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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은 3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휴서울이동노동자합정쉼터에서 배달라이더들의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환경 실태조사 발표하는 라이더유니온 라이더유니온은 3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휴서울이동노동자합정쉼터에서 배달라이더들의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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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쏟아졌던 지난 8월 29일 맥도날드 라이더 김덕영(42)씨는 고지대 언덕길에 있었다. 미친듯이 내려오는 물로 이미 오토바이 브레이크는 먹통이었다. 매장에 전화를 걸어 "비 그칠 때까지만 잠시 피해있겠다"라고 했다. 5분 뒤 돌아온 매장의 답변은 "오토바이 놓고 걸어서 들어와라"였다.

휴대폰에는 '서울 지역 호우경보'를 알리는 재난 문자 메시지가 수차례 왔다. 비옷을 입은 채로 빗속을 15~20분 정도 걸어 매장에 도착했다. 오후 8시경이었다. 퇴근하려면 5시간이나 남았지만 조퇴하라고 했다. 휴업 수당이 없는 그에게 그 날은 비만 쫄딱 맞고 허탕친 날이었다.

이처럼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들은 제대로 된 장비와 수당도 없이 폭염·폭우 속에서 일하고 있다. 라이더유니온준비모임(이하 라이더유니온)은 3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서울이동노동자합정쉼터에서 '24개 업체 소속 라이더 노동환경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라이더유니온이 지난달 6일부터 29일까지 라이더 5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폭우나 폭설 시에도 배달을 했다고 답한 라이더들은 30.9%(17명)에 달했다. 라이더유니온에 따르면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배달의민족 등 대형 업체들은 배달 제한을 할 때가 있지만, 배달 대행업체들은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대형 업체들의 배달 제한 또한 '소극적'이다. 라이더 김덕영씨는 "기상악화로 배달지역을 축소할 수 있다는 매뉴얼이 있기는 하다"라면서 "하지만 매출 등을 이유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김씨는 "라이더들이 '오늘은 배달하기 힘든 날씨다'라고 말해 배달 지역을 축소할 때도 있다"라며 "하지만 휴업수당도 없고 배달 스케줄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라이더들이 말도 못 꺼내는 경우가 많다"라고 밝혔다. 장비도 부족하다. 김씨는 "비옷, 장화 등이 모자른 경우가 많다"라며 "우천 시 힘든 점이 많다"라고 토로했다.

그렇게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배달로 내몰리지만 수당을 주는 곳도 많지 않다. 라이더유니온에 따르면 우천·우설시 맥도날드와 롯데리아가 1건당 100원을 준다. 버거킹은 그마저도 없다.

매장별 상이한 폭염·황사 대비..."사장님 호의에 기대고 있다"

아스팔트 위에서 1분도 버티기 힘들 정도의 불볕더위에도 대비책은 전무했다. 폭염 시 배달을 제한하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햇볕에 많이 노출되면 어지러움증, 탈수 등 증세가 나타날 수 있지만 토시, 아이스 스카프 등 폭염용 물품을 받고 있다고 답한 이들은 13명(23.6%)에 그쳤다.

라이더유니온 준비모임에서 활동 중인 맥도날드 라이더 박정훈씨는 "폭염용 물품을 지급 받지 못 한 분들은 대부분 배달대행업체 소속이다"라며 "지급받는 경우도 라이더들이 달라고 했을 때 받은 것이다"라고 했다. 박씨는 "본사 차원의 지침이 있다고 하더라도 매장에서 실제로 집행되는지는 정확하게 감독하고 있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폭염 수당을 받고 있다고 답한 이들은 7.2%(4명)였다. 하지만 이는 정확한 수치도 아니다. 박씨는 "업체 차원의 일괄 지급이 아니다"라며 "사장님의 호의로, 본사 차원의 단발성인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배달의민족에서는 지난 8월 4일, 5일 양일간 단발적으로 300원의 폭염수당을 지급했다.

황사나 미세먼지도 마찬가지다. 2017년 한 해 동안 총 205회에 달하는 미세먼지 주의보와 경보가 발령됐다. 실외 노동자들에게 황사마스크는 '필수'임에도 황사마스크를 별도로 지급받았다고 답한 이들은 9%(5명)에 불과했다. 그러다보니 라이더들은 무방비로 황사와 미세먼지에 노출되거나 자비로 일회용 마스크를 산다. 황사마스크는 상대적으로 고가이기 때문에 한 번 사면 검게 변할 때까지 쓴다고 라이더들은 말했다.

이외에도 복장에 대한 고충도 토로했다. 맥도날드의 경우 상의는 여름용이 따로 나오지만 하의는 4계절 공용인 청바지를 입어야 한다. 유니폼이 있는 17개 업체 라이더 30명 중 절반 가량만 계절에 적합한 유니폼을 지급받고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는 여름에도 두꺼운 청바지를 입고 배달해야 하는 것이다.

식사 또한 라이더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라이더유니온 조사결과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등 3개 햄버거 업체는 식대 대신 햄버거를 지급한다. 일정 금액 이하의 햄버거 중 골라 먹게끔 하는 것이다. 주5일 내내 햄버거만 먹어야 하는 것이다.

이마저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먹을 시간이 없다는 게 라이더들의 토로다. 맥도날드 라이더 김씨는 "사람은 없는데 주문이 물밀듯 들어온다"라며 "매출 때문에 들어오는 주문을 다 받으니 밥 먹을 시간도 없다"라고 했다. 허기에 지쳤던 그는 결국 집 근처로 배달 갔다가 몰래 집으로 달려간 적도 있다. 밥 여덟 숟가락에 김 한 장씩을 얹어 흡입하듯 먹고 돌아왔다. 먹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이더유니온, 10대 요구안 발표

라이더유니온은 "동일 업체 라이더 중에서도 물품, 수당 지급에 있어서 차이가 있음이 확인됐다"라며 "라이더들의 노동조건이 개별 라이더 경력과 관리자와의 교섭력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도 "4차산업혁명, 플랫폼 노동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신기술로 위험의 외주화를 감당하고 있는 이들이다"라며 "하지만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조사나 지원방안 등이 마련되고 있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날씨 수당 지급, 기상 악화 시 작업 거부권 도입, 공용으로 지급되고 있는 안전장비의 개인 지급, 황사 방지용 마스크 지급, 방한용품 지급, 계절별 유니폼 제공, 식대 지급, 산재보험 의무가입, 정부의 배달업 지침 제정 등을 요구했다.

태그:#라이더유니온, #배달 라이더,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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