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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형마트 여자화장실에 설치된 남자 소변기  서울의 어느 대형마트 여자화장실에 남자소변기가 설치되어 있다.
아직은 혼자 남자화장실에 갈 수 없어, 엄마를 따라 여자화장실에 온 남자어린이용이다
▲ 어느 대형마트 여자화장실에 설치된 남자 소변기 서울의 어느 대형마트 여자화장실에 남자소변기가 설치되어 있다. 아직은 혼자 남자화장실에 갈 수 없어, 엄마를 따라 여자화장실에 온 남자어린이용이다
ⓒ 서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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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이나 마트, 극장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의 여자 화장실에 설치된 남자 소변기의 모습, 여성들에겐 익숙한 모습이다. 남자 소변기가 이곳에 놓인 이유를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아직은 혼자 남자화장실에 갈 수 없어서, 엄마 따라 여자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어린 남자아이를 위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남자아이들은 누구나 어릴 때는 엄마를 따라 여탕에 다니듯, 공중화장실도 엄마를 따라 여자화장실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 여성용 양변기에서 소변을 보게 하기가 좀 불편하다. 아이를 완전히 들어 올려 소변을 누이게 해야 하는데 그게 좀 불편하다. 아무리 어려도 남자는 남자라, 남자소변기를 따로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 아이들 키는 어른의 절반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성인용보다 훨씬 작은 어린이용 소변기를 설치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설계도면을 그릴 당시부터 여자화장실에 그리는 남아용 소변기를 실제 스케일의 1/2 사이즈로 그려야 한다. 그런데 설계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캐드(CAD)에는 자주 쓰는 소변기, 대변기 등이 미리 입력되어 있어 별다른 생각 없이 그대로 갖다 쓰곤 한다. 캐드 매뉴얼 중에 남자 어린이용 1/2 소변기가 없으면? 도리 없다. 그냥 성인용 소변기를 그려 넣고 나중에 실시도면에서 부가사항으로 기록할 수밖에. 그런데 가끔 너무 바빠서 이 사실을 누락할 때가 있다.

그리고 또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예전에는 어린이용 소변기가 성인용보다 비쌌다. 공산품은 대량생산을 해야 단가가 저렴해지는 법인데 수요가 작아 소량만 생산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레어템이라서 품절이 될 때도 있었는데, 급하게 공기를 맞추다 보면 어린이용 소변기를 설치해야 할 곳에 그만 성인용을 설치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된다.

더구나 이런 소변기는 주로 입구부분에 놓여 있다. 극장이나 백화점, 마트 등 처음 가는 공간에서 갑자기 용무가 급해진 남자분들은 이리 저리 바삐 화장실을 찾다가 남자 소변기가 보이면 얼른 그 곳으로 달려간다.

설마 여자 화장실에 남자 소변기가 설치돼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나마 안쪽에 여성들이 많이 있으면 무언가 눈치를 채고 금방 나갈 텐데, 설상가상 여자 화장실에 아무도 없다면 당연히 남자화장실이라 생각하고 바지를 내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급한 일이 한창 진행 중일 때 갑자기 여자가 들어오면, 내가 잘못 했는지 저쪽에서 잘못 했는지 서로 민망해진다.

이곳은 여자 화장실이다. 거울엔 꽃무늬와 고양이 무늬가 선명하고 파우더룸까지 마련된 여자화장실인데, 그 앞에 커다란 성인용 소변기가 설치되어 있다. 화장실 공사를 할 때 무언가 아주 급했나 보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아주 급한 남자분이 불쑥 들어오곤 한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정말 많은 곳의 여자화장실에 남자 소변기, 아니 정확히 말해 성인남자용 커다란 소변기가 설치되어 있다. 실제로 많은 남자분이 급하게 들어오곤 하기 때문에, 본의 아닌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고육지책을 마련하기도 한다. 변기 위에 곰인형이나 풍선을 갖다 붙이고 "남자 화장실 아닙니다, 남자 어린이용 입니다" 라고 써 붙여 놓는 것이다. 건축에서 처음 도면을 그릴 때 얼마나 주의해야 하는지, 혹여 설계 당시에는 놓친 것이라 할 지라도 시공 과정에서 다시 한번 더 꼼꼼히 체크해야 하는 이유이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의 화장실이어서 그날도 별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아뿔싸' 거울 앞에 남자분이 한 명 서 있었다.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은 곱상한 젊은 남자가 태연히 거울을 보며 손을 씻고 있었다. 또 무언가 아주 급해서 잘못 들어왔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여자 화장실이라고 말을 해 줄까 말까 하고 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뿐이랴 주머니에서 치약과 칫솔을 꺼내 이를 닦기 시작했다. 그래, 가끔 남자도 남자화장실에 너무나 태연히 들어오는 여자들 때문에 당황하곤 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이 분도 본인은 제대로 들어왔고 내가 잘못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하겠지. 이곳은 여자 화장실이고 지금 설치된 저것은 남자어린이용 소변기라고 분명히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며 나는 거울 속에서 그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는,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숏커트를 한 그는, 아니 그녀는 여자라는 사실을.

그걸 요즘 "탈코"라고 하나. 여성의 긴 머리와 화장이 이 사회에서 강요하고 있는 21세기판 코르셋이라는 생각에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지우고 남자처럼 간편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추세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급해서 잘못 들어온 남자가 아닌, 제대로 잘 들어온 여자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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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건축학과 졸업 후 설계사무소 입사. 2001년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작가 데뷔 2003년부터 지금까지 15년간 12권의 저서 출간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오마이뉴스를 시작합니다. 저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2015) / 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2009) / 꿈의 집 현실의 집(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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