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50년 이상이 지난 것으로서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하여 등록한 문화재이다. 현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최근의 역사인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의 자취를 찾아다니며 거기에 얽힌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기사로 정리하여 남기고자 한다. - 기자말

국토의 분단으로
경원선 철마가 멈춘 마지막 역 신탄리역이 있던 연천.
남북이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때
이곳을 달리는 철도는 남북을 이어 줄 것이다
남북을 잇는 경원선을 달리던 철마가 멈추어 선 지 70여 년
이제 철마는 더 이상 멈추어 선 채 있을수 없어
북녘 땅뿐만 아니라 대륙으로 이어지는 큰 꿈을 꾸기 시작한다
경원선의 근대문화유산을 통해 꿈이 이루어질 현장을 찾아본다.


연천역 급수탑
등록문화재 제45호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지정내역       탑2기 및 우물1개소
지정(등록)일   2003년 1월 28일
소재지          경기 연천군 연천읍 차탄2리 34-373번지
건립시대       일제강점기

     
사진 오른쪽으로 원통형 급수탑이 보인다.
▲ 연천역  사진 오른쪽으로 원통형 급수탑이 보인다.
ⓒ 박상준

관련사진보기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은 1905년 공사를 시작하여 1914년 전 구간을 개통한 철로이다. 대한제국이 1899년 부설권을 국내 철도용달회사에 주었으나 착공하지 못하고 있다가 1904년 러일 전쟁 발발 후 일본이 군사적 목적으로 경원선 부설권을 강탈하여 철도를 완성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1898년 미국인 모스로부터 부설권을 넘겨받은 일본이 1900년 개통하였으며 러일전쟁을 전후한 시기인 1904~1905년부터 시작하여 경의선, 경부선, 경원선까지 한반도 간선철도 모두를 일본이 부설하였다. 우리 철도 역사의 시작점이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과 대륙 침략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 의한 개통인 것을 생각하면 비통함과 안타까움이 가슴을 짓누른다.
 
철로 쪽에서 바라본 연천역 역사
▲ 연천역 개찰구 철로 쪽에서 바라본 연천역 역사
ⓒ 박상준

관련사진보기


분단 이후 경원선 남쪽 구간의 공식적인 명칭은 '경원본선'이다. 북쪽 구간은 '강원선'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고 한다. 남쪽 구간은 용산에서 출발하여 경원선 철마가 멈추어 선 마지막 역인 신탄리역까지만 운행하다가 2012년 백마고지역을 신설한 후 신탄리역을 지나 백마고지역까지 운행하고 있다.

2018년 7월 2일~2018년 12월 1일까지 실시하고 있는 연천~백마고지 구간 개량 공사로 인하여 2018년 현재는 연천역까지만 운행하고 연천역~백마고지역 간에는 임시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경원선 남쪽 철로의 마지막역인 백마고지 방면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며 6.25 전쟁의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를 떠올린다.
▲ 백마고지 방면을 가리키는 이정표 경원선 남쪽 철로의 마지막역인 백마고지 방면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며 6.25 전쟁의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를 떠올린다.
ⓒ 박상준

관련사진보기

 
백마고지 방면이라는 이정표를 보면서 6.25 전쟁 때 이 지역에서 있었던 한 전투를 떠올린다.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억하고 책으로, 영화로, 이야기로 수없이 듣고 보았던 백마고지 전투.

휴전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도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지키기 위해서, 또 이후에 다시 벌어질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던 곳. 밤과 낮의 주인이 바뀌는 가운데 지켜낸 백마고지.

그곳에서 쓰러져 간 수많은 젊은 영령들에게 그곳의 전투는 어떤 의미였을까. 백마고지역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면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청춘들을 애도한다. 
     
비교적 초기에 등록된 근대문화유산에 붙였던 동판이다. 뒤에는 작은 글씨로 등록문화재 제ㅇㅇㅇ호 밑에 큰 글씨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라고 쓰여진 동판으로 바뀌었다.
▲ 연천역 원통형 급수탑의 등록문화재 동판 비교적 초기에 등록된 근대문화유산에 붙였던 동판이다. 뒤에는 작은 글씨로 등록문화재 제ㅇㅇㅇ호 밑에 큰 글씨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라고 쓰여진 동판으로 바뀌었다.
ⓒ 박상준

관련사진보기

   
일제는 경원선을 개통하면서 이 구간을 운행하던 증기 기관차에 급수하기 위해 중간 지점인 연천역에 물을 저장한 급수탑 2개를 건축하였다. 경원선에는 연천역의 급수탑이 유일한 것이었다. 개통 당시부터 경원선의 증기 기관차는 이 급수탑을 통해 물을 공급받아서 원산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1967년까지 증기 기관차의 급수를 위해 연천역 급수탑을 사용하였다.

세월이 흘러 증기 기관차가 퇴장하고 새로운 연료를 사용하는 디젤기관차로 전환하면서 급수탑의 역할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급수탑으로서의 기능을 멈춘 연천역 급수탑이지만 원형이 잘 남아 있는 증기 기관차 관련 철도 시설물이다. 

그래서 옛 철도역과 급수탑의 기능을 알게 해주는 사료적 가치가 크다. 문화채정은 보존할 만한 미래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하여 2003년 등록문화재 제45호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사진 왼쪽이 원통형 급수탑이다. 오른쪽 나무로 가려진 부분에 상자형 급수탑이 있다.
▲ 연천역 원통형 급수탑과 상자형 급수탑 전경 사진 왼쪽이 원통형 급수탑이다. 오른쪽 나무로 가려진 부분에 상자형 급수탑이 있다.
ⓒ 박상준

관련사진보기

 
원통형 급수탑, 우물과 함께 등록문화재 제45호로 등록된 근대문화유산
▲ 연천역 상자형 급수탑 원통형 급수탑, 우물과 함께 등록문화재 제45호로 등록된 근대문화유산
ⓒ 박상준

관련사진보기

 
연천역 급수탑은 원통형과 상자형의 두 가지 모양 급수탑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상자형 급수탑은 콘크리트조로 기단, 벽체부, 지붕부의 3단 형태로 만들었다. 줄눈을 이용하여 콘크리트 벽돌을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이게 하였으며 출입구 부분은 아치형으로 만들었다.
 
등록문화재 제45호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원통형 급수탑과 전시 중인 증기 기관차
▲ 연천역의 원통형 급수탑 등록문화재 제45호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원통형 급수탑과 전시 중인 증기 기관차
ⓒ 박상준

관련사진보기

    
급수탑의 작동원리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 연천역 급수탑의 설명판 급수탑의 작동원리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 박상준

관련사진보기

  
높이 23m의 원통형 급수탑은 높이가 23m에 이르고 출입구 반대쪽 내부에 계기 조작판이 있고 3개의 급수관과 기계장치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급수탑의 모양은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다가 머리 부분에서 다시 넓어지는 형태이다.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든 출입문 옆에 '등록문화재' 동판이 붙어 있어 이 급수탑이 등록문화재임을 알려준다. 상자형 급수탑에는 동판이 붙여져 있지 않다.여름에는 덩굴식물인 능소화가 원통형 급수탑을 뒤덮고 있어 원래의 재질과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6.25 전쟁의 상흔이 있는 연천역 급수탑을 보며 새삼스럽게 전쟁의 참혹함을  느낀다.
▲ 상자형 급수탑의 옆면의 총탄 흔적 6.25 전쟁의 상흔이 있는 연천역 급수탑을 보며 새삼스럽게 전쟁의 참혹함을 느낀다.
ⓒ 박상준

관련사진보기

   
두 탑의 외부에 남아 있는 무수한 총탄 자국은 6·25전쟁의 상흔을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 역사의 비극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백마고지역 이정표와 이 탑을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역사의 의미를 생각하는 장소가 되기를 빌면서 발길을 돌린다.
 
▲ 연천역 급수탑 360도 사진 연천역 급수탑 주변을 360도 사진으로 찍은 동영상
ⓒ 박상준

관련영상보기

  
연천의 주변 볼거리

한탄강 유원지, 전곡리선사유적지와 선사박물관, 재인폭포, 비둘기낭 폭포와 하늘다리, 역고드름 동굴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연천역급수탑, #경원선,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연천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의 교육과 문화에 관한 관심이 많다. 앞으로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통해 한국 근대문화유산과 교육 관련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