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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이익이 주도하는 성장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반성에서 새로운 성장 담론으로 모색된 것이 임금주도 성장이었다. 서구의 임금주도 성장(wage led growth)이론을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우리나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소득주도 성장으로 개념을 넓혔다.

노동자의 임금뿐만 아니라 500만이 훌쩍 넘는 자영업자들의 사업소득까지 올려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구상이었다. 이런 소득주도 성장이 집권 2년차에 자영업자들의 반발에 가로막혀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에 화가 난 소상공인들 전국 소상공인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에 참석해 자영업자 생존권을 위협하는 최저임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솥단지와 냄비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최저임금 인상에 화가 난 소상공인들 전국 소상공인들이 8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에 참석해 자영업자 생존권을 위협하는 최저임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솥단지와 냄비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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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단지 시위, 예삿일이 아니다

지난 8월 29일 소상공인연합회가 주도하는 대규모 시위에서 솥단지가 내던져졌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며 제도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모였다. 2004년 여의도에서 전국음식점 주인들이 벌였던 '생존권 사수를 위한 음식업주 권리대회'와 2011년 잠실종합운동장 한국음식업중앙회 주최 10만 운집 시위에 이은 세 번째 솥단지 퍼포먼스인 셈이다.

솥단지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사뭇 무겁다.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절규이고, 장사를 해봐야 빚만 늘어가니 솥단지를 깨부수고 거리로 나서겠다는 파업 선포인 셈이다. 어찌 되었건 밥을 하늘처럼 여기는 우리 정서에서 솥단지가 내던져지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다. 여의도에서, 서울잠실운동장에서 솥단지를 던지고 엎어 버려도 자영업자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비단 문재인 정부에서만도 아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신문들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자영업자 비관적인 처지를 실었다.

"자영업 비상구가 없다, 자영업 44% '빈곤층 생활"(동아일보2004) "못 살겠다 자영업자들의 절규"(미디어스.2008). 자영업자 70.9% "경기회복 체감 못해"(내일신문2009). "문닫은 자영업자들, 어디로 갔나"(아시아경제2011). "요즘 자영업은 전멸이라고 보면 돼..전멸"(오마이뉴스2012). "숙박-음식점-구멍가게 자영업자 몰락 가속화"(뷰스앤뉴스2013). "여기도 폐업, 저기도 폐업..자영업자들의 몰락"(한국일보2015)' 등등. 이렇게 보면 자영업자에게 살만한 세상은 IMF 외환위기 이후 단 한 차례도 없었던 셈이다.

문제는 20여 년동안 자영업자의 절규가 계속되고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지만, 자영업자의 수는 줄지 않았고, 정부의 처방도 별반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8년 7월 자영업 사업자는 570만 명이다. 무급가족종사자를 포함하면 687만 명이다. 5명 중 한 명이 월 100만 원도 못 번다는 자영업. 그러나 자영업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 건 노동시장의 불안정에서 기인한다.

정규직에서 밀려나고 비정규직으로 살아서는 삶을 영위하기도 힘드니 전 재산을 탈탈 털고 은행 대출받아서 '나만은 다르겠지'하는 희망으로 자영업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수많은 자영업자가 망해서 다시 비정규직에 줄을 서도, 그만큼의 노동자들이 다시 치킨집 사장이 되는 서글픈 악순환. 자영업자 570만이 유지되는 이유다.

IMF 외환위기 이후 역대 정부는 자영업자를 위한 숱한 대책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대책들은 이름만 달리할 뿐 땜질식 대출 제도가 대부분이었다. 임대 제도의 개선이나 골목 상권 보호책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어려울 때마다 대출 문턱을 낮추었으니 빚이 느는 건 당연한 결과다. 정부의 대책 없는 대책이 자영업자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을 정부나 정치권에게만 물을 수도 없는 일이다.

14년 전 여의도에서 솥단지를 던지며 싸웠던 투쟁이, 7년 전 10만이 모였던 잠실종합운동장 투쟁이, 올바른 요구안을 가지는 투쟁이었다면, 사탕발림 대출 권유에 무너지지 않는 투쟁이었다면, 지금 알바생보다 못하다는 자영업자의 처지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장선상에서 이번 솥단지 시위에서 최저임금 제도개선을 내건 것이 합리적이고 모든 국민들에게 박수받을 요구인가 한 번쯤 되짚어 볼 일이다.

자영업자가 살만한 세상이 있었던가?

최저임금 인상에 화가 난 소상공인들 전국 소상공인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에 참석해 자영업자 생존권을 위협하는 최저임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솥단지와 냄비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최저임금 인상에 화가 난 소상공인들 전국 소상공인들이 8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 제도개선 촉구 국민대회’에 참석해 자영업자 생존권을 위협하는 최저임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솥단지와 냄비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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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상승과 기한 연장 불가는 자영업자에게 가장 무서운 일 중 하나다. 상권이 조금만 활성화되어도 건물주는 온갖 구실을 만들어 임대료는 올리거나 재계약을 기피한다. '궁중족발 사태'라고 일컬어지는 임차인의 건물주 폭행사건도 월 297만 원이던 임대료를 1200만 원으로 올린 게 발단이 됐다.

보증금마저 3천만 원에서 1억으로 올리는 건물주의 횡포 앞에서 법은 건물주 편이었다. 장사가 잘 되고 상권이 살아나면 자영업자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건물주가 돈을 버는 모순. 상가 임대 기간을 10년으로 늘리자는 상가법 개정안은 내놓았지만 자유한국당의 생트집으로 8월 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가장 첨예한 대립 전선이 형성된 편의점.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2012년 2만 5000개 수준이었던 편의점이 2018년 현재 4만 1000개로 늘었다. 골목의 구멍가게를 폐업시키면서 급성장한 편의점. 이제는 옆 편의점의 폐업에서 활로를 찾아야 할 만큼 궁한 처지가 됐다.

그러나 대기업 편의점 본사는 계속 출점을 강행하고 있고, 창업 5년이 지나지 않는 편의점의 폐업에는 감당 못 할 불이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과도한 경쟁을 막을 규제로는 250m 이내에 동일 브랜드의 새로운 점포를 내지 않는다는 자율규정밖에 없다.

온라인 시장의 급성장도 지역 상권과 자영업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최저가의 노출만이 살아남는 구조이다 보니 10원의 마진을 놓고 전쟁터처럼 가격 경쟁을 하는 곳이 온라인 시장이다. 지역 상인이나 자본이 없는 소상공인들은 애초에 끼어들 수 없는 구조다. 카드 수수료도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비해 차별받는다. 생산 유통 판매 모든 분야에서 대기업은 자본의 힘으로 우위를 점해서, 분식점 하나조차도 브랜드를 달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싸움을 하려면 알바생과 어깨를 걸어라

자영업자가 정부에 개선을 요구하고 싸워야 할 것들은 이런 것이다. 조물주보다 더 높다는 건물주의 횡포가 만연하는 한, 편의점 본사만 배불리는 과다 출점이 제어되지 않는 한, 온라인 시장이 지역 상권, 골목 시장을 초토화시키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자영업자는 건물주와 대기업, 대자본의 먹잇감일 뿐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가 다 죽게 생겼다는 절규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최저임금 인상이 철회된다고 해도, 아니 문재인 정부 이전의 최저임금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자영업자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구석은 어디에도 없다.

솥단지를 던져야 할 처지에 내몰린 자영업자. 그러나 최저임금 제도개선의 요구는 본질을 해결할 수 있는 요구가 아니다. 차라리 편의점 알바생이나 식당 종업원들과 손 맞잡고 거리로 나와 임대비 가맹비 때문에 알바생 월급은 물론 내 밥벌이도 못하게 생겼다고 정부와 정치권에 대책을 요구하는 게 올바른 투쟁이다. 솥단지를 내던지는 생존권적 투쟁이 기껏 알바생과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눈총을 받아서야 투쟁의 명분도 승산도 없다.

9월 3일,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연대는 최저임금 개선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규모 집회를 순차적으로 개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솥단지를 내던져야 하는 절박한 처지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주장에 동의하기는 힘들다.

소득주도 성장. 노동자와 더불어 자영업자의 호주머니를 채워 내수시장을 살리자는 정책이다. 건물주와 본사의 갑질에 함구하고 대기업의 시장 잠식을 방관하면서 알바생의 최저임금을 줄여 살길을 찾겠다는 솥단지 투쟁. 나 또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영업자지만 이런 투쟁은 동의되지 않는다. 제 발등 제가 찍은 어리석음마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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