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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群山)은 개항(1899)과 함께 도시의 밑그림이 그려진다. 모두 일제의 의도에 따른 것으로 1910년대에는 지금의 영화동, 장미동 일부 지역이 도심지였으나 1920년대 들어 월명산 아랫동네(월명동, 신흥동, 명산동 등)까지 확대된다. 이후 소화통(중앙로 2가)이 완공되는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지금의 원도심권 도시 모습을 갖추게 된다.

군산은 일제가 인구 5만 명을 목표로 개발했다. 따라서 새 도로가 개설될 때마다 우리의 고유 지명인 중정리(명산동 일대), 상정리(월명산 아래), 구영리(영화동 부근), 내영리(월명동 부근), 강변리(중앙로 1가), 거석리(신창동 부근), 큰샘거리(중앙로 2가) 등이 사라졌다. 그중 중정리, 상정리, 내영리, 거석리 등은 신흥리(신흥동)에 속한 마을이었다.

월명동은 근대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동네로 알려진다. 따라서 일본식 가옥인 장옥(나가야), 정옥(마찌야), 대규모 저택, 관공서 건물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일본과 서양 건축양식이 혼합된 대규모 저택이 다른 동네보다 많이 남아 있다. 지역이 부자촌이었고, 개발이 늦었던 게 그 이유다. 1930년대만 해도 '신도시 지역'이었던 것.

'5년 설득' 끝에 활짝 개방된 경로당

 진행자 설명을 듣는 골목길 투어 참여자들
 진행자 설명을 듣는 골목길 투어 참여자들
ⓒ 강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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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2018 군산 야행(夜行)' 행사 때 월명동 주민들 요청으로 이틀(8월 10~11일)에 걸쳐 골목길 투어를 진행했다. 투어 코스는 옛 군산여상 입구(구영1길)→ 히로스가옥→ 신흥동 근대마을 조성단지(공사 중)→ 동국사→ 명산동(일제강점기 유곽단지 우물) 등이었다. 첫날 참석자는 50여 명. 주민들이 환경개선 사업의 하나로 기획한 행사에 외지 관광객과 가족동반 참석자가 많아 놀라웠다.

골목길 투어 해설은 강연화 씨(월명동 주민)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이리저리 구부러진 골목길을 걸으면서 '달빛사랑 길', '달빛추억 길', '샘 길', '멍석 길', '아리랑 길' 등 추억어린 이름들이 최근 새롭게 붙여진 것도 알았다. 월명, 신흥동 일대는 지역에서 소득이 적은 편에 속했던 중동(仲洞)만큼이나 골목이 많은 동네로 알려진다.

행사가 끝나고 며칠 후 만난 강연화 씨는 "뜻을 같이하는 주민들이 노인들을 설득해 닫혀 있던 경로당도 개방했고, 이웃과의 소통을 위해 '달빛수다'란 모임도 만들었으며 공모를 통해 정감이 가는 골목 이름도 지었다. 그 후 대화도 부쩍 늘었고, 길에서 만나면 안부를 묻는 사례도 많아졌다"라며 그동안 겪은 일들을 소개했다.
 옛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월명동 골목길
 옛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월명동 골목길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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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에서 가장 큰 소득은 '소통'과 '어울림'이었다. 토박이 주민과 이주민 사이 갈등이 해소되고, 거리감을 두던 노인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지난 7월 경로당을 오픈했는데, 그 후 20~30대 젊은이들도 목마르면 들어가 시원한 물을 얻어 마시고, 우리도 새 음식을 만들면 가져다드린다. 반상회 모임도 파티도 그곳에서 갖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5년쯤 걸렸다.

동네에는 유리 조각이 듬성듬성 박힌 60~70년대 시멘트 담을 비롯해 아기자기한 골목도 많다. 그중 '아리랑 길'은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이 마치 무용수가 춤추는 것 같고, '멍석 길'은 집들이 옛 시골집 안마당 멍석처럼 둥그렇게 들어앉아 이름이 지어졌다. '샘 길'은 마당에 큰 우물이 남아 있고, 달빛사랑 길과 달빛추억 길은 청춘 남녀들이 데이트를 즐겼던 골목이어서 그렇게 지어졌다."


주민 고소현 씨는 "옛날에는 이웃인 신흥동이 가난한 달동네였고, 골목을 따라 피난민촌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 만들어진 좁은 골목들이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지역인 데다 정서적으로 오염이 덜 되어 수다 모임도 쉽게 만들어지고, 주민환경개선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됐지, 만약 땅값이 비싼 대로변이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했다.

"이웃과 소통 위해 노력하는 주민들 자랑스러워"
 배형원 군산시의회 의원
 배형원 군산시의회 의원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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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의회 배형원 의원(마 선거구)은 "경로당 오픈식 때 나도 참석했었는데, 군산에서 처음 주민이 주도해서 골목길 투어를 하는 등 환경개선사업을 열정적으로 펼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꽃길 가꾸기, 마을 청소, 골목에 이름 달기 등을 병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고맙기도 하고 존경심이 느껴지기도 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배 의원은 옛것을 익히고 새 것을 얻는다는 뜻의 고사성어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언급했다. 과거 '아프고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거나 부정하는 것보다 반성과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 그는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귀하게 여기면서 이웃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월명동 주민들이 자랑스럽다"라며 부근 명소도 소개했다.

"선조들의 삶과 애환이 깃든 골목에 새 이름을 붙였다는 말을 듣고 포커스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닥다리 옛것을 모두 버리고 현대식으로 바꾸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멍석 길'을 듣는 순간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이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그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봤던 추억이 떠올랐다.

월명동과 그 주변에는 120년 역사를 간직한 '월명공원'을 비롯해 '여미랑(구 고우당)' '옛 남조선전기주식회사 건물' '옛 조선운송주식회사 군산지점장 사택' '일제강점기 법원 및 검찰청 관사' '시장 관사(구 부윤 관사)' '일본식 절 동국사' '히로스가옥' 등 가꾸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이 많다. 영화촬영지였던 '초원사진관'과 '군산항쟁관'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군산항쟁관은 100여 년 된 일본식 2층 건축물로 얼마 전 아담한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20~30분 정도면 돌아볼 수 있다. 실내에 독립운동가들 사진을 비롯해 군산 3·5만세 운동, 미선공과 부두노동자 파업, 옥구 농민항쟁 소작쟁의, 일본 경찰의 끔찍한 고문 현장 등 조선인들의 저항과 일본인들의 잔혹상을 실감나게 재현해 놓아 숙연함이 더한다."

 군산항쟁관 전시실에 걸린 독립운동가 사진
 군산항쟁관 전시실에 걸린 독립운동가 사진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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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형원 시의원은 "군산은 아픈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170여 개 건축물이 일제 수탈의 실상과 당시 백성들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고스란히 전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변모했다. 특히 월명동 근대거리는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선조들의 저항과 치욕의 역사를 동시에 느껴볼 수 있는 근현대사 체험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매거진군산 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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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