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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술자리에서 일이 있었다. 국제 학생들과 다 같이 술 게임을 하는데, 'Never Have I Ever'라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진실게임 같은 거였다. 질문이 뭐였냐고? '야채로 자위해 본 사람', '자동차에서 섹스해 본 사람', '오늘 아침에도 대마초를 사용한 사람', '공공장소에서 섹스해 본 사람', '케미컬 마약(헤로인, 필로폰 등) 을 해 본 사람'같은 거였다. 말하자면 모든 질문이 섹스, 아니면 마약이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유럽에 도착한 지 일주일 된, 동양적 사고에 익숙한 동양인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처음 만난 유럽인들이 섹스와 마약 이야기만 하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내 경우에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성'을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서양철학의 발원지에서 어떻게 이렇게나 '본성'을 사랑할 수 있는지, 밤이면 덤불에서 섹스를 즐기는 이들이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상한 것인지, 이게 말로만 듣던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 차이인 건지 도통 종잡을 수 없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한 것은 며칠이 지난밤 술자리에서 네덜란드인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였다. '너희들은 덤불에서 섹스하는 게 자연스럽니?'라는 질문에 그는 배꼽을 잡으며 '그건 걔네들이 이상한 거야. 우리도 그런 애들이 제발 모텔에 가줬으면 좋겠어.'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그때 내가 만났던 '그들'이 좀 독특한 녀석들이었다는 걸, 많은 유럽 사람들이 그들과 같지는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그리고 이민자와 난민이 있는 많은 국가들이 이민자 정책으로 '통합(Integration)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이민자들이 고유의 문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유럽 문화를 존중하고, 차이를 이해하며 융화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으로, 이민자 고유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문화를 완전히 포기하도록 강제하는 '동화(Assimilation)' 와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유럽인 다운'이야기이다.

통합 정책은 어렵다. 이민자들에게 특히 어렵다. 어쩌면 더 강한 표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통합 정책은 '이민자들과 현지인들 모두 스스로'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민자들과 현지인들이 사이에 놓인 차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이 만나게 되는 파편적인 사건들이 '일반적 문화'인지, 아니면 '비상식적 문화'인지 구분하기 위해 서로의 문화권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덤불에서 섹스하는 유럽 남녀를 보고 '아, 여기선 다들 이렇게 섹스하는구나. 나도 덤불에서 섹스해야지'라거나(동화),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을 보고 '그래, 무슬림들은 여성에게 히잡을 강요하는 야만적이고 성차별적 족속들이구나. 상종을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배척)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서로의 문화권에 긴밀하게 연결되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서로의 문화권이 '하나의 덩어리(One mass)'로 이루어진 물질이 아니라 세대, 계층, 종교, 인종,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추상적이고 가변적인 개념(Abstract and Changeable concept)'이기 때문이다. 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에게 묻느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질문했던 네덜란드인 친구는 남아메리카 수리남에서 온 이민자 출신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남들과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던 네덜란드 문화가 사실은 '상식적이지 않은' 문화라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혼란과 오해와 오류를 겪으면서도 어쩌면 영원히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완전한 이해(complete understanding)'을 향해 끝없이 서로 다가가야 한다는 점에서, 통합 정책은 동화 정책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고, 더 정교해져야 한다. 가장 다양한 국가 출신 이민자들을 가진 네덜란드에서도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있는 과제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실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동남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한국의 이민자 정책이 완전히 박살난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천여 명 남짓한 피난민이 한국까지 흘러들어 오게 되면서, 한국에선 '외지인'을 둔 논란이 뜨겁다. 30여 년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살아왔음에도 '남의 일'로 제쳐 두었던 고민을 이제야 시작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고민을 이제야 시작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남의 일'로 여겨 왔던 6411번 버스 사람들, 추억이 깃든 동네에 머물고 싶었던 판자촌 사람들, 커피값만도 못한 시급을 받아 왔던 청년들에 대한 고민도 이제 시작하고 있다. 난민을 향한 시선에서, 한국사회를 부유(浮流)하는 '투명인간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의 관점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우리는 우리 선택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bravesound/186 라고 하는 개인 블로그에 작성하였습니다.



태그:#이민자, #난민, #유학생, #유럽,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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