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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동독의 어느 주택가 이야기] 통일 전 동독에서 20여 년간 기계생산 분야에서 일했던 헬무트(가명)씨. 그는 직장에서 존경받는 기술인이었고 가정에서는 충실한 가장이었다. 독일 통일 후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실업자가 된 그는 자동화 설비 관련 직업교육을 받았다.

실업수당을 받고 있어 당장 생계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직업교육이 끝난다고 해도 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이었다. 헬무트씨는 그나마 아침마다 집을 나서는 자신의 모습을 창밖으로 물끄러미 내다보는 이웃 남자를 보면서 위안을 얻었다. 50세를 갓 넘긴 그에게는 직업교육의 기회를 얻는 것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통일은 곧 실업이다?

통일 후 구동독 지역은 서독을 지칭하는 구연방주라는 단어에 대비되는 '신연방주'라는 용어로 지칭됐다. 분단 이후 폐지됐다가 통일 직전 부활한 구동독의 5개 주가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새롭게 편입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연방주에서 통일 이후 대규모로 실업이 발생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공식 통일에 앞서 1990년 5월, 동·서독 간에 체결된 경제, 화폐, 사회 통합 조약을 기반으로 체제 전환이 진행되면서 통일 초반, 980만 명 가량에 이르던 동독 생산 인구 중 300만 명가량이 실업자가 됐다.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동독 산업시설을 청산하면서 대규모로 실업자가 발생한 탓이다.

이러한 수치는 그 자체로도 굉장히 높은 것이지만 실제의 실업률은 그보다 더 높았다. 40만 명에 이르는 조기 은퇴자뿐 아니라 직업교육 등 각종 고용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은 실업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의 혹은 자의로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숫자를 모두 포함하면 통일 초반 구동독 지역의 실제 실업률은 40%가 훨씬 넘었다.

모든 것이 좋아질 것으로만 생각했던 새로운 사회에서, 동독 생산인구의 절반가량이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한 것이다.

동독주민에게 '일'이란

 동독주민들에게 '노동'이란 일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동독주민들에게 '노동'이란 일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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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노동자계급 중심 사회를 표방하던 동독에서 일을 매개로 한 직업적 삶은 개인이 사회적 존재로 완성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중요한 삶의 토대였다. 이는 동독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가 체제에 의해 이념적·정책적으로 적극 강조된 것과도 맞물려 있다.

이러한 동독 사회에서 일은 개인의 의무이면서 동시에 침해될 수 없는 권리였고 비록 선택의 기회는 제한돼 있었지만, 개인은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받았다.

계획경제체제의 생산 목표와 연계돼 인력 정책이 추진되면서 기업의 임의 해고, 채용이 엄격히 금지됐음은 물론이다.

이념적 교화의 결과로 사회주의형 노동 가치가 개인에게 얼마나 내면화됐는가는 별개로 이러한 동독사회에서 일은 개인에게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일은 개인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고, 일터는 하루를 보내는 노동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던 중요한 삶의 세계였다.

직장생활에서 만난 동료와 그의 가족은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고 정기적으로 문화·스포츠 행사를 함께 준비할 뿐 아니라 함께 휴가를 보내고 연말을 축하하는, 믿음직한 동료인 동시에 친근한 벗이자 가까운 이웃이었다. 엄마 아빠가 근무하는 직장 부설 육아시설에 보내진 아이들에게 그곳은 또래 아이들과 웃고 장난치며 시간을 보내는 즐거운 놀이공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직장공동체는 기본적 생산단위이면서 동시에 - 특별한 일이 없는 한 - 평생 지속되는 하나의 생활공동체였다. 이러한 동독인들이 실업으로 인해 직장공동체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TV속의 실업, 나의 실업

 2000년대 초반 노동정책개혁 반대시위에 참여한 구동독주민 모습
 2000년대 초반 노동정책개혁 반대시위에 참여한 구동독주민 모습
ⓒ 강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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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고용을 지향하던 동독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19~65세의 생산연령 성인에게 일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이들이 동독 시절, 실업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직접적 경험은 없었지만 동독인들이 실업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은 물론 아니다. 수신이 가능했던 서독 방송을 통해, 1980년대 이전부터 사회 문제로 대두됐던 서독의 실업 상황을 보면서 동독인들은 멀리서나마 실업을 경험했다. 그렇지만 통일과 함께 자신이 실업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동독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TV로 보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고 더군다나 내가 실업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TV르포 프로그램에 비친, 구직상담을 위해 고용지원센터 복도의 의자에 앉아 자신의 상담 순서를 기다리던 30대 중반 여성은 끝내 눈물을 글썽였다. TV로 서독의 실업 상황을 구경하던 것과 직접 실업자가 되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실업이 낳은 것들

실업에 대한 경험이 거의 전무한 동독인에게 실업은 삶의 토대를 뒤흔드는 심각한 갈등을 초래했다. 일을 통한 사회적 기여를 통해 사회 일원으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던 동독인들에게 실업은 한마디로 사회의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업은 두말할 나위 없이 동독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어려움을 동독인들에게 가져왔다.

실업은 먼저 개인의 경제적 종속을 가져왔다. 통일 후 15년이 훨씬 지난 2006년께 까지도 구동독 인구의 47%가 실업 급여 등 각종 공적 부조에 의존해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난 연구 결과는 동독인 스스로 깊은 한숨을 쉬게 되는 피하고 싶은 현실을 보여준다. 실업에 따른 경제적 종속은 자연스레 심리적 갈등을 가져왔고 개인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대표적 원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제 체제의 변화가 대량실업의 주원인이었음에도, 현실에서는 실업이 개인의 능력부족 때문인 것으로 여겨지면서 일종의 사회적 낙인처럼 인식됐기 때문이다.

또한 실업은 동독인들에게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초래하는 주원인으로 작용했다. 직장을 중심으로 맺어졌던 인간관계가 실업과 함께 그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통일 후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진 사람들은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오전 무렵부터 동네 어귀에 앉아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과 바뀐 상황을 이야기했다.

매달 받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조기 은퇴자들은 과거, 일터로 향하던 길목의 카페에 앉아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상황이 가져온 허전함을 달랬다.

그뿐 아니다. 구동독 실업자 4명 가운데 1명이 실업의 영향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실업으로 인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개인의 심리적 측면 뿐 아니라 신체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실업이 가져온 경제적 부담은 가족구성원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실업으로 인한 좌절은 불화, 폭력 등 가족 간에 갈등을 야기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실업의 여파가 당사자 뿐 아니라 배우자,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가된 것이다.

해결책은 Go West?

실업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던 탓에 그에 대한 대처능력이 없었던 동독인들은 조기은퇴 경우를 제외하면, 직업교육을 비롯한 각종 실업프로그램 참여, 창업 등을 통해 실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동시에 100만 명 이상의 동독인, 특히 고등교육과 양질의 직업교육을 이수한 젊은 세대들이 일자리를 찾아 구서독 지역으로 떠났다. 결과적으로 동독은 새롭게 독일에 편입된 신생지역임에도 생기를 잃어버린 남은 자들의 도시가 됐다. 체제 전환을 통한 동독재건 과정에서 이룬 여러 성과에도, 수요만큼의 일자리가 빠르게 창출되지 않았고, 2000년대 후반까지 동독지역에서는 줄곧 15~18%의 높은 실업률을 보였다(서독 지역은 5~9%).

통일 30년이 돼 가는 지금, 실업 문제가 이전보다는 완화됐지만 여전히 동독 지역의 실업률(2017년, 8.4%)은 서독(2017년, 5.8%)보다 높은 상황이다. 주목할 것은 오랜 실업 상황에도, 일에 대한 동독인의 의지는 줄어들지 않았고 직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

"어떤 일을 하던 실업보다는 낫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일은 인간 본연의 권리로서 동독인의 인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체제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야기하는 실업

신탁청 항의 시위 중인 동독주민 통일 초기 구동독 국유재산의 민영화를 담당했던 신탁청에 반대하는 항위 시위 장면.
▲ 신탁청 항의 시위 중인 동독주민 통일 초기 구동독 국유재산의 민영화를 담당했던 신탁청에 반대하는 항위 시위 장면.
ⓒ 강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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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인이 직면해야 했던 대규모 실업은 그것이 파생한 문제뿐 아니라 동독 주민의 새로운 체제 수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직접 겪지는 않더라도 적지 않은 친구와 이웃이 실업으로 고통받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서독식 경제체제가 실업의 주원인이라는 생각이 생겨났고, 이것이 새로운 체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형성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통일 직후에는 동독에서 새로운 경제체제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룬 반면, 실업 문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그것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동독에서 급격히 늘어난 것이 이에 대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경제체제 도입과 함께 시장논리에 따라 기업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되었음에도, 그것을 서독식 자본주의의 지배 결과로 인식하는 정서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실업은 동독 지역에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체제, 특히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야기하는데 일조했으며 극우주의 경향 증가의 주요한 요인으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독일 통일 후 동독 주민이 직면했던 그리고 지금도 직면하고 있는 실업 상황은 급격한 체제전환 과정에서 일정 부분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 방식에 따라 상이하겠지만 실업은 남과 북 또한 통일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문제다. 그뿐 아니라 통일을 논하기에 앞서 그 자체로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그것은 한반도의 숙원 과제인 통일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남한사회가 당장 겪고 있는 난제이기 때문이다. 대안을 찾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일 후 북한에 하루 수십 개의 식당·편의점이 새로 문을 열고, 그 만큼이 간판을 내리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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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