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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부여라는 나라에 활 잘 쏘던 아이 주몽이 있었는데, 이복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로 목숨에 위험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 유화부인의 도움을 받아 오이, 마리, 협보와 함께 남쪽으로 도망을 친다.  이를 알게 된 부여의 왕자들이 주몽을 죽이려고 말을 타고 쫓아오고... 쫓기던 주몽이 마침내 어느 강가에 이르렀을 때 갈대와 거북이들이 다리를 만들어 주어 무사히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주몽은 그 곳에 고구려를 건국한다.

이 이야기는 단동에서 기행 셋째 날을 맞이한 아이들이 오늘 찾아가게 될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일정은 압록강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며 고구려 유적을 만나는 것이다. 특히, 유람선을 타고 북녘 땅을 바라보는 경험과 고구려 최초 도읍에서 만난 동북공정의 흔적은 기행단에게 감동과 긴장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그 일정을 따라가 보자.
호산장성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해 세운 천리장성의 일부인 박작성을 개축한 것인데, 지금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을 제치고 이곳을 만리장성의 동단 기점으로 삼고 있다.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에 만리장성 동단기점(万里?城 ?端起点)이라고 쓰여 있다.
▲ 호산장성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해 세운 천리장성의 일부인 박작성을 개축한 것인데, 지금 중국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을 제치고 이곳을 만리장성의 동단 기점으로 삼고 있다. 입구에 세워진 조형물에 만리장성 동단기점(万里?城 ?端起点)이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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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장성을 지나 압록강에서 북한을 바라보다

호산장성은 기행단이 묵었던 압록강 하구의 월량도에서 곧바로 다다른 곳에 있다. 30여 분을 달려 호산장성에 도착한 기행단은 말로만 듣던 중국 동북공정의 현장을 처음으로 만났다. 호산장성 입구에 세워진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점이라는 조형물이 바로 그것이다.

호산장성이라고 불리는 이성은 원래 고구려 시대 박작성으로 불렸던 곳이다. 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방어하는 성의 하나로, 고구려가 당나라와 벌였던 전쟁 이야기에 꼭 등장하는 요충지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중국 정부가 허물어져 있던 성을 개축하면서 만리장성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본 따서 복원하고 이곳을 만리장성 동단기점으로 선전하고 있다. 성의 정상에 올라가면 북한 땅을 바라볼 수도 있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일정상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곧바로 출발하였다.
장하도 단교  6.25 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다리이다. 현지 안내문에 따르면 “이곳은 19세기 말 압록강에서 중요한 부두였다. 6.25 전쟁 때는 중국 인민지원군이 펑더화이 원수의 인솔 하에 이 하구를 통하여 처음으로 강을 건너 전쟁에 참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끊어진 다리 너머로 보이는 곳이 평안북도 청성군이다.
▲ 장하도 단교 6.25 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다리이다. 현지 안내문에 따르면 “이곳은 19세기 말 압록강에서 중요한 부두였다. 6.25 전쟁 때는 중국 인민지원군이 펑더화이 원수의 인솔 하에 이 하구를 통하여 처음으로 강을 건너 전쟁에 참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끊어진 다리 너머로 보이는 곳이 평안북도 청성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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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꼭 다시 만나  인문학 기행단 아이들이 북녘 땅의 아이들을 향해 통일해서 꼭 만나자고 손을 흔들고 있다. 상대편에서 손을 흔들며 화답하자 아이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우리 꼭 다시 만나 인문학 기행단 아이들이 북녘 땅의 아이들을 향해 통일해서 꼭 만나자고 손을 흔들고 있다. 상대편에서 손을 흔들며 화답하자 아이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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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단동의 압록강 단교(斷橋)를 출발한 지 한 시간여를 달려 또 다른 단교인 관전시 하구촌의 장하도 단교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도착한 아이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설레는 마음으로 강변의 유람선에 오른다. 바로 지척에서 북한 땅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북한사람들과 큰 소리로 대화를 할 수도 있다는 좀 과장된(?) 가이드의 설명도 있었다.

이곳에서 기행단 아이들은 지척에서 북한의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며 함성를 질렀다.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강에서 멱을 감던 아이들과 어른들이 맞장구를 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빨리 다시 만나자"고 대답해 주었고, 아이들의 눈시울은 붉어지고 있었다(관련기사: 안녕! 북한아이들 인사에 눈물 터진 아이들)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유리왕까지 살았을 땅
아! 옛날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우셨다. 왕은 북부여에서 나셨으며,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다. 알을 가르고 세상에 내려오시니, 날 때부터 성스러우셨다. 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엄리대수를 지나게 되어 왕께서 나루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인 추모왕이다. 나를 위하여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이들이 떠올라라." 이 말씀에 따라 즉시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이들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비류곡 홀본 서쪽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우셨다. - 광개토대왕 비문 中
 
중국 랴오닝성 환인현  고구려의 최초 도읍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환인현 전경. 강 건너 도시 끝으로 보이는 산정상이 고구려 초기 수도였던 흘승골성 또는 졸본성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 오녀산성이다. 그 옛날 주몽이 형제들에게 쫓겨 올 때 갈대와 거북이가 다리를 만들어 주었던 곳이 앞에 보이는 다리가 아닐까? 질문했다가 기행단의 역사 교사에게 면박을 당했다. 최초 도읍지에 대한 설이 많지만 이곳은 아니란다. 정상에 올라보면 그 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중국 랴오닝성 환인현 고구려의 최초 도읍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환인현 전경. 강 건너 도시 끝으로 보이는 산정상이 고구려 초기 수도였던 흘승골성 또는 졸본성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 오녀산성이다. 그 옛날 주몽이 형제들에게 쫓겨 올 때 갈대와 거북이가 다리를 만들어 주었던 곳이 앞에 보이는 다리가 아닐까? 질문했다가 기행단의 역사 교사에게 면박을 당했다. 최초 도읍지에 대한 설이 많지만 이곳은 아니란다. 정상에 올라보면 그 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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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와 광개토대왕 비문 등에 기록된 고구려의 건국에 관한 이야기 따르면 "주몽은 하백의 딸 유화와 천제의 아들 해모수의 아들인데, 동부여 금와왕의 배려로 궁궐에서 나고 자랐으나 왕의 아들들이 죽이려 하자 졸본으로 내려와 고구려를 세웠다"고 한다. 오늘 아이들이 다녀갈 오녀산성은 바로 그 졸본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고구려의 건국 이야기는 10여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송일국·한혜진 주연의 TV 드라마 <주몽>을 통해 신화와 사실의 한계를 넘나들며 화제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아마도 그 드라마의 모티브도 앞서 인용한 광개토대왕 비문에서 출발하였을지도 모른다.

단동에서 북한을 처음 만난 감동을 간직한 채 출발한 기행단 아이들은 오후에 고구려 발원지라고 추정되는 환인에 도착하여 최초 고구려 도읍지 오녀산성을 등정하였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이승재(부여고‧1)학생이 1일 가이드로 나서 '고구려의 첫 도읍지와 오녀산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 산성은 고구려 시조 주몽(동명성왕)부터 그의 아들 유리왕이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40여 년 동안 고구려의 수도로 유지되었던 곳"이라는 내용이었다.
오녀산성으로 오르는 길  오녀산은 해발 800미터이다. 산에 오르는 계단 옆으로 십팔판이라는 길이 있는데 고구려시대에는 말과 마차도 산성에 오를 수 있도록 18번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천여 개의 계단이 오르는 길을 대신하고 있다.
▲ 오녀산성으로 오르는 길 오녀산은 해발 800미터이다. 산에 오르는 계단 옆으로 십팔판이라는 길이 있는데 고구려시대에는 말과 마차도 산성에 오를 수 있도록 18번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천여 개의 계단이 오르는 길을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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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녀산성 정상  기행단 일행이 정상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호수는 댐공사로 조성된 것이며 아래 수몰된 지역이 고구려 최초의 도읍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오녀산성 정상 기행단 일행이 정상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호수는 댐공사로 조성된 것이며 아래 수몰된 지역이 고구려 최초의 도읍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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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녀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처음에는 셔틀버스를 타고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지만 걸어서 오르는 정상까지 가는 길은 대단히 험하고 힘들었다. 무더운 날씨 탓도 있었지만 가파른 천여 개의 계단 때문에 아이들의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산성의 정상은 아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성안은 평평하고 중앙에는 천지라고 부르는 작은 연못이 있다. 과거 고구려인들이 살았던 집터와 왕궁터 등을 지나 산 정상 점장대에 이르면 확 트인 전망과 함께 댐건설로 수몰된 산 아래가 나타난다.

바로 그 수몰된 지역에 그 옛날 주몽이 건너왔다는 비류수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아마도 저 곳 어디쯤에서 우리가 고전으로 배우고 있는 주몽의 아들 유리왕이 애절하게 노래한 황조가도 지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류수는 현재는 저수지 댐에 수몰되어 호수로 변하였고, 수많은 고구려의 유적도 함께 잠겨 버렸다. 아이들은 아쉬움을 남긴 채 산성을 내려왔다.

오늘 기행단 아이들은 단동을 출발하여 환인까지 고구려여행을 하였다. 환인을 출발한 기행단 버스는 구불구불 한계령 같은 준령을 족히 세 개는 넘고 넘었다. 이윽고 저녁 노을이 지는 차창 밖으로 다시 압록강이 다시 보인다. 국내성터,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등 고구려 유적이 지천에 널려 있다는 집안에 도착한 것이다. 강 건너 보이는 곳이 북한의 자강도 만포시라고 한다.

오늘 하루 고구려여행을 한 아이들이 국내성터 성벽 옆에 자리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하루 일정을 정리하는 세미나를 마치고 내일의 일정을 준비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기행단이 격게될 중국 공안의 감시와 긴박한 에피소드를 아직은 모른 채...
인문학 기행 평화통일단  하루 일정을 마친 기행단 아이들이 하루 일정을 정리하는 세미나를 하고 있다.
▲ 인문학 기행 평화통일단 하루 일정을 마친 기행단 아이들이 하루 일정을 정리하는 세미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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