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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공허한 십자가>
ⓒ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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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죽었다. 범인은 두 사람을 죽이고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가석방 된 남자였고 겨우 돈 몇 푼 훔치기 위해서 집에 침입, 그 집에 있던 딸을 목 졸라 살해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카하라, 그리고 그의 아내 사요코는 이 사건으로 삶이 망가진다.

두 사람은 범인이 사형을 받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사형을 선고 받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사형 이후 두 사람은 거리감을 느낀다. 아내는 친정에서 돌아온 뒤 이혼을 원한다 말한다. 두 사람은 끔찍한 일을 겪었고 모든 기력을 소진해 버렸다.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렇게 나카하라는 사요코를 떠나보낸다.

이후 동물화장시설을 운영하는 나카하라에게 11년 전 딸의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사야마가가 찾아온다. 형사는 이번에는 전 부인이 살해당했다고 말한다. 그녀를 죽인 사람은 사쿠조라는 남자로 돈이 필요해 길을 지나가던 사요코를 죽이고 지갑을 가지고 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진술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나카하라는 이혼 후 사요코가 출판사에서 일하며 쓴 기사를 보던 중 컴퓨터에 남아있던 파일인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글을 발견한다. 이 글에서 사요코는 말한다.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교도소에 갇혀 '공허한 십자가'를 짊어진 이들에게 과연 속죄라는 것이 있는지. 유족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인지. 적어도 '사형'이라는 그들의 마음을 달래줄 최소한의 장치마저 막는 것인지." 그는 이 글에서 사요코가 딸의 살인사건 때 살인범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를 인터뷰한 것을 발견하고 그를 찾아간다. 변호사는 나카하라에게 사요코한테 했던 말을 똑같이 내뱉는다.

'사형은 무력(無力)합니다'

사건 당시 범인은 상고를 취하하였다. 변호사는 더 싸워보자고 말했지만 범인은 포기했다. 처음에 그는 더 살아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며 애를 썼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그의 태도는 바뀌었다. 마치 '죽음'이 정해진 운명의 길인 양 행동했다. 고통이나 슬픔을 느낀 것이 아니다. 그저 운명이니까.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어도 학생이니 어쩔 수 없이 가는 마음처럼 그도 담담하게 사형대에 올라섰다. 그 어떠한 속죄의 감정도 없이. 변호사가 사형을 무력하다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사형은 범인에게 그 어떠한 고통이나 슬픔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에의 어머니는 딸을 위해 술집에서 일하며 필사적으로 돈을 모았고 건강이 악화되어 생을 마감했다. 하나에는 그 돈을 가지고 집을 나와 공장에 취직하였다. 도박꾼인 아버지 사쿠조는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고 하나에는 완벽하게 버림받았다 생각한다. 공장에서 미팅으로 남자를 만난 하나에는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모아둔 돈까지 다 빌려준다. 하지만 남자는 사기꾼이었고 빚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다. 자살 숲으로 유명한 아오키가하라에서 자살하기로 결심한 하나에는 후미야라는 남자를 만나고 그는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와 태도로 그녀의 자살을 막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자살을 생각했던 하나에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잘 대해준 남자인 후미야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는 뱃속의 아이까지 책임지겠다며 결혼을 말한다. 가족까지 속이며 하나에를 자신의 부인으로 받아들인 의사 후미야의 미스터리한 과거와 하나에의 아버지가 사요코의 살인범이 되며 얽히는 이야기는 죄책감과 관련되어 있다. 후미야는 과거 죄를 저질렀고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 하나에와 그 아이를 책임지기로 결심한다. 어머니도, 동생도 속이면서 홀로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작품의 결말부에서 하나에는 나카하라에게 이리 말한다.

'교도소에 들어가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어요......... 남편이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무겁고 무거운 십자가예요'

남편은 계속 속죄해 왔다고. 자신 같이 한심한 여자와 결혼을 했고, 아이의 아빠가 되어주었다고.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마저 보살펴 주었다고. 그때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은 죽었을 거라고. 아니, 그가 의사가 되지 못했다면 남편 덕분에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수많은 난치병 아이들이 치료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녀는 질문한다. 남편이 속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느냐고. 교도소에 가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아무런 무게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이 등에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는 너무나 무겁다. 그래서 당신에게, 아이를 살해당한 유족인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교도소에서 하루하루를 아무런 반성 없이 보내는 것과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인지 대답해 달라.

나카하라의 아내 사요코는 그녀의 글에서 말했다. 하루하루 교도소에서 공허한 십자가를 달고 사는 죄수들에게는 사형이 필요하다. 그것이 유족을 위한 최소한의 보답이다. 하지만 그게 옳은 길일까 라는 의문을 제시한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일본의 출소자의 재범확률은 높다. 결국 교도소는 '교화'라는 작업에 실패한 곳이다. 죄수들은 자신의 죄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그 안에서 시간을 때운다.

그렇다면 사형은 어떠할까? 죽음이란 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어차피 나가지도 못하는 거, 죽어도 상관 없지. 다들 죽는 거 뭐.' 범죄자가 이런 생각을 갖는 순간,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을 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무게는 공허해진다. 인간이 죄를 뉘우치지 않는 것, 회개와 속죄를 하지 않는다면 '사형'이란 제도는 무력한 제도다.

이 작품은 일본의 사법제도에 대한 모순과 동시에 죄의 무게에 대한 모순도 동시에 던지고 있다. 재판장에서 범인은 자신의 개심(改心)을 표할 수 있고, 속죄의 의도를 내비칠 수 있다. 반면 피해자의 유족들은 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제대로 내비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재판은 '범인'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그가 얼마나 뉘우치고 있는지, 바뀔 의도가 있는지가 재판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정작 중요하게 여겨야 될 피해자와 그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사요코는 이런 모순과 싸워왔다. 피해자들의 모임을 만들어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을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죄의 무게에 대한 모순에 대해서는 사요코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잘못했으면 다 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작품은 질문을 던진다. 어린 시절의 실수와 무지로 저지른 잘못이 인생을 완전히 파탄낼 만큼 큰 죗값을 치러야 하는 죄인지. 죄책감 때문에 부와 명예 대신 희생을 택한 후미야의 속죄가 교도소에서의 생활보다 무게가 떨어지는 것인지 말이다. 식사를 주지 않아 죽은 뱀의 시체를 가져와 '귀찮으니 빨리 처리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여자를 보며 나카하라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비롯한 일본 범죄추리작가의 작품들이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란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시대를 담아내는 것, 기교를 부리는 것, 세심한 묘사와 주제에 어울리는 사례를 가져오는 것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인간을 움직이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의 작품 <용의자 X의 헌신>이 큰 사랑을 받은 건 반전 때문만이 아니다. 한 고독한 수학자가 처음으로 '마음'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싶어 하는 그 '헌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형제도의 모순과 일본 사법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인간이 지녀야 하는 죄책감과 죄의 무게라는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브런치, 블로그와 루나글로벌스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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