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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직장 동료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고생 안 한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

그때 내색은 못했지만 살짝 놀랐다. 사람은 고생을 해야 조금이라도 깨지고 성장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서이다. 조그만 돌멩이에도 걸려 넘어질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걸까.

그녀의 말에 의하면, 고생 안 한 사람은 특유의 여유로운 기운이 있다나 뭐라나. 그 여유로움이 사람의 분위기까지 온화하게 만들어서 함께 할 때 편하다고 한다. 듣고 보니 그럴 듯 했다. 하지만 100%는 아니었다. 차마 말꼬리를 잡진 못하고, 목구멍에서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삼켰다.

본인이 선택한 고생으로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

대학생 때 핸드폰 대리점에서 한 달간 일했다. 처음 면접 볼 때 나와 또래처럼 보이는 남자가 급여와 기타 사항을 설명해주면서 사장같이 행동하기에 이상하다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진짜 사장님이었다. 그때 내가 23살이었고, 사장님은 나보다 3살이 많았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 큰 가게를 운영하나 싶어 너무 놀랐지만, 실례가 될까봐 돌려 물어봤다.

"언제부터 이 가게를 운영하신 거예요?"

사실 그 어린 사장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되는 게 간절한 꿈이었다고 한다. 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는데 곧잘 했다면서.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등록금도 못 낼 형편이 되었다고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더라도 돈이 많이 들어가서 결국 중퇴했고, 본인 의지로 제 2의 삶을 선택했다면서. 핸드폰 가게와 성악이 너무나 기묘한 조합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발을 들인 일이 핸드폰 판매였다. 당장 일하지 않으면 돈이 없으니 죽기 살기로 매진했는데 이게 웬걸, 자신도 모르는 본인의 장점을 발견했던 것이다. 판매가 체질에 잘 맞아 영업 왕에 계속 등극해서 돈을 많이 벌었고, 개인 가게를 냈다고 했다.

당시 나와 나이 차이가 3살이었는데 마인드와 사고 방식은 딴판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 사장님은 그때 이미 가게가 한 군데 더 있었고 연상의 여자 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어린 나이였지만, 사장님과 결혼할 그 여자가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도 나중에 이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

결혼할 사람을 선택한다면, 이렇게 역경에 단단한 내공이 있어야 믿음이 가지 않겠는가.

삶이 다채로운 무지개 색깔이 되는 건 네 덕분

꿈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든 어린 사장님은, 오히려 고생을 지렛대 삼아 삶을 180도 바꾼 사람이었다. 클래식을 들으며 노래에 매진하던 삶에서 하루 종일 핸드폰을 판매하는 모습으로 삶의 풍경이 바뀌었지만, 일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했더니 또 다른 길이 열렸다면서 잠시 감회에 젖었다. 물론 상대방만 강하기를 바랄 게 아니라, 나 또한 역경에 강한 사람이 되어 서로 좋은 영향을 주는 사이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던 순간이다.

그래서 장애물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사람은 지루하다. 그런 삶은 몇 시간 내내 일정한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같다. 여유로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 삶에 공감할 수는 없다. 삶은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아서 꽃길만 걸어온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역경이 있었던 사람은 다르다. 그의 삶은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담고 있다. 삶의 색이 무지개처럼 다채로워서 살아온 이야기가 역동적이다. 인생의 계절마다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깊고 다양해서 사물과 현상의 본질도 더 정확하게 꿰뚫는다.

사장님은, 성악가를 꿈꾸던 삶은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옛날'이 되었고,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지금이 훨씬 좋다고 했다. 그래서 직장 동료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삶에서 고생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고. 만약 그 어린 사장님이 조그만 돌멩이에도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었다면, '가게 2개를 가진 사장님'이 절대 될 수 없었을 테니까.

 버티고 이겨내면 역경은 훈장이 된다

목표한 바가 있어 스스로 고생을 선택했는데 그 결과가 생각보다 더디게 나타날 경우가 있다. 이럴 때에는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남들이 등 떠밀어서 선택한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에서 만난 고생'이기 때문이다. 이 때 남 탓, 환경 탓하면 말 그대로 그냥 생고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면 그 과정에서 겪은 온갖 역경들은 '고생'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추억' 혹은 '영웅담' 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다. 결국 고생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삶의 결이 달라진다.

이는 무조건 피하고 싶어서 언급하기 싫은, 볼드모트 같은 단어가 아니다. 사람에게 도움을 줬으면 줬지, 절대 못된 존재가 아니다. 다만 그걸 받아들이는 마인드에 따라 짐이 되기도 하고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이왕 사는 삶, 어떤 쪽을 선택해서 어떤 삶을 살지 여부는 나에게 달려 있다. 버티고 이겨내면, 고생은 성취에 대한 훈장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

태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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