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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암초 녹색어머니회 회원이 자원봉사로 응암동 수해 피해자 세대를 찾아 고여 있는 물을 퍼내고 있다.
 응암초 녹색어머니회 회원이 자원봉사로 응암동 수해 피해자 세대를 찾아 고여 있는 물을 퍼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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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염에 뒤이은 예측불허의 태풍 속에 기상청이 국민적 질타를 받았다. 제19호 태풍 솔릭의 상륙 지점을 전남으로 예측했다가 충남->전북->전남으로 수정하는 혼선을 보였다. 또 태풍이 상륙한 뒤의 내륙 관통 경로도 잘못 예보해 혼란을 일으켰다.

게릴라성 집중 호우가 쏟아진 8월 28일에는 뒤늦은 호우경보로 빈축을 샀다. 이날 오후 7시 40분 서울 지역에 호우경보를 내렸지만, 이미 1~2시간 전부터 호우가 쏟아지던 중이었다. 이날 서울 중랑천 연변의 동부간선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침수되면서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까지 있었다.

이렇게 결정적 순간들에 제 역할을 못 하자, 비판이 물밀 듯 쏟아졌다. '예보'가 아니라 '중계'를 하는 것 아니냐는 조롱까지 나왔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청원글이 올라왔고, 기상청을 못맞청·오보청·구라청으로 지칭하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폭염에 태풍까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예보까지 제대로 나오지 않자 '기상청을 없애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폭염에 태풍까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예보까지 제대로 나오지 않자 '기상청을 없애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 국민청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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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했을 텐데도 이런 비판을 받게 되니, 기상청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하지만, 옛날에는 기상청 직원들이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과중하다 싶은 처벌을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농업경제 시대에는 농작물 피해만으로도 경제 전체가 무너질 수 있었으므로, 기상 오보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지금보다 훨씬 더했다. 그래서 처벌도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경국대전>과 더불어 법전 기능을 수행한 법전이 있다. 명나라 법률을 조선 실정에 맞게 '살짝' 변형시킨 <대명률직해>다. 여기에 '천문현상을 잘못 점친 경우'에 관한 실점천상(失占天象) 조항이 있었다. 옛날에는 '예측하다'란 뜻으로 점칠 점(占)자를 많이 사용했다. 실점천상 조항은 지금의 기상청인 서운관이 기후를 잘못 점쳤을 경우에 대한 것이었다.

"서운관 임원이 기후를 살펴보는 일에서 실수하고 착오하여 잘못 보고한 경우에는 장형(곤장) 60대에 처한다."

실제로는 장형보다 상급인 유배형을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법전 상으로는 위와 같았다. 그런데 곤장 60대를 '제대로' 맞으면 웬만한 사람은 죽을 수도 있었다. 형벌을 집행하는 형리가 서운관 직원에 대해 호의적이라 힘차게 내리치는 시늉만 한다면 모르지만, 형리가 서운관을 '못맞관·오보관·구라관'으로 생각해 악감정을 갖고 있다면 그대로 숨질 수도 있었다. 옛날 사람들이 기상 오보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심지어, 기상 오보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경우에도 서운관 직원을 처벌했다. 태조 이성계도 이 점에서는 관용을 두지 않았다.

태조 정권 말기인 1398년이었다. 음력으로 태조 7년 4월 17일 자(양력 1398년 5월 3일 자) <태조실록>에 따르면, 서운관 주부인 김서(金恕)가 '월식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보를 내놓았다. 관행대로 '언제 월식이 일어나 언제 끝날 것'이라고 예고했을 것이다.

과학지식이 지금보다 덜 축적됐던 당시에는, 월식이나 일식이 벌어지면 민심이 동요할 수도 있었다. 이를 막고자 조정에서는 거국적 의식을 거행했다. 월식 예보가 나오면 지방에 긴급 통지를 보내는 한편, 궁궐 서쪽 사직단에서 북을 쳐서 백성들에게 알렸다. 예고 없이 월식이 닥쳤을 때의 민심 동요를 차단하기 위한 예방 조처였다. 그런 다음, 임금과 신하들이 청사 밖으로 나와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월식이 끝날 때까지 그랬다.

지금이나 그때나 정치인들은 항상 '유권자'를 의식하며 퍼포먼스를 벌인다. 옛날에도 이런 퍼포먼스를 하는 주목적은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조정이 월식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함이었다.

북까지 쳤는데 감감무소식... 체면 깎인 이성계의 '격노'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 사직공원에 있는 사직단.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 사직공원에 있는 사직단.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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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에 월식을 예고하고 사직단에서 북까지 쳐댔다. 임금과 신하들이 흰 예복까지 입고 소동을 벌였다. 그랬으므로, 정해진 시각에 김서의 예보대로 월식이 일어나야만 했다. 안 일어나면 이성계와 조정의 체면이 깎일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이 <태조실록>에 소개된 것은 그 예보가 틀렸기 때문이다. 예보와 달리 월식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끝내 월식이 일어나지 않았다(而卒不食)"고 한 것을 보면, 월식이 끝날 것으로 예정된 시각이 상당히 경과한 뒤에도 이성계와 신하들이 밖에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렸던 모양이다.

법령에 따라 조정에서는 처벌 준비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성계는 마음이 너무 급했다. 김서의 서(恕)는 '용서하다'란 의미이지만, 이성계는 그가 용서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신하들을 상대로 김서의 죄목을 보고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며 호통을 쳐댔다. 처벌에 대한 건의가 빨리 들어오지 않아 화가 난 것이다. 보고하지 않는 사람도 김서와 다를 바 없다며 이성계는 격분했다. 결국 김서는 법대로 처벌을 받았다.

이런 일이 어쩌다 한 번 있는 게 아니었다. 서운관에서 중대 오보를 낼 때마다 처벌 여부가 논의됐다. 태종 13년 1월 1일자(1413년 2월 1일자) <태종실록>에 따르면, 이성계의 아들인 태종 이방원 때는 일식이 예보된 시각보다 15분 일찍 끝났다는 이유로 서운관 직원 황사우에 대한 처벌이 논의됐다.

 임금에게 보고하는 신하. 경기도 파주시의 ‘율곡 이이 유적’에서 찍은 사진.
 임금에게 보고하는 신하. 경기도 파주시의 ‘율곡 이이 유적’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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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일식은 정오가 좀 지난 12시 45분부터 3시 30분에 끝났다. 황사우는 3시 45분에 끝날 거라고 예보했다. 이 정도면 거의 맞춘 거나 진배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15분 일찍 끝났다는 이유로 처벌 문제가 공론화됐다. 15분 늦게 끝난 것도 아니고 일찍 끝났는데도 그랬다. 15분 오차 때문에 조정의 공신력에 미세하나마 흠집이 생겼으니 처벌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처벌을 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15분 차이의 오보를 갖고도 조정에서 회의를 열었다는 사실은 그 시대 사람들이 기상 예보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잘 보여준다. 오늘날보다 더 중시하면 했지, 덜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옛날 사람들이 기상 오보를 훨씬 더 심각하게 다루었다. 옛날 기상청 직원들은 잘못 예보했다가 곤장 60대를 맞고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기후를 예보해야 했다. 그러다가 실수하면, 과중한 처벌도 달게 받아들였다. 지금의 기상청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일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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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