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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대사의 교역 물품 중 황금보다 비싼 값에 거래되는 가장 고가의 상품이었다고 전해지는 황칠(도료)에 관한 책을 지역 향토사학자가 발간해 관심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시인이자 전남 완도의 향토사학자인 배철지씨다.

그는 책 <완도황칠>의 서두에서 "이 책은 황칠의 종가가 왜 완도인가에 관해서 우선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완도산 황칠은 다른 지역에서 자란 황칠과는 다른 물질이 더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완도가 황칠의 종가인지를 밝혀야할 필요가 있다 느꼈다"면서 다음으로는 "이제는 황칠 도료도 잊혀져가고 없지만 그래도 황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인공으로 만든 어떤 도료도 황칠 만큼의 광택과 보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짝을 찾을 수 없으리만큼 우수한 이 나라의 유산임이 분명하고 그래서 되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느껴서이다."라고 발간 이유를 밝혔다.

책 <완도황칠>은 모두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에서는 '황칠나무란' 소제목으로 황칠나무의 자생지, 역사기록 속의 황칠나무, 황칠의 원산지는 어디일까 에서 왜 완도가 황칠의 본고장인지 사실적 역사증거와 예로부터 전해오는 여러 역사서와 의학서 등 여러 역사 기록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배씨는 또한 "일제강점기 이후로 황칠은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졌고 잊혀질 뻔 했으나 세계적인 산삼 연구의 권위자인 한영채 박사가 몽골에 가서 들은 징기스칸이 걸쳤던 금빛이 번쩍이는 갑옷과 마차와 천막에 칠한 것이 우리나라 남쪽의 섬에서 나는 황칠이라는 말을 듣고 완도에 와서 실체를 확인하고 학계에 이를 보고함으로써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고 역사에서 사라질 뻔한 황칠이 다시 우리 앞에 나서게 된 과정도 언급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후 보길도에 있던 전남대학교 연습림에서 황칠나무 시험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이어 받아서 선구적인 지역 연구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황칠나무의 식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식재만 했을 뿐 황칠나무를 이용한 제품의 개발이나 황칠 도료의 생산과 같은 산업화의 길은 어려웠고 그 와중에 장흥에 황칠나무의 생산연구단지라 할 수 있는 전남생물산업진흥원 천연자원연구센터가 설립된 반면, 완도군은 본격적인 연구 시작 자체가 어려웠었다.

하지만 완도의 일부 농가에서는 잎과 가지와 뿌를 잘게 썰거나 분쇄해서 건조한 후에 팔거나 황칠나무를 물에 끓이는 방법으로 얻어진 생산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2장에서는 완도가 왜 황칠의 주산지인지 지질과 지형, 해풍과 기온, 함께 자라는 나무들을 통해 밝히고 있으며, 제3장과 제4장은 황칠나무의 성분과 도료로 사용되는 황칠나무 수지액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제5장에서는 황칠나무 재배 현황과 환경 등에 대해, 마지막 제6장에서는 지금까지의 특허와 연구논문에 대해 정리해 놓았다. 

배철지씨는 완도를 대표하는 민간향토사학자로 완도가 가진 자원과 역사에 대해 진실을 알리고자 정진하고 있다. 그는 완도 상왕산 가시나무와 황칠나무에 주목하여 지금도 자료를 분석하고 연구 중이며, 2017년에는 붉가시나무로 만든 대장군전을 재현하여 세상에 이목을 끌었다. 또한 황칠로는 황칠도료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2017.12.29. 등록)를 가지고 있으며 완도에서 목공방을 운영하면서 붉가시나무와 황칠의 자원화에 온 정성을 다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완도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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