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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프리랜서가 전현무, 김은숙은 아니다. 아니 두 사람은 극소수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자의로든 타의로든 프리랜서가 됐지만, 대부분은 저소득의 늪에 빠져있다. '홀로'라서 더 '잔혹한' 프리랜서의 세계를 <오마이뉴스>가 네차례에 걸쳐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그 두번째다.[편집자말]
고용된 노동자와 다를 바 없이 한 업체에 속해 상시·지속적으로 일하지만 '프리랜서'인 이들도 있다.
 고용된 노동자와 다를 바 없이 한 업체에 속해 상시·지속적으로 일하지만 "프리랜서"인 이들도 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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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 서울로 올라온 애견미용사 A씨는 비자발적으로 '프리' 선언을 했다. 프리랜서 자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무 형태는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애견샵에 오전 10시쯤 출근해 오후 7시쯤 퇴근했다. 예약이 없는 시간에도 샵에 멍하니 앉아있거나 미용 외의 업무를 해야 했다. "번 만큼 가져갈 수 있다"라는 원장의 말이 공허했다.

그는 지난 8월 20일부터 24일까지 5일 동안 하루 8~9시간을 일하고 18만 원을 손에 쥐었다. 다음 주가 이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일하다 개에 물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칼빵(칼로 몸에 상처를 내는 것) 맞았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팔은 이미 상처투성이다. 이처럼 사고가 빈번한 업무인데, 프리랜서라 4대 보험도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찔했다. 결국 가게를 박차고 나왔다.

프리랜서는 전문적인 기술·지식 등을 바탕으로 여러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비고정적이나 전문적인 지식·기술 등이 필요할 때 주로 호명된다. 하지만 고용된 노동자와 다를 바 없이 한 업체에 속해 상시·지속적으로 일함에도 불구하고, 신분은 프리랜서인 이들도 있다. 그야말로 완전한 프리랜서도, 노동자도 아닌, '낀 존재'다.

낀 존재
  
주당 53.8시간, 연 평균 2805시간 근무하는 방송작가. 세계적으로 일 많이 하기로 유명한 한국의 일반적인 노동자보다 연간 600여 시간을 더 일한다.
 주당 53.8시간, 연 평균 2805시간 근무하는 방송작가. 세계적으로 일 많이 하기로 유명한 한국의 일반적인 노동자보다 연간 600여 시간을 더 일한다.
ⓒ 방송작가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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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노동자의 권리는 물론 프리랜서의 권리도 누리지 못한다. 꼬박꼬박 출퇴근하다 보니 다른 곳의 업무를 병행할 틈이 없다. 그 업무에 수입 대부분을 의존하지만, 프리랜서라 기본급이 없다. '일한 만큼' 수당으로 띄엄띄엄 받는다. 일하다 다쳐도, 아파도 '내 탓'이다.

방송사에서 교양․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작가들이 대표적이다. 프리랜서 막내 작가 B(24)씨는 "방송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막내 작가들은 방송국에 상주한다"라며 "오전 10시~11시쯤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한다. 촬영이 가까워지면 밤을 아예 새는 경우도 다반사다"라고 했다. 3일 밤을 새워도 야근 수당은커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받았다.

"김은숙 작가는 정말 1%도 안되는 비율이라고 보면 된다. 아직도 100만 원, 120만 원 받는 막내작가들이 많다. 요즘에는 방송이 결방돼도 막내 작가 페이는 챙겨주는 곳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프리랜서인 작가는 그 주에 돈을 못 받게 돼 있다. 해당 팀의 호의에 기대야 한다. 그렇다고 그 주에 일을 쉰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는 "프리랜서는 능력껏, 일한 만큼 돈을 모을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서도 "하지만 한 프로그램에 상주하며 잠자는 시간도 쪼개 자야 하는 막내 방송작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14년차 프리랜서 작가 C씨도 "20년차 이상인 메인 작가가 아니고서야 다른 프로그램을 겸할 수 있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라며 "주변에서는 프리랜서라 엄청 좋겠다고 한다. 그러면 자조적으로 '우리는 프리랜서야, 보너스도 퇴직금도 없는 프리'라고 농담하곤 한다"라고 말했다.

정규직 노동자의 권리인 '유급병가'는 기대할 수도 없다. 병가는커녕 병원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다. B씨는 "며칠 동안 아팠는데 '죽을 만큼은 아니잖아, 지금 당장 병원 안 가도 되지?'라는 말을 들었다"라며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결국 다음 날 아침에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 그것도 일의 지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 1시간 안에는 다녀와야 했다.

"방송작가는 왜 프리랜서로만 쓰는지 궁금하다. 프로그램들이 비고정적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같은 프로그램을 하던 정규직 PD들은 프로그램이 끝나면 회사가 정해준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동한다. 프리랜서인 작가들은 그때부터 실업자가 된다."

B씨는 절규하듯 말했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이 현실로 구현되고 '재밌다'는 반응이 돌아오면 뛸 듯 기뻤던 그이지만, 결국 방송작가를 그만뒀다. 프리랜서로 쓰고 버려지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방송작가 세계로 돌아올 생각은 없다고 했다.

스스로 묻기 시작하다 "매여 있는 우리가 프리인가?"
 
방송작가들이 일하는 현장은 화려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부조리했다.
 방송작가들이 일하는 현장은 화려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부조리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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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한 민영방송사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일했던 김도희(36)씨도 '낀 존재'로 사는 게 힘들어 그만둔 경우다. 그는 횟수로 7년을 일하며 스스로를 프리랜서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주 5일 이상 정기적으로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회사에 '매여' 행사조차 자유롭게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입사하고 3년 넘게 메인뉴스 앵커를 했다"라며 "회사에서 앵커가 행사를 뛰면 위신이 떨어진다며 못 하게 했다"라고 했다. 그는 "회사가 허락한 행사 딱 한 개만 할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메인앵커에서 아침 뉴스프로그램으로 이동한 다음에는 '행사제한령'이 풀렸지만, 회사에 사전 보고해야 했다.

입사 후 2년 뒤에야 쓴 계약서가 김씨의 애매한 지위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회사와 맺은 '전속 아나운서 출연계약서'에 따르면, '자유직 종사자'인 김씨는 해당 방송사와 2년간 전속계약을 체결해 계약금과 출연료를 받는다. 이 기간 동안 회사의 동의 없이 해당 방송사의 방송권역 내에서 동종업무에 종사, 유사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없다.

김씨는 "말만 프리랜서였다"라며 "회사는 프리랜서로서 부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행사 등은 모두 차단하면서 소속된 아나운서처럼 부렸지만, 프리랜서라 퇴직금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에게 보장해줘야 하는 것을 피하면서도 노동자처럼 쓰고자 프리랜서로 뽑은 것 같다"라며 "프리랜서를 악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소모품처럼 쓰이다 버려지는 현실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노동청을 찾아갔지만 허탕이었다. 그 스스로 근로자임을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회사에 경제적·업무적으로 종속돼 사는 프리랜서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고용된 노동자에 가까울 정도로 종속성이 높은 프리랜서들의 경우 국제노동기구에서도 '보호가 필요한 고용'으로 보고 그들에 대한 처우와 권리 증진을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부소장은 이어 "같은 직군이라도 일부는 회사가 정규·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일부는 프리랜서로 쓰는 것은 사실 프리랜서로 보기 힘들다"라며 "프리랜서와 관련된 입법을 할 때, 위장된 프리랜서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태그:#프리랜서, #대한민국 프리랜서 잔혹사, #방송작가, #아나운서, #애견미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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