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2017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07년 이후로 9~24세 청소년의 사망원인은 자살, 운수사고 순으로 나타난다. 보통 자살은 실패한 인생으로 귀결된다. 그 과정 속에 얼마나 힘든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한 탐구나 위안보다 자살 시점의 안타까움 또는 푸념으로 애도하거나 한탄한다.

사실 나도 아주 잠깐이지만 자살을 하면 이 어려움이 없어질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자살을 이행하는 이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하기란 어렵다. 특히 막 인생을 시작하는 청소년의 자살은 머리로는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오즈의 의류수거함>은 자살이나 자살에 이르는 어려움을 가진 등장인물의 이야기다. 청소년 문학이라고 하지만 청소년보다 어른이 더 많이 등장한다. 책은 청소년 문학이 상징하는 '성장'의 개념을 남녀노소로 확대했다. 인물의 삶과 캐릭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며 의류수거함을 중심으로 '자살'이라는 아픔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눈다.  
 
 오즈의 의류수거함 표지
 오즈의 의류수거함 표지
ⓒ 자음과 모음

관련사진보기



외고 입시에 실패한 도로시, 일반고등학교 진학 후 아빠의 눈치와 고단한 한국의 삶으로부터 해방하고자 호주 이민을 결심한다. 돈을 모으기 위해 밤이 되면 학교 밖 세상에서 의류수거함을 턴다.(도둑질을 의미함) 그 과정에서 친구 어른 '노숙자', '카스 삼촌', '마마', '마녀'를 만나게 된다. 의류수거함마다 번호를 붙인 도로시는 195번 의류수거함에서 한 사람의 사진첩, 상장, 일기장, 수첩을 발견한다. 이 수첩에는 <맥베스>의 구절을 인용한 유언으로 추정되는 글이 쓰여 있다.
 
"꺼져라, 꺼져라, 가냘픈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자기 시간에는 무대 위에서 장한 듯이 떠들어대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가련한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일장의 이야기, 소란으로 가득 찬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도로시는 어른 친구들과 상의한 끝에 <맥베스> 책에 편지를 써서 195번 의류수거함에 위에 둔다. 자살을 결심한 친구가 주변을 정리하며 무언가를 버리러 왔을 때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편지를 쓰고 며칠을 기다린다. 도로시의 손에 누군가의 목숨이 달렸다. 불과 몇 달 전, 외고 입시에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찍힐 때 자살을 결심했던 도로시는 '195'의 자살 결심에 간절하고도 절실한 마음이 생겼다.

책은 '195'와 도로시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어른 친구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풀어지면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의류수거함을 털다 만난 노숙자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지혜를 담당하는 허수아비 같았다.

그는 노숙자 이전에 수의사였다. 수의사 아내와 결혼해서 2년이 지났을 때 전국적으로 구제역 사건이 있었다. 구청에서 일했던 '노숙자'와 그의 아내는 커다랗고 순박한 눈을 껌벅이는 소에게 독극물 주사를 놓는 일을 했다. 그 일로 하여금 아내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동물에게 놓았던 독극물 주사를 자신의 팔뚝에 놓고 생을 마감했다. '노숙자'는 그 후로 구제역 가축 매립지를 돌며 위령제를 지낸다. 주인공 도로시는 우연히 위령제에 따라 나서면서 노숙자 아저씨의 삶을 듣게 된다.

카스 삼촌은 의류수거함을 터는 탈북자다. 북한은 출신 성분에 따라 삶이 결정되는데 인민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희망이 있는 남한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남한에서도 '돈'이라는 계급 때문에 괴로워한다.

마마는 건물 옥상에서 '숲'이라는 식당을 운영한다. 십 년 전 유능한 자동차 딜러였던 마마는 중학생 아들의 자살을 경험했다. 너무 바쁜 탓에 아들의 자살 징후도 느낄 수가 없었다. 장례 후 아들이 뛰어내린 건물 옥상에서 아들과 함께하고자 그곳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아들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한 밥을 모든 손님을 아들이라고 여기면서 손님들에게 대접한다.

도로시와 도로시의 친구들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195번 의류수거함 일기장의 주인공과 소통한다. 자살의 결과보다 자살을 결심하기까지의 고통스럽고 외로웠던 시간을 짐작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사는 195는 스스로를 '더미(Dummy, 챠량 충돌 테스트의 인형)'라고 생각한다. '195'는 중학교 내내 전교 1등을 차지했고, 아주 유명한 자사고에 진학했다. 그러나 짝사랑하게 된 친구의 자살로 충돌 테스트에서 심한 상처를 입었다. 퇴학 후 미국 유학에서 마약으로 세 번째 충돌 테스트에서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갈 용기를 잃는다. 한국에 돌아와서 의류수거함에 상장, 사진첩, 일기장을 버리면서 주변을 정리하다가 '의류수거함 털이범' 도로시와 우연히 편지로 소통하게 된다.

도로시는 195와 맥베스 책 속에 주고받는 편지로 소통하다가 직접 만나게 되고 함께하게 된다. 도로시와 195는 의류수거함을 터는 밤의 세계를 매일 여행하는 친구가 된 셈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연결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인위적이거나 조작적이지 않고 한두 개의 장치를 통해 이야기를 엮는 솜씨가 대단하다. 등장인물은 만나기 위한 공통점이 거의 없지만 그 만남조차 억지스럽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은 서사보다도 인물의 삶과 성격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과거에 힘들었던 삶을 살았던 인물과 현재에서 사라지고 싶은 인생을 사는 인물이 모두 다 소개되었을 때 등장인물에게 공통의 과제가 부여된다. 도로시가 밤의 세계를 누빌 때 만났던 할머니와 할머니의 손자들을 도와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 나눔은 의류수거함을 통해서다. 의류수거함의 최초의 목적이 입지 못한 옷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에서 시작했다면 그 옷들을 모아서 팔아 할머니의 집에 보일러를 고치는 일을 해도 될 것만 같다.

다 같이 모여 하나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할머니는 손자 둘을 키우는데 모든 게 다 떨어져 나가버린 집에서 살고 있다. 의류수거함을 털어 할머니를 도우려 한다.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지만 마마와 여러 사람의 십시일반으로 나눔은 실천된다. 도로시, 195, 어른 친구들은 의류수거함으로 시작된 인연과 갖은 일들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 자존감을 느낀다.
 
자존감은 포용이란 토양에서 자라나고 자존심은 경쟁이란 토양에서 자라나지. 자존감이 이타심이란 열매를 맺는 반면, 자존심은 이기심이란 열매를 맺어. (218쪽)

도로시와 함께한 '195'는 묘한 삶의 생동감을 느낀다. 생의 마감보다 마약 중독을 치료받고 새로운 생을 시작한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 나도 어느새 나눔을 바라보는 시선에 뭉클해지고, 자존감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언어적으로 보면 한 끗 차이지만 현실에서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진다. 경쟁이라는 교육시스템, 삶의 가치관을 시나브로 잊게 해주는 이 책을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다. 내 주변이 포용이란 토양으로 변하고 이타심이라는 열매를 맺는 날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추천한다.

묘하게 책 속에 푹 빠져 눈물 흘리고, 마음이 눈물에 적셔 따뜻함으로 촉촉해진다. 책장을 덮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덧붙이는 글 |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운영 중인 독서IN(www.readin.or.kr) 홈페이지 독서카페에 중복 게재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