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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비혼, 돌아온 비혼, 자발적 비혼 등 비혼들이 많아진 요즘, 그동안 ‘비혼’이라는 이유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조금 더 또렷하고 친절하게 비혼의 목소리를 내고자 용기를 낸 40대 비혼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아, 이제 돈을 안 벌어도 되겠구나."

<사는 게 뭐라고>를 쓴 일본 작가 사노 요코가 66세에 암에 걸려서 시한부 선고를 받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안도했다고 한다. 그녀다운 솔직함에 빵 터지면서도 한편으론, 밥벌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인가 싶어 위로가 되었다.

2년 전, 방송작가 일을 하다가 잘리고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포기했었다. 그러다 기적처럼 다시 일을 시작한 요즘.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아니 실수만이라도 하지 않았음 하는 마음으로 완전 쫄보가 되어 몇 주를 보냈다.

예전엔 낯선 일도, 많은 일도 별 두려움이 없었는데 요즘은 솔직히 무섭다. 젊을 때와는 다른 기대와 시선에 대한 부담이 있기도 하지만, 더 솔직히 말하면 예전 같지 않음을 누구보다 내 자신이 잘 알아서이다.

주어진 걸 해내려면 업데이트를 해줘야만 하는데, 예전엔 흥미롭던 이 과정이 부담스러워진 게 가끔은 좀 서글프다. 산 지 4년이 넘어서 느리고 자꾸 업데이트 압박을 받는 내 구형 핸드폰이 된 느낌이랄까.

방송 일을 놓은 게 2년이나 지났으니 업데이트 해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간 나이까지 들어서 더 느려졌다. 마음은 LTE급으로 업데이트를 하고 싶은데, 현실은 PC통신급이다. 내가 생각해도 속이 터진다.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눈치 주는 사람은 없는데, 버벅거리거나 못 쫓아갈 때면 스스로 언짢아지고 의기소침해진다. 어차피 한 번 접었던 일이니 다시 못하게 되더라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데도, 가끔은 이 피곤한 생활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먹고사니즘에 늘 발목을 붙잡혀버린다.

밥을 짓는다는 것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책표지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책표지
ⓒ 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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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모으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건 허황된 꿈이다. 나는 마음이 지극히 평온하다. 지극히 자유롭고. 왜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예상치 못한 결론에 도달했다. 날 자유롭게 해 준 건 돈도 아니고 자산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도 아니었다. 바로 요리였다.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탈 때 읽어서였을까. 아니면 저자가 아사히 신문 기자 출신의 프리랜서로 내 나이 또래의 혼자 사는 비혼이어서였을까. 아무튼 이나가키 에미코가 쓴 책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말하는 요리는 대단한 게 아니다. 고작 한 끼당 식재료비 200엔(한화로 약 2000원)밖에 안 드는 소박한 밥상이다. 그녀는 직접 요리하는 밥, 국, 채소절임이 전부인 이 밥상이 그리워서 집으로 뛰어간단다. 많은 돈과 노력을 쏟지 않아도 먹고 사는 일이 가능했다는, 최고의 맛을 찾았다는 그녀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그것들이 비싼 돈을 들여야만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고 한다.

먹방이니 맛집이니 레시피니 하는 정보들이 홍수를 이루는 상황에서, 이건 좀 다른 이야기였다. 좀 궁상스러울 거라는 선입견은 금물이다. 철저히 '기본'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저자가 다루는 것도 밥상의 메인이자 기본인 '밥'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밥을 짓는다는 건 너무나 복잡한 일이다. 변수가 너무 많아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원인을 파악하는 게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래서 매번 울다 웃다 한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열심히 머리를 굴리게 되니까. 그건 꽤 재밌는 일이다. 모든 게 편리한 세상에 살면서 실패할 기회를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실패란 귀한 경험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분명 밥 짓는 싱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 속에 내 현재가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난 여전히 실패가 싫었다. 몇 번을 실패했으면 무뎌질만도 한데, '이번엔' 실패하기 싫은 마음이 더 컸던 모양이다. 이렇게 업데이트가 느린데, 새로운 일을 하기란 더 어려울 테고, 더구나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들어가기란 또 얼마나 좁은 바늘구멍일 텐가.

내가 내 생계를 책임지지 못할까봐, 또 '지금보다 조금 더' 모으지 못하면 미래를 보장받지 못할까봐 바들거리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작가는 실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밥으로 다르게 제시한다.
예를 들어 된밥이 지어졌다고 치자. 그럼 일단 "와아~딱딱한 밥이 되었네!!"하고 감탄을 하는 거다. "볶음밥 재료가 생겼어!"하고. 애초에 '실패'라 부르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이름을 다시 붙이면 그만이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성공이냐 실패냐, 둘 중 하나로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가 않다.

매번 잘 된 밥을 짓고 싶고, 고실고실한 밥을 먹고 싶은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전기밥솥에 짓지 않는 이상, 밥은 늘 똑같이 되지 않는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없고, 늘 좋은 날만 계속되지도 않는다.

모두가 육수를 품고 있다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밥은 어떠해야 성공적으로 잘 지은 거라는 이분법적인 시각 말고, 그날의 상태에 따라 감탄하고 변주할 수 있는 유연함이었다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밥은 어떠해야 성공적으로 잘 지은 거라는 이분법적인 시각 말고, 그날의 상태에 따라 감탄하고 변주할 수 있는 유연함이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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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그날 지어진 밥의 종류에 따라 메뉴가 달라진다. 잘 지어진 햇밥 날엔 밥이 주인공이다. 반찬은 최소한으로, 밥을 마음껏 맛본다. 된밥 날은 볶음밥을 먹는다....퍼석퍼석하다 못해 딱딱해지거나, 반대로 물기가 너무 많으면 '죽 끓이기 좋은 날', '물과 다시마와 채소와 유부를 적당히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된장을 넣으면 된다. 이 모든 종류의 밥이 참 맛있다. 그러고 보면 밥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궤도 수정을 허락하고 모든 걸 다 포용해 주는, 정말이지 넉넉한 음식이다.
궤도 수정이라니. 참 산뜻하고 에너지 넘치는 말이다. 매일 밥을 짓는 마음으로 일을 대하면 탈이 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하루'라는 일상은 나한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즐겁게 궤도수정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기회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하루는 어느 날은 된밥 같을 수도, 어떤 날은 퍼석거릴 수도 있다. 또 어느 날은 아주 찰질 수도 있다. 내게 가장 필요한 건, 밥은 어떠해야 성공적으로 잘 지은 거라는 이분법적인 시각 말고, 그날의 상태에 따라 감탄하고 변주할 수 있는 유연함이었다.
만물이 육수를 품고 있다. 결국 놀랍게도 가다랑어포가 아니더라도 모든 식재료에 감칠맛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가다랑어포와 다시마를 사용해야 '육수'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감칠맛은 일부 엘리트 식재료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종류와 정도가 다를 뿐, 모든 식재료에는 저마다의 감칠맛이 있었다. 어쩌면 사람도 그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저자는 내 입에 밥을 넣는 일, 먹고 사는 일은 어쩌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이 가혹한 세상을 즐겁게 헤쳐 나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건 모두 착각일지 모른다고, 그러니까 인생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난 이런 자신감이 그녀만의 밥상에서 나온다고 여겨진다. 최소한의 것으로 꼭 필요한 것만 하는 '기본'에 집중하고 충실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반찬이나 맛집의 요리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나도 그런 음식들을 좋아하고 즐긴다. 다만, 삶에서 가장 단단해야 할 기본에 얼마만큼 충실하고 집중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것, 좋다고 하는 것, 가봤다고 하는 곳, 그런 것들을 쫓으면서 남들 해 본 것을 해보고 먹어보고 가봤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내 경우에는 그랬다. 그래서 남들처럼 못하면 서둘러 실패했다 규정하고 걱정 근심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다녔다. 그 무게만큼 즐거움이나 행복의 빈도는 줄어들었다.

그래서 가장 감탄했던 것이 저자가 식사 때마다 느끼는 행복이었다. '고작' 밥 차려 먹는 것에 '유난스러운' 즐거움을 느끼는 그녀가 전혀 오버스럽지 않다. '이 여자, 진짜 즐겁고 행복한가 봐'하는 느낌이 지면 밖까지 팔딱거리는데, 어느 사이엔가 전염되서 나도 웃고 있는 걸 보면 진짜다. 하긴 즐기고 만족하는 삶에 어떤 훼방꾼인들 배겨낼 수 있을까.

힘들고 지칠 때, 어설픈 위로보다 그저 "밥 먹자"는 한 마디가 힘이 되는 것처럼, 이 책이 그렇다. 그래서 난 불안하거나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습관처럼 이 책을 찾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금방망이처럼 낙관을 만들어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미덕으로 꼽고 싶은 것도 바로 그 점이다. 낙관이 만사의 답이 될 순 없지만, 밥벌이에 지치고 용기가 필요할 때 이 책을 읽고 나면 암 투병 중일 때에도 낙관적 명랑함을 잃지 않았던 사노 요코의 말이 잠언처럼 마음에 남는다는 것.

"인생은 번거롭지만 먹고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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