회였다. 교회의 번창은 눈부셨고 성직자들의 타락도 그러했다. 자본이 축적되는 곳,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 권력이 군림하는 곳에 허락된 유일한 일은 타락뿐이니.

그러나, 도무지 교회는 반성도 자정도 할 줄 몰랐다. 아니, 자정에 대한 아무런 감각도, 관심도 없는 듯했다. 기둥뿌리가 썩어가고 있어도 방구석에서 금화만 세고 있는 사람처럼. 당연히 그곳에 가난한 이들의 친구였던 청년 예수의 뜻 같은 건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소망교회.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소망교회.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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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 장로였던 이명박씨가 서울시장에 이어 마침내 대통령이 되고 몇 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프랑스 아르떼방송에서 2부작으로 방영된 <한국> 다큐멘터리에는 조용기 목사가 자신이 이명박의 당선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삼성그룹 신입사원들이 매스게임을 하는 장면과 함께.

북한의 인민체조를 연상케 하는 삼성그룹의 집체훈련과 제 부끄러움을 살필 줄 모르는 기독교가 현대 남한사회를 특징짓는 첫 장면이었다. 그것은 병든 한국사회에 대한 조롱이었으나, 조용기도, 삼성맨들도 그 조롱을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자본의 늪 속에서 자족한 자들이 보이는 무감증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교회에 다니며 구원이나 은혜 혹은 복을 구한다는 사람들을 더 궁금해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스에 가서 철학이 되고, 로마에 가서 제도가 되었으며, 다시 유럽에 가 문화가 되었던 기독교가 미국에 가서 기업이 되었고, 한국에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는 얘기를 자조가 아니라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뭘 더 궁금해 하겠는가.

어느 순간부터 깨끗이 한국 기독교계에 대한 관심을 접고 냉소로 관망해 오던 내 손에 <한국 교회에 말한다>는 작은 책 한 권이 들어온다. 영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젊은 신학도가 쓴 책이다.
 
'한국 교회에 말한다' 어떻게 거짓 속에서 진리를 찾아낼 것인가?
 "한국 교회에 말한다" 어떻게 거짓 속에서 진리를 찾아낼 것인가?
ⓒ 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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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신사참배에 참여하며 일제 부역집단이 되어간 조선장로교회의 흑역사로부터 이명박이 '삼박자 축복론'의 부추김 속에 부와 권력을 탐해간 사연, 지구 나이가 6천년이라 주장했던 한 장관 지명자가 보여준 웃픈 해프닝에 이르기까지 지난 1세기 한국사의 뜨거운 장면들 속에서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드리운 흔적을 되짚어간다.

첫 장에서, 저자는 500년 전 타락한 중세교회에 항의하며 시작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소환한다. 그는 한국 땅에서 종교개혁을 위한 '짱돌'을 지금 날리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 기독교사가 품고 있는 금기들을 정조준하며.

종교개혁을 이룬 사람들은 시민들
 
"종교개혁은 단순히 종교에 국한된 개혁이 아니었다. 당시 서구에서 기독교는 국가의 기틀이 되는 원리를 제공했기에 기독교를 개혁한다는 것은 곧 국가를 개혁한다는 의미였다 (...) 스스로 개혁할 동력을 상실한 교회에서 개혁의 주체는 시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마르틴 루터가 치른 거사로 알려진 종교개혁의 실질적 주체가 시민들이었음을 역설한다. 마침 발달하기 시작한 인쇄술이 성경의 번역과 공급을 확산시켰고, 성경을 마주한 대중은 그것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더 이상 성직자에게 복종하지 않는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자들이 복종을 거두자, 성직자의 권리는 힘을 잃었고, 그것이 종교 혁명을 가능케 했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10개 가운데 6개가 한국에 밀집되어 있다는 사실은 한국 기독교가 이룬 기형적 성장을 실증해 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초대형화 된 교회의 목사들은 자신이 점한 권력을 자식에게 세습하고, 교회의 부를 제 가족의 것으로 사유화 하며, 성도를 향해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은 500년 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주창할 무렵의 타락한 교회의 모습과도 같다고 평한다. 사회 안에서 순기능을 갖는 종교로 존재하기 위해 부패한 종교는 끝없이 거듭나야 하며, 그것을 위한 첫단계는 교인들 스스로가 깨어나 성직자에 대한 복종의 태도를 던지고, 성직자주의를 타파하여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2000년 전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사내가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일갈했던 것처럼.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남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현세구복 취향저격 : 조용기의 삼박자 축복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혐의로 기소된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2014년 2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 원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혐의로 기소된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2014년 2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 원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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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기 목사는 한국 기독교의 양적 성장을 견인한 사람으로 한국 종교사에 길이 기록될 인물이다. 저자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시작된 그의 폭발적 성공이 당시 한국인들의 현세구복적인 욕망을 저격한 '삼박자 축복론'에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통해 "영혼의 구원, 물질의 풍요, 질병의 치유" 이 세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용기 목사의 이 삼박자 축복론은, "예수를 믿는데 돈이 없거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고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까지 발전되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 생각해 너도나도 부를 쌓는데 몰두하게 되었다".

이는 교회의 양적 성장을 견인하는 슬로건이었지만, 교회를 부패시키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조용기는 가장 큰 교회를 일군 목사인 동시에 자신이 말한 삼박자 축복론의 비참한 말로를 잘 입증한 성직자이기도 했다.

일가족을 끌어들여 교회 재정을 사유화했고, 숱한 소송 끝에 결국 아들과 함께 배임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의 이러한 행각은 그대로 한국 기독교계에 답습되어 널리 행해졌고, 대형 교회 목사들이 벌여온 악행들은 한국사회 전체를 오염시켜 왔다.

물론 조용기 한 사람에게 타락한 한국 기독교계의 현실에 대한 원죄를 물을 순 없다. 이완용은 죽기 전 아들에게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일제가 물러가고 한국사회가 미군정 하에 놓이게 되었을 때, 기회주의자들은 재빨리 알아차렸다. 미국과 그들의 종교인 기독교가 새로운 시대를 타고 넘을 키워드라는 사실을.

친미로 돌변한 과거의 친일 세력들은 자신들을 향한 화살을 돌리기 위해 공산주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힌 군중을 선동해가면서 권력과 유착한 반공 극우세력이 되어갔고, 기독교세력의 상당수가 이 조류에 합류한다.

목자들이여 양치기로 돌아가라

유럽의 기독교는 종교개혁 이후 이러한 성직의 개념을 교회에서 몰아냈다. 신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평등주의가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선다. 그러나 해방 이후, 독재 정권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이어졌던 우리나라에선 다른 양상이 전개된다.

이승만을 자연스럽게 국부라 불렀던 사람들은 독재자 박정희에 길들여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목사들에게 사람들은 쉽게 매혹되었다.

교회는 목사의 절대적 권위를 강조하며 맹신하게 하는 신앙 습관을 기르게 했고, 묻지도 비판하지도 말고, 오직 순종하며 따를 뿐인 신도의 미덕을 강조했다. 이는 신도들 스스로의 판단과 이해를 통해 성경에 접근해 가지 못하게 했고, 오직 목사의 시선을 통해서 신의 메시지를 전달 받는 성직자 중심주의에 강력하게 사로잡히게 했다.

종교가 때로 구원일 수 있고, 사회에서 선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스며있는 보편적인 인류애 사상 때문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용트림하던 구한 말, 많은 깨어 있는 지식인들이 이 종교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그것이 계급 제도를 타파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신을 가정하되, 그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며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인구의 대다수였던 피지배 계층에게 인간답게 살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교회를 철저한 계급사회로 만들어 버렸고, 거기서부터 불행은 시작된다. 저자는 말한다.

"평신도는 없다. 그것은 계급주의에 골몰한 한국 기독교의 산물이다"

촛불 이후의 종교

자타가 공인하듯, 한국 기독교는 종교의 기능을 할 수 있는지를 의심케 할 만큼 많이 망가졌다. 세상을 뒤엎는 아니, 조금이라도 뒤흔들어 놓는 방법은 아래로부터 깨어나는 것. 본문의 말을 빌면, 신자들이 목회자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우린 촛불을 들어 세상을 바꿨다고 믿었지만, 세상은 생각만큼 많이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촛불 이후의 시간은 반혁명의 파고가 밀려오는 시기였다. 그 반혁명의 흐름을 주도한 사람들은 복종하고자 하는 욕망이 들끓는 자발적 신도들이었다. 기독교와 한국사회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복종하는 신도들을 생산해내고, 권위적 체제의 고착을 위해 서로 활용해 왔던 것이다.

정치사회적 혁명은 지도자를 바꾸는 데 있지 않다. 본질적 질서를 전복하지 않는 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자발적 복종이 군림하는 권력자들의 만행을 부추겨 왔다면, 세상을 바꾸는 일은 복종을 거두고 스스로 판단의 주체가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500년 전, 면죄부를 팔아 천국 장사를 하던 교회를 향해, 열린 시민들이 그리하였듯이.

한국 교회에 말한다 - 어떻게 거짓 속에서 진리를 찾아낼 것인가?

오제홍 지음, 생각비행(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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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평신도는 없었다"

태그:#종교, #개신교, #종교개혁, #오제홍, #한국교회에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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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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