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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굼 백화점 한때 이곳이 코민테른의 본거지였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 모스크바 굼 백화점 한때 이곳이 코민테른의 본거지였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 강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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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크렘린, 푸틴, 불곰 그리고 '공산주의'가 빠지지 않을 것 같다. 러시아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적백내전을 거쳐 세계 최초로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했지만 30여 년 전을 기점으로 완전히 자본주의로 돌아선, 자본주의 국가다. 그리고 오늘날 모스크바는 코민테른의 심장에서 세계 4위 규모의 거대한 재화 소비 시스템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붉은 광장에는 세계 최고(最古)이자 여전히 최고 수준의 백화점인 '굼'백화점이 있고, 명품 상점가를 거니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옷차림의 사람들이 있다. 그야말로 '사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광경이다.

<사치와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베르너 좀바르트는 자본주의의 탄생과 성장에 막스 베버가 주장했던 '근면', '성실'과 같은 금욕적 특성 대신에 '사치' 그리고 '성애'와 같은 인간의 욕망들이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곳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사치란 무엇일까? 좀바르트는 "사치란, 필요한 것을 넘어서는 모든 소비"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때에만 명료해진다(그리고 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에서 '필요한 것'들만으로 최소화된 삶이 지속 가능한지, 가치 있는지 직접 실험하기 위해 월든 호숫가에서 3년간 생활했다). 필요성은 객관적으로 측정되기 어렵고, 생리적인 필요와 문화적인 필요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문화권마다 '어떤 것'에 대한 필요성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패션이 예술의 영역에 있는지, 사치와 자본주의의 영역에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떤 문화권에서 평균 수준을 넘는 사치품이 발생하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원동력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개인의 삶의 쓸데없는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데 쓰이는 사치'라고 좀바르트는 이야기한다. 가령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행했던 '금 젖병'처럼 '평균 이상의 사치'이자 '쓸데없는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데 쓰이는 사치'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오늘날 모스크바에서 '평균 수준 이상의 사치'와 '성애'라는 두 가지 욕망이 결합된 '패션'은 자본주의를 먹여 살리는 강력한 힘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형형색색의 옷차림을 한 채 길거리를 가득 메운 여성들을 보면, 비슷한 옷차림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당당하게 육체를 드러내며, 노골적으로 성을 강조한다. 천과 디자인, 그러니까 재료와 형태 모두를 추구하는 진정 사치스러운 패션이다.
 
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에서 이러한 사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미의 여신 대신 유행의 여신을 경배한다"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흥미로운 까닭은, 오늘날 패션은 정말로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패션은 '예술'대신 '사치와 자본주의'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 시즌 새로운 유행, 새로운 패션의 샘물이 파리와 뉴욕의 발원지(發源地)로부터 내려오기 시작하고, 이 유행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가 '오빠'와 '아재'를 나눈다.  

그런데 한 걸음 물러나 패션을 살펴보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행이 돌고 돈다. 후줄근한 냉장고 바지가 패션 아이템이 되는가 하면, '복고 열풍'이라면서 70-80년대 소품들이 멋스럽게 소개된다. 몇 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촌스러움의 상징으로 돌아갈 것들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들은 패션을 옹호할 때 '개성', '자아실현'을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의 옷차림이 보여주는 개성은 해당 시즌의 트렌드를 얼마나 이해했는지, 얼마나 잘 따라오고 있는지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특정 가치관에 바탕을 두는 대신, 해당 시즌에 프랑스나 이탈리아, 뉴욕에서 '이것이 예쁘다'라고 정해주는 것을 따르기에 급급하다.  

이번 여름에 GUCCI가 출시한 '수영하면 안 되는'수영복은 어떤가. 수영하면 안 되는 수영복을 도대체 누가 살까 싶었지만 가수 선미, 화사 등 연예인들이 앞장서 소비하고, 대중이 이를 뒤따르며 유행을 이끌어냈다. 옛날에 유행했던 노스페이스, 네파의 뚱뚱하고 시커먼 패딩들과 찢어진 청바지 패션은 어떤가. 한 때는 없는 사람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며 놀림을 받을 정도였지만, 오늘날 이 의복들을 입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패션은 정말로 미(美)와 개성, 자아를 표현하고 있을까?

우리는 미(美)의 여신이 아니라 유행의 여신을 경배한다는 소로우의 주장은 그래서 흥미롭다.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본주의가 있는 곳에는 똑같은 문제가 있다. 지식을 추구한다는 과학도 마찬가지이다. 희귀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는 연구실과 아주 조금 더 나은 효능의 보톡스를 개발하는 기업 연구소 가운데 이력서로 붐비는 곳은 어디일까? 투자자들이 줄을 설 곳은 불 보듯 뻔하다.

데이비드 소로우가 <월든>을 통해 비판하고자 했던 것도 이와 같다. 오션월드를 가기 위해선 래시가드가 있어야 하고 휴양지를 가기 전에는 비키니와 비치웨어를 준비해야 한다. 여행에서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해 새 옷을 준비하고, 그걸 다 넣느라 더 큰 캐리어를 사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것들이 당연해졌다. 미디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 광고 플랫폼에서 그것들이 당연하다고 '이야기 되기'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오로지 재화(財貨)의 흐름만 중요할 뿐, 재화를 순환시키는 데 소모되는 '인간', '자원', '환경'등은 중요하지 않다. 물자가 더 이상 부족하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자원의 희소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야 하고, 여기에 패션이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자본주의의 시스템 속으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패션, 사치)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패션은 사람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재화의 흐름을 더욱 거대하고 빠르게 만들기 위한 장치일까? 우리는 어디에 재화를 소비하고, 무엇을 위해 노동하는가? "예술 장르"와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사이, 패션의 자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돈으로는 쓸데없이 많은 것들밖에 살 수 없다"던 소로의 말에 진한 여운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bravesound#articles에서 더 많은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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