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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언어다. 사람의 몸은 그 사람의 심리 상태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달갑지 않은 사람이나 사건이 있을 때, 아무리 감정을 숨기려 해도 행동을 통해 그 심리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눈을 비비거나, 몸을 기울여 약간 거리를 두는 것, 무릎에 지갑 같은 물건을 올려놓는 것, 출입구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다리를 돌리는 것, 모두 상대방을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된 몸의 언어다.

그렇다면 악수는 어떨까? 악수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인사의 제스처이다. 직장에서, 스포츠 경기에서, 여러 만남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악수로 예의를 표한다. 서로 손을 마주잡는 이 동작은, 먼 과거로 올라가 보면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서로 평화롭게 지내자는 우호적인 표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악수는 더 이상 평화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방의 손을 세게 잡거나 팔꿈치를 툭툭 치는 등 악수로 상대방을 제압한다는 느낌을 주며 우월감을 과시한다.

이렇게 악수를 그 본래 의미와 달리 상대와의 '힘겨루기'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수를 통해 겸손함을 보여주는 이들도 있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악수할 때 본인을 최대한 낮춘다. 한 손도 모자라 두 손으로 상대방의 손을 감싸고, 때로는 허리를 숙이며 최대한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뜻을 전한다.

반면에 본인을 낮추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도 예의를 갖추며 당당하게 악수를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의 최고 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가 각종 공식적인 자리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당당하게 악수를 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 깊다.

보디랭귀지에서 본인에 대한 자신감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동시에 느껴진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셰릴 샌드버그와 같은 미국 여성들의 악수하는 모습을 접할 때마다 멋지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국인들에겐 조금은 낯선 모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에선 여성들이 악수를 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모습은 물론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그렇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떠올려보면, 조문객들은 백이면 백, 내 옆에 서있던 오빠에게는 악수를 건네고 나에게는 간단한 목례만 했다.

오빠의 결혼식장, 교수님과의 식사자리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중년의 남성들이 젊은 여성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히려 또 반대로 여성에게 당당히 악수를 건넸다가 그 쪽에서 더 당황해해서 곤란했던 경험을 했다는 남성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려온다.

여성과, 또는 여성이 악수하기를 꺼려하는 이 현상에는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특수한 역사의 영향이 크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내내 여성들은 버선코도 내보이면 안되고 발목을 드러내서도 안됐다. 양반가 여성은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는 장옷을 입고 다녔다.

부르카를 쓰는 이슬람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여성들이 억압받는 문화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전쟁통에서도, 그리고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졌다. 여성과의 신체접촉은 물론이고 몸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던 역사와 문화의 영향으로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젊은 여성의 손을 잡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물론 과거 서양 문화권에서도 남성과 여성 간의 인사법의 차이가 존재했다. 20세기까지는 여성에겐 악수를 청하기보다 손가락에 입을 맞추거나 가벼운 포옹 등 다른 가벼운 인사를 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다양한 여성 인권 운동의 영향으로 그런 인사법은 현재 거의 사라졌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모르더라도, 적어도 직장과 학교와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악수를 한다. 가볍고도 경쾌하게.

한국에서도 최근 들어 여성인권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이제는 여성도 당당하게 악수를 했으면 좋겠다. 남성도 더 이상 눈치보지 않고 여성에게 당당하게 악수를 건네면 좋겠다. 남녀가 유별하던 때로부터 긴 시간이 흘러 이제 한국여성은 더 이상 긴치마를 입지 않고 장옷을 입지도 않는데, 인사예절이라고 바뀌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악수는 단순한 인사를 넘어서 '관계의 시작'이다. 관계의 시작점인 악수에서부터 벌써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다면, 그 후 지속될 관계에서 이미 성평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행동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 진급에서의 유리천장, 연봉격차, 직장성희롱 등 해결해야할 문제들은 끝도 없지만,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여권신장. 당당한 악수로 남성과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받는데서 시작해보자.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인권연대 <우리시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글을 쓴 조소연 님은 인권연대 회원 칼럼니스트으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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