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침소봉대(針小棒大)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바늘처럼 작은 일을 몽둥이처럼 크다고 과장하는 것을 뜻한다.

눈에 띄는 침소봉대가 있다. 4일 자유한국당이 홍지만 홍보본부장 명의로 내놓은 보도자료가 바로 그것이다. '가칭 국민중심 사법개혁 및 사법부 하나회 방지 특별위원회 신설 제안'이란 제목이 붙은 이 자료는 "문재인 정부, 사법부에 하나회 만들고 있어"라는 부제목 밑에 이런 설명이 이어진다. 
 
"사법부의 민변화·코드화는 심각한 수준임. 특히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법원 포함)이 균형감을 상실하고 대통령 1인 권력의 사법 코드를 실천하는 '사법부 하나회'에 점령될 위기에 처했음."

여기서 언급된 '사법부 하나회'는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같은 학술모임을 지칭한다. 보도자료는 이런 모임들을 군부 사조직 하나회와 오버랩시켰다. 하나회에 따라붙는 극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이 모임들에 덧씌운 것이다. 이런 모임들이 급속도로 퍼져, 사법부가 문재인 정부의 하부 조직이 될 것 같은 위기감을 조성했다.

홍지만 한국당 홍보본부장은 보도자료를 통해서 의지를 피력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주의'가 대한민국의 사법부까지 침투하면 국가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음, 자유한국당은 (가칭) '국민중심 사법개혁과 사법부 하나회 방지 특별위원회'를 통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를 온 몸으로 지켜내겠음"이라는 설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하나회의 실체를 살펴보고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실상을 따져보면, 이런 모임들과 하나회가 과연 비교 대상이 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전혀 비슷하지 않은 두 대상을 터무니없이 한 데 갖다 붙였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하나회는

군대는 통일적 지휘체계가 필요하므로, 단순 친목단체를 제외한 사조직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쿠데타 동지들인 육사 8기(김종필·김형욱·강창성·윤필용 등)를 견제할 목적으로 4년제 육사 출신인 육사 11기(전두환·노태우·정호용·김복동 등) 이하의 장교들을 '하나회'라는 사조직으로 묶었다.

박정희는 하나회 장교들을 승진과 인사발령에서 특별 대우했을 뿐 아니라 불법 조성된 비자금으로 이들의 환심을 사곤 했다. 일례로 1973년에는 하나회 멤버인 전두환·손영길에게 진급 축하선물로 크라운 4기통 세단 승용차와 금일봉을 하사했다.
 
 청년 장교 시절의 전두환.
 청년 장교 시절의 전두환.
ⓒ 위키백과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박정희의 지원 속에 성장한 하나회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하나회는 5·16 쿠데타 2년 뒤인 1963년 창설됐다. 박 정권 18년 중의 16년을 함께했던 것이다. 박정희의 폭압 정치를 그 기간 동안 군부 차원에서 뒷받침했던 것이다.

하나회의 악행은 그것이 다가 아니다. 박정희가 죽은 직후인 1979년 12월 12일에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최규하 대통령을 무력화시키고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구금했다.

그렇게 계엄사령부를 장악하고 정권을 사실상 장악한 그들은 보다 안정적인 권력 유지를 위해 1980년 5월 광주에서 끔찍한 만행을 자행했다. <김종필 증언록>에 따르면 집권당인 공화당이 그해 5월 16일 계엄령 해제 건의를 의결했다. 계엄령이 해제되면 전두환과 하나회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5월 18일부터 광주 학살극이 벌어져 계엄령 해제의 명분이 사라지고, 이것이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으로 이어졌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출입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 천칭저울을 글고 왼손에는 법전을 안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전두환과 하나회는 곤봉과 소총과 탱크만으로 광주를 짓밟은 게 아니다. 공중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며 헬기 사격도 가했다. 공군 폭격기를 동원하려고까지 했다. 이런 하나회를 자유한국당은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와 등치시켰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단순히 사조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법부 하나회'로 불려야 한다면, 이 세상에는 그런 하나회가 한둘이 아니다. 학교 안에도 많고, 회사 안에도 많고, 종교계 안에도 많다. 그런 식으로 하면 세상의 거의 모든 모임이 앞으로는 '○○○ 하나회'로 불려야 한다. 자유한국당 내에도 '○○○ 하나회'로 불릴 만한 게 한둘이 아닐 것이다.

우리법연구회는

우리법연구회는 1987년 6월항쟁 후에 생겨난 진보적 판사들의 학술 모임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이명박 정권 때인 2011년 생겼다. 군대와 달리 법원에는 이런 모임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판사의 업무는 학자의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판례도 공부하고 학계 연구동향도 파악해야 한다. 학계의 통설이나 다수설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지만, 어떤 학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둬야 한다.

그런데 담당해야 할 사건도 많고, 읽어야 할 소송서류도 쌓여 있는 상황에서 별도로 공부를 하자면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과 합력하는 게 유리하다. 최신 판례와 학설을 좀 더 수월하게 파악하자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터디 모임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군대 사조직과 달리 법원 학술모임은 권장돼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법연구회 같은 법원 내 모임의 주 목적이 이념 활동이 아니라 학술 연구라는 점은 2003년 4월 이 연구회를 크게 보도한 <신동아> 기사 '강금실·박범계... 강골 판사의 산실'에서도 인정됐다. 제목만 보면 우리법연구회가 강골 판사들의 비밀 조직쯤 되는 것 같지만, 기사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법학도서 읽기 모임을 갖고 있던 강금실 판사 등 4명의 소장 판사는 수차례의 독서모임을 연 뒤 모임을 전문화하고 확대할 필요성을 느낀다. (중략) 세미나라곤 하지만, 모임 장소가 마땅찮아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법학 논문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창립 이후 우리법연구회는 매월 한 차례 월례 세미나를 갖고 헌법·노동법·경제법 이론을 개관하는 학회 모임을 이어간다. 회원들은 각자 자신이 발제한 주제의 논문을 발표하는 한편, 법원 내부에서 일어나는 시사적 문제들을 요약 정리해 토론해왔다."

아무리 학술 모임이라지만, 진보 성향들만 모였다면 위험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공부는 마음 맞는 사람끼리 해야 한다. 노동법이나 인권법 혹은 여성 문제를 토론하는 스터디 모임에 보수 성향이 강한 법조인이 참여한다면, 모임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기 때문이다. 스터디 모임에서 뭔가 배우기보다는 스트레스만 쌓고 돌아올 확률이 높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알고 있었다

이런 학술 모임을 박정희·전두환의 하나회와 비교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점은 양승태 대법원장 쪽도 잘 알고 있었다. 양승태 측도 이런 모임들의 실체를 조사했다. 그 조사의 결과가 2016년 3월 15일 작성한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에 적혀 있다. 이에 따르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대부분은 보수 성향 인물들이다. 진보적 성향들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보수 성향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다수 일반 회원은 순수한 학문적 관심과 국제인권에 대한 관심에 따라 가입한 회원들임. 이념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띠고 있고, 특히 36기 이하의 법관들은 이념적 편향성이 적고 국제법 등에 대한 관심에 따라 연구회에 가입한 법관들이 많음."
 
 사법농단 문건의 하나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의 일부.
 사법농단 문건의 하나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의 일부.
ⓒ 대법원

관련사진보기


그렇지만, 모임을 이끄는 소수가 특정 이념에 기울어 있다면 위험하지 않을까? 이 질문 역시 무익하다. 열성적 리더 그룹이 없으면 어느 집단도 장수할 수 없다. 열성적 소수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그런 학술모임이 오로지 학문연구만 한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는 사회·정치적 영향도 끼쳤다. 하지만, 그 영향은 박정희·전두환의 하나회가 끼친 행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 모임이 끼친 영향 중 대표적인 것은 양승태의 상고법원 설치 시도를 제지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점이다. 별도의 상고법원을 만드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지만, 양승태는 이를 통해 거대 사법부를 만들고 박근혜 정권과의 공조를 통해 국민 위에 군림하려 했다. 이를 막는 데에 학술모임 출신 법조인들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

이 점은 양승태 측이 2016년 7월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홍보 방안'이란 문건에도 나타난다. 우리법연구회 등을 상고법원 설치의 장애물로 인식하고 연구회에 대한 대책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특히 우리법연구회 등을 중심으로 한 일부 반대 법관들이 세 결집의 양상을 보이는 경우 ⇨ 전국 법관 토론회를 통해 상고법원의 정당성을 확인 받는 절차 요긴할 것."

군부 사조직 하나회는 박정희 정권을 지탱하고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광주 학살극을 자행했다. 이에 비해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는 양승태의 상고법원 설치를 견제하는 긍정적 기여를 했다.

바늘은 바늘이라 부르고, 몽둥이는 몽둥이라 부르자

더군다나 양승태 측이 파악한 것처럼 이런 모임의 구성원 대다수는 보수적 판사들이다. 이들이 모임에 참여하는 주 목적은 최신 판례와 학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런 스터디 모임을 군부 사조직 하나회처럼 묘사하고,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사법부 하나회에 점령당할 위기에 놓였다'고 과장하는 것은 '침소봉대'를 연상시키는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특정 사조직이 법원 내에서 무한정 팽창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은 아니다. 특정 연구모임 출신들이 법원 요직을 독차지하고 법원을 그들의 의견대로만 이끌려 한다면, 이것은 당연히 견제하고 저지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의 악선전과 달리 그런 부정적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모임들을 하나회와 오버랩시키는 보도자료는 전형적인 확대 해석으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바늘은 바늘이라 부르고, 몽둥이는 몽둥이라 불러야 한다. 서로 다른 둘을 두고 헷갈려서는 안될 일이다.
 

댓글1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