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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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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하얀 형광등, 들것에 실려 엑스레이를 찍고 새하얀 일인실로 옮겨졌다. 오른 팔 정맥에 바늘이 들어가고 붉은 핏속으로 주사약이 들어간다. 응급실을 이용하는 건 평생 처음이다. 여기는 머나먼 콜롬비아, 내가 왜 병원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디가 아파서 무슨 약을 주사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8월 29일 수요일 정오, 세계여행 101일째. 남미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소도시 포파얀으로 가는 16시간짜리 장거리 버스에 올랐다. 5일 전 해발 0미터 파나마 시티에서 2600미터 보고타로 이동한 뒤 하루하루 구토, 두통, 치통, 두드러기 증상이 차례로 나타났다. 아픈 상태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고산병은 500미터만 내려가도 호전된다는 정보를 읽고 이동을 서둘렀다. 몇 군데 버스 회사 중 저렴한 버스를 골랐다. 승객은 모두 현지인, 배낭을 맨 외국인 여행자는 나 혼자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50킬로미터는 고속도로로 네 시간이지만, 중남미 산지에서 이동 시간은 꼬박 세 배가 걸린다. 저지대로 이동해 몸이 좋아지길 바랐으나 버스는 2000미터, 3000미터 거대한 산맥을 꼬불꼬불 오르락 내리락. 좁은 좌석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 상태는 더욱 안 좋아졌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위태하게 놓여진 판 아메리칸 하이웨이 이차선 도로 위를, 거대한 트레일러 트럭들과 버스들이 줄을 지어 행진했다. 구름과 안개가 낀 거대한 산들에는 듬성듬성 그러나 빠짐없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산에서 바나나와 커피 농사를 짓고, 길가에서 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콜롬비아 산맥의 사람들. 어른과 아이들.

극심한 치통과 편도선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다섯 시간쯤 지나자 배가 고팠다. 챙겨온 토마토 두 개를 꺼내 먹는데 옆자리 콜롬비아 아저씨가 엄지 손톱 만한 포장지에 담긴 소금을 건넸다. 나는 토마토를 설탕에 찍어 먹지 소금을 뿌려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소금이 고산병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본 것 같아 선뜻 소금을 받아 뿌려 먹었다. '단짠'이라던가. 촉촉한 토마토의 단맛과 짜디짠 생소금의 맛이 온몸에 퍼졌다.

"너 어디까지 가니? 어디에서 왔니? 포파얀은 아침 되어야 도착하겠네. 고산병 많이 아프지..."

얼굴에 울긋불긋 수포들이 돋아나서 다른 사람의 얼굴을 마주 하기 신경쓰였는데 아저씨는 전혀 개의치않았다. 자신의 도시락으로 싸 온 치킨과 비스킷도 나눠 주었다. '몸아 좋아져라, 에너지야 퍼져라', 하며 감사하게 받아 먹고 내 초코맛 씨리얼도 나눠먹었다.

"이런 거 말고 제대로 요리된 음식을 먹어. 그래야 몸이 낫지..."

자다 깨다 하다 보니 끝이 없을 것 같던 산맥도 끝나고 평지에 다다랐을 때는 깜깜한 밤이었다. 버스 출발 열두 시간째, 자정 무렵 아저씨는 툴루아라는 도시에서 먼저 하차했다.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 이름과 연락처를 수첩에 받아적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나중에 꼭 한 번 전화해서 목소리를 듣고 고마움도 전하고 싶었다.

아저씨가 내리자마자 그 자리에 또 다른 아저씨가 다가와 앉았다. 곧 내릴 승객이라 앞쪽 자리로 왔나보다 생각했다. 웨하스 과자를 권하기에 "밤이라 안 먹는다" 사양했다. 콜롬비아 버스에서는 이렇게 서로 음식을 나눠먹는 건가. 두 번 세 번 오렌지맛 음료를 권하기에 밤이 깊어 안 먹는다 또 사양했다.

"어디까지 가니? 포파얀이면 아침에 도착하겠네. 나는 파스토까지 가."

비슷한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빨대까지 꽂아 주며 네 번째로 음료를 권하기에 두 모금 양의 음료를 쭉 빨아마셨다. 달큰한 오렌지 음료의 맛. 그때가 새벽 두 시였다. 버스는 콜롬비아 평원의 밤을 달리고 있었다.

그 새벽 두 시부터 병원에서 깨어난 오후까지 열 두 시간 동안의 기억이 전혀 없다. 나는 강력한 수면 마취제를 먹고 완전히 강도를 당한 것이다. 허리의 복대에 숨겨둔 600달러, 보조 가방 속의 지갑과 카메라와 노트, 배낭 속 서류 틈에 끼워둔 700달러, 귀국 후 교통카드 충전을 위해 챙겨둔 한국 돈 이만 원, 오천 원짜리 손목시계와 손톱깎이까지 탈 탈 탈 털렸다. 옷가지가 남은 배낭만이 경찰서를 거쳐 다음날 병원으로 돌아왔다. 왜 배낭은 경찰서로 몸은 병원으로 간 걸까. 몇 사람의 손을 거쳐 털린 건지도 알 수가 없다.

지난 100일 동안, 그 험하다는 뉴욕 씨티에서도 일주일 간 노숙을 했고, 반정부 시위와 폭력 탄압 중이라 여행자들이 아무도 가지 않는 니카라과도 지나며 육로로 파나마까지 9개국을 지나왔다. 드디어 남미, 콜롬비아에 도착했는데 어이 없이 모든 계획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라비아로,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로 세계 일주를 계획하고 떠난 여행인데, 절반도 이루지 못하고 포기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너무나 허망하고, 잃어버린 것들이 아깝고, 기어이 그 음료 두 모금을 마신 게 후회스럽다. 아마도 100일 동안 여행을 하며 고생을 많이 해 아파진 몸으로 긴장감이 떨어져서 강도를 당한 것이리라. 돈 몇 푼들을 얼마나 아낀다고 몸을 축내며 다녔는지, 파나마 공항에선 식빵 쪼가리만 먹으며 왜 이틀이나 노숙을 했는지, 스스로가 바보 같고 갖가지 후회가 몰려왔다.

돈은 다시 일을 해서 벌면 되고 카메라는 새로 사면 되지만, 여행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촬영한 자료들은 결코 다시 되돌릴 수가 없다. 여행 중에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서른 번의 인터뷰.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감사한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과정과 세계의 모습을 영화로 담고 싶었는데, 모든 게 한 순간에 먼지처럼 사라졌다.

한없이 쓰라리다. 인생의 고비다.

그러나 그 도둑 아저씨에게도 버스 강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으리라. 그리고 불행 중 다행히도 몸을 해하지 않았고, 여권과 카드 한 장을 가져가지 않았다. 촬영 자료는 찾지 못하더라도 그 만남과 관계, 풍경은 내 존재 속 어딘가에 새겨져 있고 글로 기록할 수도 있다.

강도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 와서야 내가 대상포진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고산병으로 아픈 게 아니었다. 대상포진은 면역력이 심하게 떨어졌을 때 걸리는 병이다. 아직 여행의 초반인데 건강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이어지는 후회와 눈물. 후회와 눈물은 자료를 찾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제 카메라는 작지만 제 꿈은 큽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꿈은, 이루라고 있는 게 아니라, 깨지라고 있는 것인가 보다. 그럼에도 또 꿈을 꾸는 게, 살아있는 나와 우리의, 삶의 길인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 동안은, 아마 다시 꿈을 꿀 거야.

강도 피해를 당한 여행자와 환자를 위한 현지 기관에서 내 1박 2일 동안의 병원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대상포진이 심한 상태로 다음 날 바로 병원을 떠나야 했다. 그런 나를 불쌍하게 여긴 스물한 살의 간호사 크리스티안이 자신의 집으로 나를 데려와 회복을 도와주고 있다. 역시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 어제는 강도를 만나고 오늘은 은인을 만나는 게 여행이며 인생이다.

강도 사건 이후 나흘째, 예정에도 없이 약에 취한 채 오게 된 파스토라는 도시에서 나는 회복 중이다. 잃어버린 카드와 휴대폰을 신고하고, 하나 남은 카드에서 현금을 뽑아 필요한 물건들을 다시 하나씩 마련하고 있다. 수포는 조금씩 딱지로 변해 가고, 바닥으로 떨어진 체력도 서서히 나아지는 중이리라. 인생 최대의 쓴맛, 인생 최대의 고비를, 서서히 넘어가고 있다.

나는 이 여행의 길을 조금 더 가보려 한다.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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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토 현지 신문에 올릴 글

잃어버린 영화를 찾습니다 

안녕하세요. 남한에서 온 세계여행자 늘샘입니다. 이곳은 콜롬비아 남부 나리오주 파스토입니다. 저는 지난 5월 21일부터 9월 3일 현재까지 106일째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처럼 저도 오랫동안 세계여행을 꿈꾸었고 지금 그 꿈을 조금씩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청년 영화창작자입니다. 여행 중에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 쿠바,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콜롬비아까지 열 개 나라를 여행했고, 앞으로 남미, 아프리카, 아라비아를 거쳐 세계 일주를 하고 남한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종종 길거리에서 텐트를 치고 자기도 하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희 카메라는 작지만 제 꿈은 큽니다. 꼭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30일 새벽, 보고타에서 포파얀을 지나 파스토로 가는 버스에서 그만 강도를 당했습니다. 돈은 물론 카메라, 마이크, 촬영 파일들이 보관된 하드디스크를 도둑맞았습니다. 여권과 옷, 텅 빈 가방 말고는 모든 물건들이 없어졌습니다. 새벽에 옆자리에 앉은 남성이 자꾸 권하는 오렌지 음료를 두 모금 마셨는데, 그 안에 수면마취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12시간이 지난 후 파스토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났습니다.

돈과 카메라, 다른 모든 물건들은 잃어버려도 괜찮습니다. 도둑에게도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으리라고 이해합니다. 하지만 촬영 영상이 보관된 하드디스크와 SD카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와 아메리카 대륙의 오늘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혹시 이 자료를 발견하신 분은 꼭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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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달동네 생활영화인 늘샘. 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자라, 지리산 골짜기 간디학교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인디스페이스, 늘장, 로드스꼴라,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활동.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고, 노래합니다. 인디언식(式) 이름은 '땅을 치고 춤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