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2020년 7월 6일 오후 6시]

지난 5일 오전 주요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현득'이라는 이름이 올라왔다. 태권도의 날을 맞아 MBC < PD수첩>이 방송한 '추락한 태권도 성지, 누구를 위한 국기원인가' 편 때문이었다.

'추락한 태권도 성지, 누구를 위한 국기원인가' 편은 태권도계에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메이저 언론에선 거의 보도 되지 않았던, 오현득 국기원장의 채용 비리, 정치 유착을 중심으로 태권도계 비리를 다뤘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6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추락한 태권도 성지, 누구를 위한 국기원인가' 편을 연출한 김동희 < PD수첩> PD를 만났다. 방송 이면의 이야기와 취재 하며 느낀 점 등을 들었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PD수첩>의 한 장면

의 한 장면 ⓒ MBC


- 지난 4일 < PD수첩> '추락한 태권도 성지, 누구를 위한 국기원인가' 편을 연출하셨는데 마친 소회가 있을 것 같아요.
"보통 다른 방송 하면 시원하지만 섭섭한데 지금은 섭섭하지 않고 시원해요, 그만큼 굉장히 힘들었었던 거죠. 저는 태권도와 관련 없는 사람이에요. 어릴 때 태권도장이라도 다녀봤다면 조금이라도 경험이 있었을 텐데, 태권도 도장 다녀본 적도 없고, 살면서 태권도를 생각해본 적이 단 한순간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예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국기원이 뭐 하는 데인지도 몰라서 바둑 두는 데냐고 했을 정도였죠. 이 정도로 태권도나 국기원하고 거리가 먼 사람인데, 이걸 하게 되니 태권도인의 정서나 이해관계 그리고 내부 갈등과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 아쉬운 점도 있을 거 같아요. 
"태권도계라는 게 복잡하고 방대해요. 내부갈등이나 이해관계가 굉장히 첨예해서 해법도 똑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문체부나 관련 기관도 사실 손대기 어려울 정도예요. 담당 공무원들도 태권도 부서에 발령받으면 '죽었다' 생각할 정도로 사안이 많고 민원도 많고요. 이걸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러니 오현득 원장 의혹을 통해서 국기원이 가진 그간의 모순을 드러내고, 태권도계가 자정하는 방법이 뭘까로 확장시켜보려 했어요. 오 원장 개인 비리로 끝나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내용이 많고 복잡하다 보니 담지 못한 부분이 많았어요. 특히 문체부의 관리 감독을 요구하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까지 나가지 못했어요."

- 태권도의 '태'자도 모르던 분이 어떻게 이 주제를 취재하게 된 거예요?
"< PD수첩> 조준묵 선배가 뜬금없이 '국회 갔다 왔는데 누가 국기원에 문제 있다고 하던데'라고 하시더라고요. 국기원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단순한 스포츠협회 비리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박건식 부장님, 조준묵 선배의 도움으로 제보자들을 만났고, 이야기를 들었죠. 각자 입장은 달랐지만, 오 원장 의혹으로 국기원이 혼란한 상황이라는 데는 입을 모았어요. 그분들이 태권도를 생각하는 마음도 같았고요. 

제보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어요. 그분들 표현대로라면 '살인 교사'와 '성 상납'인데, 믿기지 않을 정도였죠. 그런 개인적 의혹뿐 아니라 현재 태권도가 처한 위기 상황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죠.

우리나라에서는 저출산 등으로 수련 인구가 줄고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특히 중국에서 태권도는 어마어마한 돈이 되는 사업이래요. 그래서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엄청나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국기원을 신뢰할 수 없다며 자체 단증을 발행하는 국가가 많아졌고요. 우리나라가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는 거죠. 태권도의 미래가 없어지고 있다는 제보자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게 되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 언론에서 태권도계 문제를 다룬 걸 본 기억 안 나는 데, 실제로는 어땠나요?
"제가 봤을 때도 메이저 언론에서 태권도 문제를 다룬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이번에 방송했던 내용에 새로운 건 없어요. 태권도만 다루는 전문지에서는 여러 번 문제 제기됐던 이야기라, 태권도인들은 많이 아는 문제였죠.

하지만 일반인들이 많이 보는 언론에서는 제대로 다룬 적이 없어요. 최근 JTBC, KBS, MBC에서 갑질이나 채용 비리로 2~3분 리포트 나온 적 있지만, 전후 맥락을 이야기하지 않다 보니 재생산이 안 됐죠. 태권도 언론에 계시는 분의 말씀에 따르면, 각 언론사의 잔뼈가 굵은 기자들도 태권도계 상황을 보면 답 안 나온다면서 떠나곤 했대요."

오현득 국기원장 비리종합세트...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김동희 MBC <PD수첩> PD

김동희 MBC PD ⓒ 이영광


- 오 원장의 비리는 채용 비리, 정계 유착 등인 것 같은데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뭐였어요?
"다 충격적이었죠. 반대한 사람에게 테러 가하라는 내용이 있었잖아요. 공공기관장이잖아요. 잃을 게 있는 사람이 범죄행위를 공공연히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 되지 않았어요. 이게 법적으로는 어떻게 범죄요건을 구성할지는 모르지만, 물리적 테러의 의도는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자기를 곤란하게 하는 사람에 대해 물리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심복에게 반복적으로 지시한 정황은 충분하다고 판단했죠."

- 단증 문제도 있었어요. 단증을 돈으로 팔았는데.
"단증을 파는 건 사실이에요. 원래는 진짜 수련했다는 증명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자격이 있는 사범님들이 자기 지도하에 수련한 사람들에게 테스트를 거친 후 단증 발급을 신청할 수 있게 되어있죠.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수련했든 말든, 신분증과 사진만 있으면 바로 OK라는 거예요. 심지어 취재한 바로는 신청을 받아 단체로 검증 없이 처리해주는 모집책 같은 사람도 있다고 해요. 단증을 단체로 모아 신청하면 수수료 수입이 엄청나니까요. 심지어 가짜도 있어요. 그냥 봐도 가짜라는 건 알 수 있었어요. 물론 국기원 홈페이지에서 검색은 안 되죠."

- 가짜와 진짜의 차이는 뭐죠? 진짜도 판다면서요. 그럼 가짜 살 이유 없지 않나요?
"맞아요. 진짜를 살 수 있는데 왜 가짜를 사는지 잘 이해 안 되는데 중국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으니 아예 가짜 장사하는 사람도 있나 봐요. 중국의 태권도 열풍 때문에 돈이 되기 시작하니까 너도 나도 자격 없는 사람들이 도장을 열고 있다고 해요. 제대로 하는지 검증할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런 경우 단증을 사기도 하고 가짜를 걸어놓기도 하겠죠. 누가 진짠지 가짜인지 알겠어요.

시중에 돌아다니는 가짜 단증을 본 적이 있어요. 진짜와 가짜의 외형적 차이는 명확해요. 우리는 한글을 아니까 보면 한글이 달라요. 예를 들어 생년월일이면 그게 들어가야 하는데 국적란에 생년월일이 들어가요. 한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차이를 알아챌 수 없겠죠. 근데 단증 번호가 있어요. 하지만 중국 '단증 조회' 검색 사이트에서 그 번호를 치면 단증이 나와요. 결국 가짜 사이트에서 가짜 단증이 버젓이 검색되고 진짜인 양 돌아다닌다는 거예요. 근데 국기원은 파악 못 하고 있죠. 이게 어디서 어떻게 유통되고 누가 만들었는지 아무 파악도 못하고 있어요."

- 국기원장이 된 과정도 문제예요. 전형적인 낙하산인사잖아요. MB 정부에서 이사 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국기원장을 했지만, 태권도와는 무관한 사람이었잖아요.
"태권도계 분들이 가장 많이 말씀하셨던 건, 정치인들이 국기원에 들어오면서부터 태권도의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거예요. 정치인들의 놀이터가 되었다고 표현하셨어요. 그전에도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정치판이 되어 완전히 망가졌다고요. 

정치인이면 무조건 자격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자기 자리 유지를 위해서 정치권에 줄을 대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국기원에서 많은 부분 반영시켜 준 거예요. 최순실씨가 교도소 가면서 좌초됐지만, 최씨나 김종 전 차관이 국기원이나 태권도계에 발을 걸쳐 사업하려는 정황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거든요.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할까, 생각해보면 그 안에 정치인들이 심어놓은 인물이 많기 때문인 거에요."

국기원 망가뜨린, 홍문종 뒤의 '센' 인물? 
 
 감동희 MBC <PD수첩> PD

감동희 MBC PD ⓒ 이영광


- < PD수첩>에 나온 건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이잖아요. 홍 의원 뒤에 누가 또 있다고 보시나요?
"단언하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홍 의원 주변 인물과 국기원 관계자들의 이야기들을 종합해 추측해 볼 수는 있죠. 2013년엔 홍 의원이 친박 실세였어요. 홍 의원과 오현득씨 사이에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오 원장을 홍 의원이 밀었던 건 사실이에요. 이 부분에 대해 태권도인들이 계속 말하기로, 홍 의원보다 센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홍 의원은 친박 성골이 아니라 인사이드 행동대장 같은 존재였고, 더 쎈 건 김종 전 차관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김종 전 차관은 오현득씨가 국기원장 될 때 문체부 실세였고, 청와대를 거들먹거리며 대통령을 팔았던 인물이잖아요. 자기 마음에 안 들었다면 놔뒀을까 싶은 거죠. 실제로 홍 의원의 측근은 당시 문체부에서 '오현득 원장을 통해 (태권도 관계 정부 정책 실현을 위해) 상황을 돌파해 나가려고 한다'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해요. 그분의 표현에 따르면 오현득 원장을 통해 태권도에 대한 정부의 의지도 관철시키고 개인적인 볼일(?)도 보고 모두 할 수 있다는 거죠. 오 원장 수첩을 본 사람들은 수첩에 김 전 차관 실무를 했던 사람 이름이 많이 나온다고도 해요."

- 시스템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이사회가 원장을 견제 안 하는 것 같던데.
"견제가 전혀 안 돼요. 여기 이사회는 독특해요. 의결, 집행, 감사를 하나가 다해요. 이사들의 짬짜미가 이뤄지면, 모든 걸 할 수 있는 구조예요. 심지어 이사들은 서로의 동의가 있으면 돼요. 예를 들어 기자님하고 제가 이사예요. 임기가 3년이지만 연임을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서로 한 표씩 주면 붙어요. 인기 투표하듯 서로 뽑아요. 자기가 자기를 선출하는 구조예요. 밀실에서 이뤄지더라도 이사회 이외의 기구가 최종 의결을 한다든지 하면 모르겠지만, 여긴 아니거든요. 게다가 이 이사마저도 원장이 추천하도록 정관을 바꿨더라고요. 그러니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뽑아서 서로 짝짜꿍하면 땡인 거예요. 

게다가 현재 이사 중 절반은 태권도계 분들이고, 사외 이사 중 군 출신 2명은 오 원장 후배라는 소문도 있어요. 이 중 한 분은 변호사인데 예전 오 원장이 속초에서 HID 할 때 물의를 일으켜서 잘릴 뻔한 적이 있는데, 그때 검사였어요. 그 인연인지 국기원에서 벌어지는 많은 소송을 이분이 하세요. 이사회에 한 번도 오지 않은 이사도 있고요."

-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 거 같은데.
"세상에 나쁜 사람이 많다는 거죠.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자기들끼리 왕국을 만들고 사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 왕국을 자기 돈으로 만들었다면 상관없지만, 국고가 지원되고, 우리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기관조차도 사유화되어서 왕국처럼 운영되는 건 문제잖아요. 그런 기관 중 하나가 국기원이고요.

저는 국기원 존재도 몰랐고 중요성과 역할 그리고 국기원이 우리 국고를 얼마나 지원받는지조차도 몰랐어요. 그러나 100억 넘게 지원받고 국가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인데, 낙하산으로 오신 분이 자기 정치 놀이터처럼 만들고, 직원들 괴롭히고, 문제제기 하는 사범들의 자격까지 취소하고... 이런 식으로 자기 이해관계를 반영하려 했다는 게 놀라웠죠. 국기원은 '하나의 예'일뿐이에요. 우리 사회에 이런 곳이 얼마나 많겠어요."

- 후속 보도 계획도 있나요?
"소스가 넘쳐나는데 해야죠."

- 이번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이에요?
"우리가 감시해야 할 곳이 많아요. 태권도계 문제는, 오현득 원장 개인의 비리가 아니라 구조적인 비리예요. 정치권에서 이 사람을 낙점한 것부터 시작됐고, 정치인들이 뒤를 봐줬기 때문에 오 원장은 마음대로 전횡할 수 있었어요. 자신을 그 자리에 앉혀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노력했고요. 그러면서 국기원이 망가졌거든요. 이러면 이건 구조적인 문제인 거죠. 자기들만의 파라다이스를 만든 것도, 감시를 못 하게 해놓은 거잖아요. 100억이 들어간다니까요. 왜 우리 세금으로 이분들 영달에 기여 해줘야 하냐는 생각이 든다고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당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어요. 모두가 감시해야 합니다."
김동희 PD수첩 태권도 국기원 오현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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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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