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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서울에 조문갈 일이 생겨 오후 2시 40분 광주송정역에서 열차를 탔다. 두 시간도 안 지났는데 서울이다. 빠른 세상이다. 빠른 세상에선 시간을 잘 챙겨야 한다. 두어 시간 장례식장에 머문 후, 오후 7시 10분 돌아오는 열차에 올랐다. 돌아오는 밤 열차는 승객이 적어 조용했다. 옆 좌석도 비었다. 창밖풍경도 없어 신문을 읽다 깜박 졸았다.

"잠시 후 목포역입니다. 내릴 준비 하세요."

안내방송 소리에 깨어났다. 내가 내렸어야 할 광주송정역은 30여 분 전 지났다. '출발하는 시간'만 챙기다 '내리는 시간'을 깜박 한 것이다. 열차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역에 내려 본 적 있는가.

1910년 10월 31일, 82세의 톨스토이는 랴잔 우랄 철도 중간 한 시골 역에 내린다. 내리려고 내린 역이 아니다. 철도여행 중 병이 위중해져서 내린 것이다. '11월 7일 오전 6시 5분 톨스토이는 아스타 포보 역장관사에서 눈을 감았다'라고 기록은 전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저자, 톨스토이는 왜 열차여행을 마지막여행으로 선택했을까? 이름도 모르는 어느 시골 역에서 죽음을 맞고 싶어서였을까.

열차여행은 인생과 자주 비유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닿는 순간까지 타고 가야하는, 왕복여행이 아니라 편도여행"

시인 정연복은 <인생열차>를 시로 얘기한다. 내릴 역을 정해놓고 타는 세상열차와 달리, 인생열차는 내릴 역을 알지 못한 채 타는 열차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인생열차 승객이다.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승객이 된다.

승객은 누구나 언젠가는 내려야 한다. 그러나 인생열차에서 내리는 승객은 언제나 '홀로'다. 따라 내려주는 동반자가 있을 수 없다. 안내방송도 혼자에게만 들린다. 다른 승객에겐 각각 다른 방송이다. 내릴 준비도 홀로 해야 한다. 내릴 역, 내릴 시간을 아는 승객이 없다.

목적지도 모르면서 제 각각 탄 인생열차, 내릴 때도 제 각각이듯 탄 목적도 제 각각, 내릴 준비도 제 각각일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민음사 번역본)" <안나 카레니나> 첫 구절처럼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다들 각각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홀로 타고 내린다. "사람은 오직 사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톨스토이 이야기, 그가 터득한 인생열차 목적이다.

우리도 인생열차에서 옆 사람과 웃고 떠들다가도 내 방송이 들리면 홀로 내려야 한다. '인연 맺은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일'도 내려놓아야 한다. 100세까지 살 것처럼 돈 모으기, 권력 쫓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승객이 '5분 후 내리라'는 방송을 들으면 어떨까. 신의주까지 가려고 느긋하게 마음먹고 있는 승객은 '다음 역, 대전에서 내리라'면 황당할 것이다.

'항시 깨어있으라', 잘 내리기 위해 졸지 말고 안내방송을 잘 들으라는 말처럼 들린다. 잘 내리기 위해 무얼 준비해야하나?

밤 10시 반, 송정역 도착시간 7분 전이다. 내릴 준비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한 시간 반 전, 반대로 달리던 열차도 잠시 후 내릴 준비하라고 여러 차례 방송 했을 거다. 그때 정작 나만 못 들었다. 이번에는 '내릴 준비' 안내방송 나오자마자, 열리는 문 앞 통로까지 가서 기다렸다.

깜박 존 덕분에, 종착역인 목포역 대합실 구경 30분하고 광주행 차표 사서 37분 걸려 송정역에 돌아왔다. 한 시간 반 동안 인생열차 체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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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