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대한민국 600만 자영업자들의 '일맛'나는 세상을 꿈꾸며 '나는 자영업자다' 시즌2를 시작했습니다. 자영업을 하며 겪은 어떤 사연이든 대환영합니다. [편집자말]
한 거지가 길을 걷다 주머니를 주웠다. 주머니 안에는 백 원짜리 동전 하나가 들어있었다. 거지는 주머니에서 백 원을 꺼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백 원을 꺼내자마자 주머니에는 또 다른 백 원이 생겼다. 거지가 다시 백 원을 꺼내자 또 다른 백 원이, 그 백 원을 꺼내자 또 다른 백 원이 나타났다.

이건 마술 주머니잖아! 거지는 계속해서 주머니에서 백 원을 꺼내기 시작했다. 거지의 움막에는 백 원이 쌓여갔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았다. 시간이 아까웠다. 얼마 후 거지는 산더미 같이 쌓인 동전 위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백 원을 꺼내느라 먹지도 자지도 않은 탓이었다. 싸늘한 그의 손은 여전히 주머니 안에 있었다.

어릴 때 읽은 동화가 문득 생각났다. 동화에 그려진 산처럼 쌓인 동전 앞에서 죽어있는 거지의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어린아이가 읽기엔 지나치게 냉소적인 블랙코미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피식 웃었지만 뒷맛이 달지 않았다. 이거, 영락없이 내가 동화 속 거지가 아닌가. 나는 성산동에서 책 읽는 술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술집을 시작한 지 석 달째,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지 석 달째였다.

책 읽는 술집을 하게 된 건 공간을 쉐어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카페 겸 사무실을 하고 싶다던 친구는 낮과 밤을 나눠 공간을 나눠쓰자고 했다. 자신은 낮에 카페를 할 테니 밤엔 네가 써보라는 이야기였다. 보증금 없이 월세와 관리비를 절반만 내면 된다는 혹하는 제안과 함께였다. 술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을 워낙 좋아한 탓에 언젠가 책 읽는 바(Bar)를 내리라 호언했던 것도 결정을 내리는 데 한몫을 했다. 그래, 경험컬렉터로서 장사 한 번 안 해보면 쓰나! 그렇게 나는 동화 속 거지처럼 백 원이 나오는 주머니를 줍기로 했다.

 책 읽는 술집 낮섬
 책 읽는 술집 낮섬
ⓒ 박초롱

관련사진보기


부모님 보며 나는 자영업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그러나...

사실 자영업이 낯설진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교복 장사를 30년 동안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9시간 동안 꼬박 가게를 지켰다. 언니와 나의 여덟 번의 졸업식에 두 분 다 자리를 지킨 적은 없었다. 창고를 제외하면 열 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엄마 아빠는 그곳에서 미싱을 돌리고 커가는 아이들의 어깨와 다리를 쟀다. 도시락을 먹고 뚱뚱한 텔레비전을 보고 가게 한 켠에 세워두는 낚시의자에서 낮잠을 잤다.

그들을 보며 나는 중요한 것은 직업이 아니라 공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왼편에는 세 대의 미싱, 오른편에는 다림판이 있고 위에는 몇백 벌의 교복이 걸린 그곳이 그들이 30년을 보낸 공간이었으니까. 투명한 가게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내 어머니에겐 문자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었을 테니까.

부모님을 보며 나는 결코 자영업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신의 축복이라는 망각을 내가 지나치게 많이 받은 건지 나는 자영업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이유를 잊었다. 역마살이 꼈냐, 방랑벽이 있냐라는 말을 듣는 내게 어울리지 않았던 것. 바로 공간에 얽매인다는 것.

자영업자가 된다는 건 '일한 만큼 버는 것'도 '적은 돈으로 작지만 아름다운 가게를 꾸미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정성 들여 내가 갇힐 감옥을 짓는 것과 같았다. 설사 그것이 아름다운 감옥일지라도 말이다.

일주일에 여섯 번. 나는 책 읽는 술집 '낮섬'에 머무른다. 카운터에 앉아 의자를 옮길 것도 없이 슬쩍 고개만 돌리면 저 구석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작은 술집이다. 커다란 테이블 뒤로는 벽 한 면을 다 덮은 책장이 있고, 술집 한가운데엔 매달 주제별로 큐레이션이 바뀌는 책이 진열되어있다.

책이 가득한 예쁜 바(Bar)에서 머무르기.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이 가게를 시작하면서 나의 행동반경은 극도로 좁아졌다. 하루의 절반을 이 공간에서만 쓴다. 가게를 시작한 3달 동안 나는 매일 같은 풍경을 보며 같은 공간에 머무른다.

오픈을 준비하는 오후 5시 즈음엔 근처 중고등학생들이 하교하는 길에 왁자지껄 떠들며 골목을 누빈다. 여덟 시가 되면 맞은 편 이층집에 사는 할아버지가 러닝셔츠 바람으로 나와 담배를 피운다. 한 시가 넘으면 택시 아저씨가 골목에 차를 주차한다. 그걸 보며 나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 나머지 시간도 비슷하다. 집까지 걸어서 30분. 바에서 집까지 걷는 그 길이 내가 매일 보는 풍경이 되었다.

공간에 매인다는 게 이런 걸까. 좋아하는 카페에 주야장천 가던 때도 있었다. 그야말로 참새가 방앗간 찾듯 매일 같은 시간에 카페에 가서 네다섯 시간씩 있기도 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간을 써도 내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과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건 달랐다. 답답했다.

갑자기 문을 닫고 어딘가로 가고 싶을 때도 많았다. 저녁 약속을 잡을 수도 없었다. 떠나고 싶은 걸 꾹 참고 가게를 지켰는데 손님이 하나도 없는 날엔 허탈하기도 했다. 머무르기. 그것이 의무가 된 순간 나는 갑자기 수인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만든 예쁜 감옥에 갇힌 수인.

 책 읽는 술집 낮섬을 지킨다는 것
 책 읽는 술집 낮섬을 지킨다는 것
ⓒ 박초롱

관련사진보기


자영업자에게 부족한 건 돈뿐만이 아니다, 시간이다

자영업에 대한 흔한 환상은 이런 것들이 있다.

"내 가게를 하면 내가 원할 때만 열어야지. 기분이 안 좋으면 문 닫고 놀러 갈 거야."
"조금만 일하고 200만 원만 벌어야지. 난 큰 욕심 없으니까."
"손님이 안 오는 시간엔 여유롭게 책을 읽어야지. 커피 한잔 하면서."
 
그렇지만 현실은 이렇다.
"폭우가 와서 아무도 안 올 것 같은데도 문을 닫을 수가 없다. 이 가게는 늘 열려있다는 인식을 손님이 가져야 언제라도 편하게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 내내 일하고 200만 원도 못 가져간다. 건물주는 누워서 200만 원씩 챙겨가는데!"
"손님이 없을 때는 온갖 잡일(재고 주문, 예산 관리, 청소, 인스타 등)을 하느라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아주 가끔 여유가 있을 때는? 커피 마실 마음의 여유가 안 생긴다!"

회사에 다닐 때 마케팅팀이나 인사팀에 있던 동기들은 막막한 미래에 대해 토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역시 기술을 배워야 되나 봐. 기술이 있으면 울타리 없이 혼자 먹고살 수 있잖아. 그러나 소위 '기술'을 가졌다는 친구들의 비애는 딱 일한 만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1시간을 일하면 1시간만큼의 돈을 벌 수 있다. 1시간을 놀면 1시간만큼 돈을 못 번다. 자동화 시스템 같은 건 없다.

지금 고생하면 나이 먹어서는 일을 덜 해도 돈이 벌릴 거라는 희망도 없다. 내가 하루 미장일을 쉬면, 네일숍 문을 닫으면, 카센터에 안 나가면 하루 치 돈은 허공에 날리는 셈이다.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쉬는 것이 곧 돈이다. 그러니 여름휴가는 언감생심 주 5일 근무는 신념이 있어야 가능한 사치다.

영화 <인타임>이 생각났다. 시간이 곧 화폐인 미래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시간으로 산다. 커피 한 잔의 가격은 8시간, 자동차 한 대 가격은 3년과 같은 식이다. 시간을 다 쓴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시간이 곧 돈인 자영업자에게 영화 <인타임> 속 아이디어는 새로운 상상도 아니다. 돈이 없다는 것이 곧 사회적인 사망을 의미하는 요즘 세태에선 돈이 시간이라는 게 오히려 소름 끼치도록 리얼하다.

 책 읽는 술집 낮섬
 책 읽는 술집 낮섬
ⓒ 박초롱

관련사진보기


그럼에도 자영업을 하겠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라

쓰고 보니 <경고:자영업을 하지 말 것>과 같은 글이 되고 말았지만 사실 낮섬을 오픈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자영업 3개월 차면 '전국 자영업자 총회'(그런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에서 명함도 못 내밀 풋내기 수준이니 누구더러 하라 마라 할 처지도 못 된다. 낮섬에 오는 단골들은 벌써부터 이 가게가 망할까 봐 대신 걱정해주곤 하는데 정작 주인은 '그래도 해볼 만한 고생'이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과 술을 좋아한다. 술 마시며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하는 것도 즐거움이요, 그 사람에게 딱 맞는 책과 술을 추천하는 것도 잘하는 일 중에 하나라 자부한다. 성산동의 작은 커뮤니티에 서서히 녹아드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그것도 다 '먹고살 만해야' 하는 소리겠지만 말이다.

먹고 사는 숭고한 일에 '재미'라느니 '좋아한다'는 낭만적 가치를 들이대는 게 불편한 사람도 있겠다. 허나 여러 가지 직업으로 내 목구멍 하나를 책임지는 게 목표인 '프로딴짓러'로서 그건 포기하기 어려운 가치다. "빵을 좋아해? 그럼 빵집을 해!" "꽃을 좋아해? 그럼 꽃집을 해!"라는 말이 대책 없이 들리긴 하겠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은 내 앞에 놓인 음식에 대해 달다 짜다 말이 많지만 아무도 내 음식을 대신 먹어주진 않는다.

 당신이 춤추는 동안에
 당신이 춤추는 동안에
ⓒ 박초롱

관련사진보기


나는 '이거나 해볼까'족이다. 서점이나 할까. 술집이나 할까. 제주도나 내려가서 살까. 요즘은 점점 '해봤네'족으로 변하고 있다.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봤고 술집도 오픈해봤고 제주 대신 시골살이 일 년도 해봤다. '해봤네' 족으로 살면서 느낀 건 세상에 '이거나'는 없다는 점이다. 모든 일이 고되었다. 저마다 제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데 담장 너머로 눈만 흘깃거리며 건너편의 삶을 '이거나'로 폄하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한다.

다음 달부터는 일주일에 오일만 일하기로 했다. 내게 강제적인 휴식을 주어야겠다. 백 원이 나오는 주머니를 현명하게 쓰는 법을 배운 거지가 되어 동화를 다시 써야겠다. 끊임없이 백 원이 나오는 주머니를 주운 거지는 하루에 다섯 시간씩만 동전을 빼고, 남은 시간은 편히 쉬었답니다. 그리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덧붙이는 글 | 나는 자영업자다 시즌 2 응모글 입니다.



댓글2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