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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야구 국가대표팀이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프로구단들을 위해 병역 면제가 필요한 선수들을 많이 충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 팀들이 주로 실업팀 소속으로 구성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만족할 만한 경기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다는 평가다. 그렇지만 금메달은 땄다. 그래서 법대로 병역 특혜를 받게 됐다.

이로 인해 체육·예술 분야 병역특례제도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입상자만 우대하고 세계선수권 입상자는 우대하지 않으며, 병무청장이 지정하는 국내외 예술경연대회 입상자만 우대하고 정작 국위 선양에 크게 기여하는 방탄소년단(BTS) 같은 대중음악팀을 우대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기찬수 병무청장은 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논란을 보고 병역특례 제도를 손볼 때가 됐다고 느끼고 있다"라며 "체육·예술 병역특례를 전체적으로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병역 문제에 대한 국가의 방침을 좌우하는 요인 중 하나는 현재의 병역 자원이 충분한가 여부다. 병역에 동원할 자원이 너무 많으면 특혜를 확대하게 되고, 부족하면 축소하기 마련이다.

기찬수 청장은 "병역자원이 안 그래도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특혜를 축소할 시점이 됐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국가기관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데다가 여론까지 뒷받침되고 있으므로, 특례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법 제도가 바뀔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대한민국이 병역특례를 부여하는 기준은 병역법 제33조의7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조문 제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병무청장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예술·체육 분야의 특기를 가진 사람으로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추천한 사람을 예술·체육 요원으로 편입할 수 있다."

예술·체육 요원으로 편입돼야 병역 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다. 이 규정에 근거해 대통령령인 병역법 시행령이 특례 기준을 정하고 있다.

시행령 제68조의11에 따르면, 병무청장이 지정하는 국제예술경연대회 2위 이내 입상자, 병무청장이 지정하는 국내예술경연대회 1위 입상자,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 이수자로서 병무청장이 지정하는 자격을 취득한 사람, 올림픽 3위 이내 입상자,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가 예술·체육 요원으로 인정되고 병역특례를 제공받을 수 있다.

병역법과 시행령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특례 기준은 예술·체육 분야의 특기 소지다. 국제대회 입상의 결과로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국제대회 입상은 특기의 수준을 객관화하는 지표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기준은 '나랏일'

옛날 군인들의 훈련 모습.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에서 찍은 사진.
 옛날 군인들의 훈련 모습.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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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병역 특례는 민감한 사안이다. 옛날 남성들한테도 그랬다. 그래서 대한민국 시대에 특기를 기준으로 병역특례를 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전국 무덤에 누워 있는 옛날 남성들이 다들 의아해 눈을 살짝 뜰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시대의 병역특례 기준이 자신들이 살던 시대와 판이한 데다가, 그들 시대의 관념으로는 쉽기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옛날 관점이 지금 시대에 꼭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시대에는 우리 시대 나름의 관점이 있다. 옛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지금 시대를 구속하는 것은 아니다. 병역 특례와 관련해 과거와 현재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점을 소개하는 게 이 글의 목적일 뿐이다.

특기를 소지했느냐를 기준으로 특례를 주는 대한민국과 달리,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나랏일을 상시적으로 하느냐를 기준으로 특례를 부여했다. 이 시대에는 16세부터 60세까지 1년에 몇 개월씩 군인으로 복무했다. 그래서 상시적으로 공직을 수행하는 사람은 군역을 이행하기 힘들었다. 또 군역도 공직 수행이므로 이미 공직을 수행 중인 사람한테 군역을 따로 부과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있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공직자들이 우선적으로 면제 혜택을 받았다. 이병휴 경북대 역사학과 교수의 '양반이란 무엇인가'는 그 상황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아래 글 속의 '양반'은 특권계층이 아니라 현직 문무 관료를 의미한다.

"우선, 양반은 관직에 있는 동안 군역을 면제받았다. 양반의 관직은 군역과 동일한 신역의 일부로 간주됨으로써, 관직의 복무는 군역을 지는 것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2품 이상의 전직 관료들도 국정을 의결하던 중신들이었으므로, 퇴직 후에도 계속적인 국정 자문을 위해 군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더구나 성균관·사학(四學)·향교의 유생들도 장차 과거의 급제를 통하여 양반 관료가 될 수 있는 후보자들이었기 때문에 군역을 면제받았다." - 일조각이 2001년에 펴낸 <한국사 시민강좌> 제29집에 실린 글.

두 번째 문장의 신역(身役)은 군역이나 부역 같은 의무를 의미한다. 양반, 즉 현역 문무 관료들은 상시적인 공무 수행으로 신역을 이행하고 있으므로 별도의 군역을 부과할 필요가 없다는 게 옛날 정부의 인식이었다. 전직 고관은 앞으로도 상시적으로 국정 자문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학교 소속의 유생들은 앞으로 상시적으로 나랏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현역 관료와 마찬가지로 군역을 면제받았다.

특기 소지자가 '힘들게' 살았던 시대

조선시대 관료의 모습. 경기도 파주시 ‘율곡 이이 유적’에서 찍은 사진.
 조선시대 관료의 모습. 경기도 파주시 ‘율곡 이이 유적’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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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면제는 주로 전·현직 관료와 예비 관료인 학생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들만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니다. 혜택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다른 유형의 사람들한테도 혜택이 주어졌다.

법전인 <경국대전> 병전(兵典) 편에서는 60세를 넘은 사람, 불치병에 걸리거나 불구가 된 사람, 불치병에 걸리거나 불구가 된 부모를 모시는 사람(아들 한 명만 혜택), 70세 이상 된 부모를 모시는 사람(아들 한 명만), 90세 이상 된 부모를 모시는 사람(이 경우는 모든 아들)한테도 면제 혜택을 부여했다. 하지만 병역 면제의 본질은 전·현직 관료와 학생들을 배려하는 데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원칙상 나랏일을 상시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에게만 병역면제를 제공하던 시대를 살았다. 그런 그들이 볼 때는 특기 소지를 기준으로 하는 오늘날의 풍경이 낯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특기 소지자는 뭔가를 면제받기보다는 오히려 많은 공적 부담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노비제도가 존속하는 동안에, 국가는 공노비(관노) 중의 특기 소지자들을 최대한 활용했다. 예능 보유자는 기생으로 활용하고 기술 보유자는 장인으로 활용했다. 글을 쓸 줄 알면 관청 서리로 활용했다. 국가는 이들을 봉급도 주지 않고 활용했다. 그래서 이들은 비번 시간을 활용해 돈을 벌어야 했다.

이처럼 양인(자유인)이나 사노비가 아닌 한, 특기 소지자로 알려지면 이것저것 귀찮은 일이 많았다. 이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눈에는, 대한민국 시대의 특기 소지자들이 나라에서 혜택을 받는 풍경이 꽤 낯설 수밖에 없다.

지금 시대에 맞는 기준을 정하면 될 일

더군다나 특기 소지자가 원칙상 양반 관료들이나 받던 병역면제를 받는 걸 보면서, 옛날 사람들은 더욱 더 놀랄 수밖에 없다. 공직을 조건으로 병역면제를 받는 걸 봤던 그들로서는, 체육·예술 분야 특기 소지자가 대한민국 정부의 공직이라도 맡게 되는 건가 하고 궁금해 할 수도 있다.

예컨대, 국가대표가 돼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획득하고 병역면제를 받으면, 문화체육관광부나 대한체육회(국민체육진흥법상의 특수법인)에서 60세까지 나랏일을 하게 되는 건가 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옛날에는 옛날에 맞는 방식이 있고, 오늘날에는 오늘날에 맞는 방식이 있다. 우리 시대에는 우리 시대에 맞는 병역특례 제도를 계속 정비하면 된다. 대한민국 시대의 병역특례 논란을 듣고 눈을 살짝 떴을지도 모를 전국 무덤 속의 사람들도 '저 시대에는 저 시대 나름의 방식이 있겠지'라며 더 이상의 관심을 자제하고 도로 눈을 살짝 감을 것이다.


태그:#병역 특례, #병역 면제, #병역 특혜, #병역법, #군역 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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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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